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 가면 이뻐지고 살 빠지고 남자친구 생겨

by 펜얼티밋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대학교만 들어가면 인생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했다. 일단 대학 들어가, 대학 가면 이뻐지고 살 빠지고 남자친구 생겨. 그게 내가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고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그게 내가 바라야 하는 전부인 것처럼, 그리고 고등학생 때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했다.


지금 네 인생이 어떻든 다른 건 다 제쳐두고 공부만 해라. 대학만 가면 다 해결될 거다. 우울하다고? 살이 찐다고? 연애하고 싶다고? 다른 애들도 다 그래, 근데 참고 공부하잖아. 너만 힘들어? 네가 여기서 무너지면 너만 지는 거야. 그렇게 정신력이 약해서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그래?



이 비참한 3년이 언제쯤 끝날까 한강 물 온도나 체크해볼까 하는 웃기지도 않는 우스갯소리(실제로 고3 교실에서는 자살 농담이 끊이질 않았다)를 하며 평소처럼 봉투 모의고사를 꺼낼 때 담임 선생님이 졸업생 선배와 함께 들어왔다. 가끔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샤랄라 원피스를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염색한 머리를 휘날리며 완벽한 인생의 승리자처럼 모교를 찾을 때가 있었다. 위에 전국 고3들이 열망하는 유명 인서울 대학 이름이 박힌 과잠을 입어주면 완벽하다. 자습하던 아이들은 연대 과잠을 입은 예쁜 언니를 부러움의 눈길로 쳐다봤다. 마치 저 대학에 붙어서 예쁜 언니의 인생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아이들이 물어보는 건 주로 세 가지 질문이었다. 내신/수능 성적 어땠어요? 대학 가면 진짜 살 빠져요? 남자친구 있어요? 예쁜 연대 언니는 말하기 창피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나 성적 진짜 안 좋았어. 9월 모의고사에서 2가 떴거든. 다행히 수능에서 찍은 게 맞아서 간신히 최저 맞춰 들어간 거야.”


“언니 심화반이었어요?”

“응, 근데 엄청 잘하는 건 아니었어.”


이때쯤 되면 대다수 아이들은 흥미를 잃고 봉투 모의고사로 돌아간다. 우리 학교에서 심화반이란 자면서도 단어장 볼 것 같은 딴 세상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담임 선생님들이 교실에 들여보내면서 후배들한테 좋은 말 해주길 바라는 졸업생들은 연고대 들어간 인서울 입학생들이지, 평균이라 부를 만한 4, 5등급 지방대 입학생들은 아니다.


아이들은 에이, 난 안 되겠다 생각하면서도 내심 자기도 그럴 수 있기를 열망한다. 예쁜 연대 언니처럼 인서울 대학 가서 예뻐지고 살 빠지고 남자친구 생기기를 기대하며 선생님들이 말하는 ‘인생 모든 문제’(우울하고 살 찌고 꾸미지도, 연애도 할 수 없는)는 애써 무시하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십대를 수능특강과 함께 썩힌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아무도 상담 받아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학교에 상담실이 있었는지도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대화할 수 있는 상대는 담임 선생님뿐이었지만 다른 35명의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선생님을 붙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애초에 담임 선생님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의 결론은 힘내서 공부해라, 너만 힘든 거 아니니 일단 대학은 가고 보자 뿐이기도 했다.


3년 내내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았다. 국어 공부를 끝내고 20분 유튜브를 볼 때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사탐 문제를 풀면서 끄덕끄덕 졸 때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절대 충분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내가 인서울 대학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 것 같았고 나 자체로는 결코 충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더 두려운 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대학 간판으로 타인을 구별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평가받는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게 되는 과정은 너무나 무의식적이고 빨리 일어났다.


대학 이름 가지고 평가받는 데 신물이 난다는 젊은 세대 중 오히려 서연고중경외시건동홍숙, 마치 조선시대 왕 이름 외우듯이 대학 피라미드를 외우고 이를 더욱 견고히 만들어 자신과 또래들을 ‘구별’ 해내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들은 대학 이름 가지고 평가하는 건 잘못됐다고 외치면서도 서연고 다니는 애들을 무의식적으로 동경하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며 자기가 다니는 대학에 패배 의식을 퍼뜨린다.




나는 강원도 소재 대학에 단 한 개의 수시 원서를 썼고 떨어졌다. 오로지 대학 이야기뿐인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에서는 학교가 비싼 돈 주고 산 합격 예측 프로그램이 내가 이 타이틀을 얻게 될지 아니면 피라미드의 더 낮은 곳으로 가야 할지 파란 색과 빨간 색의 글자로 보여주었다.


나는 수시에 썼던 바로 그 대학의 그 학과와 서울 소재 한 대학의 동일 학과에 정시 지원했다. 프로그램은 내가 떨어질 거라고 했지만 놀랍게도 처음 수시에 떨어졌던 학교에 1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정시로 합격했다. 당시 내가 장학금을 받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서 대학 행정실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기도 했다.


행정실 직원은 “왜 이렇게 본인을 못 믿으세요? 본인 장학금 맞아요.”라고 어이 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사실을 확인하고 장학금 소식에 기뻤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니었다.



“아깝네. 차라리 한 단계 윗 대학을 쓰지. 대학은 장학금 받고 들어가면 손해야. 간신히 합격하는 한이 있더라도 간판 높은 데 가는 게 좋지. 그러게 왜 지방대를 썼어.”



이 얘기를 듣고 나니 장학금 소식도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


함께 정시 지원했던 서울 소재의 대학에도 합격했지만 처음 희망했던 대학의 커리큘럼과 세부 전공이 더 마음에 들었기에 강원도 소재의 대학을 선택했다.


그러나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교수님으로부터 현재 그 세부 전공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때 현타가 세게 왔다. 어쩌면 서울 소재 대학에 가는 게 맞았나.


그때 대학에 전반적으로 퍼진 패배 의식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대학 커뮤니티 앱 ‘에브리타임’에는 “인서울 애들 부럽다. 솔직히 여기 지잡대 아님? 공무원이나 준비해야겠다 에휴.” 등 본인 처지를 자조하는 글, 00대에는 희망이 없으니 신입생들은 빨리 편입 준비하라는 글이 적지 않았다.


신입생들은 그 때 교실에 들어왔던 예쁜 연대 언니처럼 화장하고 예쁜 옷 입고 과팅을 다녔다. 그러나 거기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그리고 모두 그게 뭔지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3년 이걸 위해 수능특강이랑 얼싸안고 먹고 잤는데 정작 와서 본 건 패배 의식과 사라져 버린 이 대학에 온 이유, 보이지 않는 서열 문화와 적응할 수 없는 ‘우리’ 문화였다. 그렇게 1년을 버티다 1학년 2학기의 마지막 한 달 정도를 남겨두고 나는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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