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밤 몽트뢰유 시청역 앞에서 유명 래퍼 콘서트가 열리는 바람에 길이 차단되어 밤 11시에 쥘의 집에 도착했다. 씻고 간단한 대화를 하다 보니 금방 자정이 되어버렸고 쥘은 유럽에서 디저트 만들 때 흔히 쓰이는 달달한 루바브라는 채소로 콩포트(묽은 잼 같은 디저트)를 만들어준다고 했다.
그와 식탁에 앉아 루바브를 손질하며 그날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LGBT 퍼레이드에 갔다 온 이야기, 거기서 키스해도 되냐고 물어본 사람 이야기 등을 했다. 그는 여자친구와 함께 온 내 또래 남자였는데 서너 명이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내게 오더니 짧게 자기들 소개를 하고 같이 놀자고 했다. 딱히 일정도 없는 데다 마침 외국에서 너무 철벽 치며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내 소개를 하고 같이 퍼레이드 마지막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도로로 나갔다.
남자는 내게 오랑지나 같지 않은 무언가가 든 오랑지나 페트병을 건네며 목 마를 텐데 마시라고 했고 좋은 생각은 분명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어색해지고 싶지 않아 마셨다. 오랑지나의 환타 같은 맛이 아닌 강한 알코올 맛이 났다. 나중에서야 혹시 뭘 탄 건 아니었겠지 싶은 걱정이 스쳤지만 다행히 별 일은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불어로 무슨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처음 내게 말을 건 남자가 “나는 네가 엄청 예쁘다고 생각해. 키스해도 될까?" 라고 물었다. 그의 여자친구는 바로 1미터 옆에 있었다.
"너 여자친구 있잖아."
사실 여자친구가 자리에 없었어도 안 했겠지만 말문이 막혀서 할 수 있는 게 이 말뿐이었다.
"응, 근데 여자친구가 괜찮대.“
흠, 문화 차이인가. 당황하여 급히 핑계를 대고 빠져나왔다.
쥘에게 이 이야기를 하며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 차이인 걸까 물어보니 프랑스에서도 보통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데 아마 LGBT 퍼레이드여서 프랑스 평균보다도 성적으로 개방된 사람들이 많아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콩포트는 거의 새벽 1시가 되어 완성됐다. 그는 같이 영화를 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새벽 1시였지만 어제도 그의 제안을 거절했던 터라 옆자리에 콩포트 접시를 들고 앉았다. 우리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았다. 옛날 미국 서부 카우보이 영화였다.
그는 종종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고 내가 편안한지 물었다. 그는 점점 내 쪽으로 붙어앉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그의 왼손이 반바지를 입은 내 오른쪽 허벅지에 닿는 걸 느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치우지 않았고 나는 설마, 우연이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프랑스 문화권에서는 친구 사이에서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은 건가 라고까지 생각하며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는 걸 애써 피했다. 그때는 긴장감과 두려움에 상황을 부정하며 그럴 리 없다고만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연이나 문화 차이가 아니라 그가 그냥 손을 치우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 설령 문화 차이에서 비롯되더라도 한 쪽은 괜찮고 다른 한 쪽은 괜찮지 않다면 괜찮지 않은 쪽을 배려해서 하지 않는 게 맞다.
그는 곧이어 내 쪽으로 팔을 뻗었다. 소름이 돋았다. 그때 느꼈던 특유의 체취는 파리에서 전반적으로 나는 냄새와 비슷했고 이후 파리 거리를 걸을 때 두고두고 내게 이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극도로 긴장되었다. 머리가 복잡해져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는 왼팔로 나를 꽉 끌어당겨 안았고 내 손을 주무르듯 만지작거렸다. 곧이어 팔을 쓰다듬듯이 문지르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쾌해졌고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어쩜 이렇게 손이 작고 귀엽냐며 내 말을 무시했다. 소름이 쫙 끼치면서 내가 파리 외곽 한적한 지역에 190cm가 넘는 거구의 20대 남성과 단둘이 있다는 사실이 머리를 때렸다. 그가 마음먹고 몰아붙인다면 내가 막을 수 있을까. 순간 몸이 떨리도록 무서웠다. 마침내 그는 몸을 빼려고 힘을 쓰던 내 턱을 잡아 고개를 자기 쪽으로 돌렸다. 진심으로 그가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고 성적인 무언가는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같이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는 데 응했던 것이고, 허벅지에 손이 조금 닿아도 설마 아니겠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얼굴에 손이 닿는 순간 정신이 확 들었고 어떻게든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홱 돌리며 언성을 높여 STOP. NO라고 말했다.
