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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ennyy Aug 10. 2020

갑자기 유기견을 입양했다.

담요로 강아지를 감싸고 생각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안산의 한 유기견 보호소에서 강아지를 데려왔다. 가슴에 하얀 털이 있고 노란 양말을 야무지게 챙겨 신은 검정 강아지. 사실 입양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어떤 아이들이 있을지 보기만 해 보자.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어느새 무릎 위에 그 아이를 앉혀놓고 돌아오고 있었다. 켄넬도 가방도 하다 못해 당장 먹일 사료조차 없었다. 차 뒤편에서 쪽잠을 잘 때 쓰던 담요로 강아지를 감싸고 생각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공장에서 열 마리가 단체로 버려져 있었다고 했다. 뭐하는 사람들이었길래 개를 열 마리나 키우고 또 한꺼번에 버리고 떠나야만 했을까. 나는 그들의 사정이 알고 싶었지만 그다지 궁금하지는 않았다. 별로 대단하지 않은 사정이었을 것이다. 그냥 무책임하고 후졌던 거겠지. 그보다는 지금 이 수많은 케이지 안의 동물들 중에서도 유난히 어려 보이는 새끼 강아지 두 마리가 더 궁금했다. 꼬리를 열심히 흔드는 갈색 강아지와 축 쳐진 채 옆 케이지의 새카만 개만 바라보고 있는 검정 강아지. 왼편의 검은 개와 오른편의 갈색 개, 그리고 가운데 케이지의 새끼 강아지 두 마리는 묘하게 서로 닮아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넷이 가족이란다. 동물들 사이에도 가족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왼편의 검은 개를 바라보는 검정 강아지의 눈빛을 보면 모녀 혹은 모자 관계는 성립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사람과 동물 사이는 어떨까. 만약 내가 너를 이 곳에서 데리고 나간다면, 우리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수십 마리의 개가 시끄럽고 애처롭게 짖어대는 곳에서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리고 내가 그런 감상적인 호기심에 빠져있을 때 딸의 손에 붙들려 반강제로 이 곳을 찾은 엄마는 조금 이상한 이유로 화가 나있었다. 쟤는 왜 나한테 꼬리를 안 흔들지? 검정 강아지는 갈색 강아지에 비해 왜소하고 풀이 죽어있었다. 사람을 봐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옆 케이지의 제 어미만 바라보기 바빴다. 그래서 검정 강아지는 본의 아니게 엄마의 승부욕을 자극해버렸다. 이제부터 네 엄마는 쟤가 아니라 나야, 앞으로 나만 보고 꼬리를 흔들게 만들어주겠어. 2000년대 인소 남주 같은 생각이 어째서 60년대 생 박 여사에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검정 강아지의 입양이 결정됐다.


공고기간이 끝나 오늘 바로 데려가도 된다는 설명을 듣고 몇 가지 서류를 작성했다. 이름은 생각해놓으신 거 있으세요? 꾸미요. 꾸미로 할게요. 언젠가 반려견을 키우게 된다면 붙여줘야지 생각해놨던 이름이었다. 꿈. 꿈이. 꾸미. 대상 없는 이름이었지만 까만 강아지에게 붙이기에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아이가 애교도 없고 겁만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벌써부터 우리 가족이랑 닮은 점이 있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등록칩 결제까지 끝마치고 꾸미를 건네받았다. 꾸미는 내 손에 넘어오자마자 똥을 쌌다. 나는 강아지가 허공에서도 똥을 싼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첫인사로 예의는 없었지만 강렬하니 인상적이긴 했다.







집에 오자마자 빈 박스에 담요와 꾸미를 넣어 병원으로 향했다. 집 근처의 동물병원은 지난 10년 사이 1층에서 3층이 되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곳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조금은 어색하고 민망하게 택배 박스를 끌어안고 접수를 했다. 종이 뭔가요? '시고르자브종-시골잡종'이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잘 참아냈다. 잘 모르겠어요, 저도 궁금하네요. 적당히 평범한 대답이었다.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꾸미의 꼬리에 있는 피부병 연고를 처방받아 집에 돌아왔다. 동물병원에서 급하게 구매한 촌스러운 노란 집과 삑삑 소리가 나는 고무공, 강렬한 첫인사의 충격에 가장 먼저 집어 든 배변패드까지 거실 한편에 펼쳐놓으니 처음보다는 마음이 놓였다.









사실 거짓말이다. 전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반려견을 입양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게 바로 지금이 될 줄은 몰랐고, 나는 선인장도 말려 죽인 전적이 있는 사람이며, 당장 저 아이에게 사료를 반 컵을 줘야 할지 한 컵을 줘야 할지조차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가 너를 잘 키워낼 수 있을까. 너무 성급했던 건 아닐까. 온갖 불안과 걱정으로 착잡하게 꾸미를 바라보는데 이 녀석은 속 편하게 잠이나 자고 있었다. 거기가 자기 집인 줄은 어떻게 알았는지 방금 사 온 촌스러운 노란 집에 누워서 말이다. 노란색과 검은색이 보색 관계라고 중학교 미술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런가 검정 강아지와 노란 집은 생각보다 더 잘 어울렸다. 그제야 저 아이의 자리는 좁고 위태로운 철창 속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설프고 투박하겠지만, 우리는 너를 버린 무책임하고 후진 사람들과는 다르니까. 그래도 집은 좀 더 좋은 걸로 바꿔줘야겠다. 잘 어울리기는 하는데 역시 너무 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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