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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ennyy Aug 22. 2020

뽀뽀 한 번만 하게 해줘




개를 키우기 이전에는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입을 맞추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입술에 털 다 묻을 텐데, 목욕도 안 했을 텐데, 사료 냄새날 텐데. 사람과 하기에도 큰 결심이 필요한 뽀뽀를 밥 먹고 양치도 안 하는 동물과 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꾸미를 만나고 난 지금은 어떻냐고? 딱히 많은 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저 방금도 뽀뽀 한 번만 하게 해달라고 빌고 왔을 뿐이다.




꾸미를 데려 온 첫날부터 뽀뽀에 목을 맨 건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꾸미와 나는 조금 서먹한 사이였고 나는 초면에 아무에게나 입 맞추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는 교양인이었다. 그러한 예의는 상대가 동물이라고 해서 쉽게 바뀌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상황이 달라진 건 꾸미가 집에 온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다. 이제 집이 제법 편해진 꾸미는 소파에 누워 자고 있었고 항상 집이 제일 편한 백수는 그 옆에서 잠든 꾸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뭔가 평소와 다른 걸 발견하게 됐는데 그게 바로 지금 이 뽀뽀 집착 사태의 원흉이었다.





꾸미는 혀를 빼꼼 내밀고 자고 있었다. 개들이 혀를 내밀고 자는 모습이야 가끔 동물농장에서 보기야 했지만 이렇게 바로 내 눈 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작은 분홍색 혀를 낼름 내밀고 자고 있는 꾸미는 심각하게 귀여웠는데 문제는 내가 그 '심각하게 귀여운' 모습에 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 정수리에 뽀뽀를 갈기는 수밖에는.


생각보다 진한 정수리 뽀뽀에 꾸미가 깨버렸다. 그리고 당황스러운 네 개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그중 두 개는 태어나 동물에게 처음 입을 맞춰보는 인간의 것이었고 나머지 두 개는 지금 저 인간이 나한테 뭘 한 거지 싶은 동물의 것이었다. 둘 다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우선 내 얘기부터 하자면 나는 사실 굉장히 좋았다. 부드러운 털과 고소한 꾸미의 정수리 냄새까지. 예전에 반려견을 키우는 친구에게서 '꼬순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 냄새구나 싶었다. 냄새보다는 향기라는 단어를 쓰고 싶을 정도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귀여움을 참지 못하고 뽀뽀를 갈겨버린 내 입장이고, 일방적으로 뽀뽀를 당한 꾸미의 느낌은 또 다를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꾸미는 안산의 한 공장에서 태어나 두 달 정도를 살다가 다른 개들과 함께 버려져 보호소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흘 넘게 지내다 나를 만났다. 아마 그 시간 동안 꾸미에게 입을 맞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꾸미는 방금 받은 정수리 뽀뽀가 인생 첫 뽀뽀인 셈이다.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애정 어린 입맞춤을 받은 적이 없었을 것이란 생각에 새삼스레 다시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면 꾸미는 방금 그 뽀뽀의 의미를 이해할지 궁금해졌다.




내가 기억하는 첫 뽀뽀의 순간은 유치원 생일파티 때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빨간 립스틱을 짙게 바른 남자애가 내 볼에 뽀뽀를 해줬는데 그 친구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사진도 있다. 아무튼 그때의 내 느낌은 어땠었나. 거기까지는 기억이 날 리가 없다. 그래도 추측을 해보자면, 내 뽀뽀를 받은 꾸미의 기분은 그것보단 나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는 한다. 적어도 나는 유치원 선생님이 시켜서 꾸미에게 뽀뽀를 한건 아니니까. 내 의지로, 내 사랑의 감정을 가득 담아서, 나의 소중한 반려견에게 뽀뽀를 했다. 그런데 꾸미는 그 모든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꾸미와 나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나는 기쁠 때 춤을 추고, 꾸미는 꼬리를 흔든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의 표현도 다르다. 나는 뽀뽀를 하지만, 꾸미는 조용히 와서 몸을 기댄다. 꾸미가 내게 기대는 것의 의미를 처음부터 알지는 못했다. 그저 밥을 먹다가, 티브이를 보다가, 잠을 자다가 어느 순간 옆을 보면 나에게 등을 붙이고 있는 순간들이 쌓여서 자연스레 깨달았을 뿐이다. 아마 꾸미도 그럴 것이다. 소파에서의 정수리 뽀뽀만으로는 그 안에 담긴 많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날마다 사랑이 가득 담긴 눈과 함께 입을 맞추다 보면 조금씩은 알게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꾸미에게 뽀뽀를 구걸하는 것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구구절절 변명하는 것 같았다면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렇지만 정수리 뽀뽀 사건 이후 숱한 뽀뽀를 강행한 결과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꾸미는 이제 내가 뽀뽀를 하면 고개를 돌리지 않고 코를 핥아준다. 그것의 의미가 '알았으니까 그만해'인지 '나도 사랑해'인지는 꾸미만 알겠지만, 세상은 원래 자기 보고 싶은 대로 보면서 살아야 편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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