이때서야 그는 싫으면 하지 않겠다고 나를 놔줬다. 몸이 꽉 잡혀있다가 풀려나자 그제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여전히 그가 두려웠다. 머리는 새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손 떨리는 걸 간신히 막아냈지만 여전히 미친듯한 심장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방금 전까지 내게 손을 대던 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티비만 보고 있었다.
여기서 화를 내야 하나, 따져야 하나, 짐을 싸서 나가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도무지 돌지 않았다. 그는 어떤 의도로 그랬던 걸까. 그게 쥘 나름대로는 찔러봤던 걸까, 정말 끝까지 밀어붙일 생각도 있었던 걸까. 벌써 새벽 2시인데 지금 나가면 어딜 어떻게 간단 말인가. 내가 화를 내서 그를 자극하면 어떡하지. 뉴스에 나오고 싶지는 않았다. 우선 살고 봐야지.
일단 아무렇지 않은 척 피곤해서 자러 가겠다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미 다른 숙소를, 내가 신세를 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지 않는 곳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세를 지든 아니든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막상 그 상황에 놓였을 때 즉시 그만을 외치는 게 쉽진 않더라. 내가 방에 들어오고 나서도 그가 영화 보는 소리, 나무 바닥이 삐걱이는 소리, 문 닫히는 소리 등을 들을 수 있었고 그럴 때마다 혹시 그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면 어떡하지 생각하며 불안에 떨었다.
내가 방에 들어오고 20분 정도 지나서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미안. 걱정 말고 잘 자.
어떻게 잘 자란 말인가. 잠금장치도 없는 문을 사이에 두고 걷는 것부터 물 마시는 것까지 그가 내는 모든 소리를 들으며 깨어 있었다. 정말 졸렸지만 잠들 수 없었다. 분명 전에 내가 친구 이상을 찾는 거라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고 했을 때는 절대 그런 거 아니라며 걱정하는 나를 오히려 이상하게 봤었다. 그렇게 믿음을 주면서 걱정을 덜어줄 때는 언제고. 여자친구는 있지만 키스해도 되냐던 남자와 섹슈얼한 건 바라지 않는다면서 끌어안고 키스하려던 카우치서핑 호스트. 내 기억 속 파리는 이런 곳이 되어버렸다.
아침 6시에 손을 떨며 짐을 싸서 정말 조용히 나왔다. 반쯤 열린 그의 방문 앞을 지나며 제발 그가 깨지 않길 바라며 느낀 두려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서서히 해가 뜨는 조용한 주택가 버스정류장을 향해 뛰다시피 걸을 때조차 여전히 누군가 나를 쫓아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섭고 불안했다.
길 가다 백인 남자가 곁을 지나가기만 해도 화들짝 놀라고, 그가 자주 불던 휘파람 소리가 나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여자만 있는 한인민박에 들어와서 마음이 편해졌을 때에서야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 어젯밤 그의 태도에 실망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조심성이 없었던 거 아니냐고 내 탓을 했다. 그는 "그러게 앞으로는 남자랑 같은 소파에 앉아서 티비보지 마라"고 했다.
머릿속으로는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지만 무의식적으로 계속 자책을 했다. 내가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애초에 영화 안 본다고 했더라면, 카우치서핑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며 시간과 감정을 소모했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일년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건 직후에는 남성에 대한 전반적인 두려움마저 생겼다. 하지만 이후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 트라우마도, 자책도 나아졌다.
파리에 대한 첫 기억이 망쳐진 건 안타깝지만 이것 때문에 워커웨이까지 날릴 수는 없었다. 한인민박에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내리 잠만 자며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대망의 다음 날, 기차를 타고 첫 워커웨이 호스트를 만나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