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핫팬츠에 하이힐을 신은 남자

by 펜얼티밋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내리는 순간 난생 처음 해외에 나가, 그것도 모르는 사람 집에서 몇 달을 살다 온다는 게 현실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눈앞에 두고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 일단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니 짐 찾는 곳과 전철역이 나왔다. 짐은 달랑 20인치 캐리어 하나와 대학 다닐 때 책가방으로 쓰던 백팩 뿐이었기 때문에 짐 가지고 씨름하지는 않을 수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의 악센트를 알아듣느라 고전하며 물어물어 겨우 파리 시내까지 전철을 타고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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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로 나오는 순간 지는 해를 받은 센느강과 아름다운 다리들이 장관을 이루어 숨을 멎게 했다. 건물들은 몇백년 역사의 고풍스러움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이사 한 번 가본 적 없는 읍내 토박이인 내가 유럽에, 그것도 파리에 있다니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도시 풍광부터 주변을 꽉 메우고 있는 사람들의 외모, 언어까지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다. 생 미셸 다리에 멍하니 서서 생애 첫 외국 도시의 모습에 깊이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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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보이지 않았고 고층빌딩도 없었다. 건물들은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고 창문 옆에는 색색깔 화분이 걸려 있었다. 친구와 함께였더라면 서울과 파리의 다른 점 백만가지씩 이야기하면서 세 시간은 서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파리 시내에 도착했을 때가 이미 오후 9시였다. 카우치서핑 호스트 쥘과 오후 11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그의 집이 위치한 동쪽 외곽의 몽트뢰유는 지하철과 버스를 환승해 50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서울에서 이동할 때도 길 헤매는 30분을 추가로 잡고 가는 길치인데 파리는 오죽하랴. 서둘러 발을 떼야 했다. 더군다나 여기는 안내판도 읽을 수 없는 프랑스 아닌가. 혼자 캐리어를 가지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구글맵으로 잘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동시에 소매치기 무서워서 5분에 한 번씩 가방과 핸드폰을 확인하는 건 꽤 지치는 일이었다. 외국인과 외국어에 주눅 든 채 사방을 경계하며 줄어드는 핸드폰 배터리에마저 초조해하고 있었다.


날은 이미 어두웠고 환승을 거듭할수록 인적은 드물어져만 갔다. 여기서 버스 잘못 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카우치서핑 호스트와 갑자기 연락이 끊기면 어떡하지, 가다가 소매치기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온갖 걱정으로 불안해하며 약속 장소에서 그를 기다렸다. 깜깜한 거리에 가로등만 띄엄띄엄 서 있었고 가끔 보이는 사람들은 나를 흘깃거리며 지나갔다. 호스트는 30분 정도 기다려달라고 했다. 안 그래도 혼자 외국에서 주눅 들고 무서운데 밤 11시 한적한 거리에서 나 여행자요 티 내며 서 있는 건 극도의 긴장감을 주었다. 최대한 무섭지 않은 척 하며 보조배터리로 핸드폰 죽는 것만 어떻게든 막고 있었다.


죽으러 유럽에 온 건데 막상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졌다. 나에 대한 혐오가 다시 몰려왔다.


그는 결국 자정이 넘어 도착했다.


낯선 남자 집에 들어가 며칠 자는 데 자원했기 때문에 나름 긴장하고 있었지만 그는 괜찮은 사람 같아 보였고, 짧은 대화 후 나는 곧 그가 마련해준 방에 들어가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6월 말 파리에서는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를 일컫는 말)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었다. 운 좋게 시간이 맞아 군중에 섞여 구경하기로 했다.


거리에는 총을 든 파리 경찰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거대한 카메라를 든 사람, 무지개를 몸에 그린 사람, 성 소수자 관련 전단과 무지개 깃발을 나눠주는 사람 등 전날과는 거리 풍경이 완전히 달랐다. 게이바의 호스트들은 가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적극적으로 홍보 댄스를 추기도 하고 거리 빵집은 남성의 성기 모양 빵을 구워 진열해놓기도 하는 등 엄청난 오픈마인드로 내게 약간의 문화충격마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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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대로를 따라 몇 시간에 걸친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여러 단체들에서 커다란 행사용 트럭을 꾸며 노래와 춤을 선보이며 지나갔고 핫팬츠와 힐을 신은 남성, 손을 잡고 걸어가는 동성 커플, 행사를 응원하는 시민 등 퍼레이드에 참가한 사람들이 진심으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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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파리의 기록적인 더위 속 경찰들은 물 호스로 시민들의 더위를 식혀주고 있었고 사람들은 웃으며 물줄기 밑으로 들어가곤 했다. 경찰과 시민 모두 즐거워보였다. 하나의 가치를 지지하며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모여 행복하게 웃고 있다는 사실이 감동마저 주었다.


프랑스는 국회와 행정부도 LGBT 행사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며 성 소수자 문제에 관해서는 충격적일 만큼 한국과 차이를 보인다. 파리 시청에 LGBT 커뮤니티를 지지하는 무지개 깃발을 걸어놓을 정도다. 한국에서도 서울 퀴어 문화 축제를 개최하는 등 LGBT 커뮤니티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는 추세지만 여전히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성 정체성만으로 판단하고 차별하는 일이 곳곳에서 발생한다. 짐작컨대 한국의 대다수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수준까지 가려면 십 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파리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자신의 튀어나온 배, 광고에서 보여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가슴과 체형 등을 전혀 숨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상대에게 맞춰주는 걸 미덕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내 인생의 소원은 언제나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먹고 살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내가 함께 있고 싶은 사람들과 있는 것. 내가 추구하는 것을 알고 당당히 드러내는 것 말이다.


이 모든 건 나 자신으로 살 때 가능한 일이다. 나를 숨기지 않고 누군가에게 맞춰 바꾸지 않을 때에서야 비로소 가능하다. 나에게는 인생의 과업처럼 힘든데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다. 이걸 언젠가 이뤄질 이상적인 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성인이 되는 순간부터 당연히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쥘은 어느 정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몇 달간 여행을 했고 지금은 자연 해설가로 살고 있다. 카메라만 있으면 누구나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직접 노란 조끼 시위를 취재하러 가기도 하고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영어로 자기소개조차 할 줄 몰랐던 그는 여행하며 길에서 영어를 배웠고 지금은 나와 막힘없이 영어로 소통 가능한 수준이다. 카우치서핑으로 전 세계 여행자들을 받으며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으며 그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나를 잘 모르고 그걸 더 잘 알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그는 그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마음 깊은 곳에 언제나 원해 왔던 게 있을 거라고 했다. 그게 직업이든 삶의 방식이든 내 마음 깊은 곳에 언제나 자리 잡고 있던 것, 그게 내가 진정 바라는 거라고 한다.


그날 밤 그의 조언을 곱씹어 보며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물론, 아직 앞으로 그의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을 때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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