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내가 만든 장벽

by 펜얼티밋

에런은 본인의 건강이 그리 안정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타국에 남편과 떨어져 아이를 혼자 돌보고 이 넓은 집을 관리하며 외국의 낯선 여행자들을 받아 리모델링까지 진행했다. 집안일과 육아, 외국에 살면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 자신의 건강, 쏟아지는 워커웨이 이메일, 사람 관리까지 모든 일을 혼자 해내고 있었다. 물론 집안일과 육아는 워커웨이어들이 상당 부분 도와주지만 집에 사람을 들임으로써 발생하는 일거리와 문제도 있었다. 그녀는 그 모든 일을 처리하는 동시에 항상 유쾌하고 사려 깊었으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다. 곁에서 보면 멋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에런의 남편 톰은 독일 주둔 영국 육군 장교였다. 그는 되도록 자주 가족들을 보러 프랑스로 왔다. 그때마다 딸 릴리는 신이 나 어쩔 줄을 몰랐다. 내가 도착한 지 일주일 정도 됐을 때 톰이 왔다. 그가 말이 빠르다는 이야기는 에런에게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세상에... 그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아직 영국 발음이 익숙하지 않았던 내게 그는 큰 도전이었다. 에런과 다르게 발음뿐 아니라 호흡까지 딱딱 끊는 느낌이었다. 그는 유머 감각마저 상당히 매트했다. 알아듣지 못하면 이게 농담인지조차 구분되지 않는 유머였다. 유독 그와는 공통점도 별로 없었고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았다.


내가 영어를 끔찍이 못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실전 영어는 달랐다. 특히 영국 사람들조차 말 빠르다고 인정하는 그와의 의사소통은 쉽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전적으로 부족한 영어 탓은 아니었다. 완벽하지 않은 영어 실력을 끔찍이 나쁘다고 여겨 그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 탓이었다. 그저 부딪쳐보는 게 두려웠기 때문에 그와 대화할 상황은 되도록 피했고, 못 알아들어도 알아들은 체 넘기곤 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그리고 슬프게 그와는 끝까지 어색한 사이로 남고 말았다.


내가 철판 깔고 조금 더 다가갔더라면 그와 농담 정도는 주고받는 사이가 되지 않았을까. 외국에 처음 나갔다면 원어민 5명이 빠르게 주고받는 대화를 못 따라갈 수도 있고, 농담인지 알 수 없는 영국 유머를 이해 못 해 분위기 어색해질 수도 있는 건데 그걸 왜 그렇게 부끄럽게 여겼는지, 지금 와서는 아쉬움이 크다.


첫 데이오프를 맞은 토요일이었다.

평일에도 힘들 정도로 일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공식적인 휴일은 기분이 새로운 법이었다. 첫 쉬는 날을 맞아 뭘 할까 싶었는데 근처 타운에 토요 마켓이 열린다고 해서 다 같이 나들이를 갔다.




그렇게 크지 않은 마을이었지만 그래도 은행, 우체국, 서점, 레스토랑 등 우리가 시내에 기대하는 거의 모든 게 다 있었다. 시골에서 주말에 읍내 나가는 느낌이랄까. 시골 타운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고가의 수제숍 같은 것들도 보였다. 가서 다 같이 재빠르게 둘러보고 카페 노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아 음료를 마시기로 했다.


북적북적한 카페의 테이블을 가까스로 하나 잡고서 톰이 뭐 마실 거냐고 물어봤는데 그것조차 한 번에 못 알아들어서 창피했다. 심지어 프랑스 카페에서는 뭘 파는지도 모르고 메뉴판조차 없어서 어떤 음료를 기대하고 주문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만 뭔가 모를 때 또는 나만 다르게 하는 게 있을 때 왠지 모르게 창피했다. 나 이외 세 명의 워커웨이어들은 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거나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프랑스와 영국의 언어, 유머, 음식에 큰 어려움 없이 녹아들어갔다. 반면 나는 모든 게 새롭다는 사실에 흥분하면서도 심하게 긴장했다. 모난 돌처럼 여기저기 머리를 부딪히며 이건 아니고 저건 맞고를 반복하며 점점 둥글게 나를 깎아가야 하는 느낌이었다.

지금에서야 아시아에서 온 나와 영미권에서 온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게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내가 잘못된 줄 알았다. 모르면 당당하게 웃으면서 물어보고 새롭게 알아가면 되고, 모른다는 사실에 창피해할 거 하나 없었지만 여행 초반에는 그러지 못했다.


이곳의 모든 문화가 새로운 만큼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같이 느껴졌다. 거절하는 것, 사과하는 것, 고맙다고 하는 것, 안부를 묻는 것, 하루 종일 마주치는 모든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배워야 했다. 하다못해 어떤 종류의 음식을 어떨 때 먹는지, 식기세척기를 어떻게 쓰는지, 카페에서 주문은 어떻게 하는지 같은 것들까지 말이다. 기초 역사, 문화, 지리 상식도 한국과 많이 달랐다. 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 나를 위축시켰다. 그래서 계속 눈치를 보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 보고 따라 하거나 몇 마디 못하고 듣기만 했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으로 인해 나의 다름을 틀림으로 생각하고 개조하려고 했다. 다름을 당연하게 보고 인정해야 했지만 인정이 아니라 다름 자체에 집중했다. 그저 받아들이고 배우는 데 집중하면 되는데 항상 나부터 깎아내리기 바빴다. 이 사람들에게는 기초적인 걸 나만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어쩔 수 없는 다름을 내 부족 탓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영어 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화에 잘 끼지 못하고 세계사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어른 같았는데 나만 어린애 같았다.


그러나 모른다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영어 공부를 더 했더라면, 세계사 공부를 더 했더라면 분명히 덜 어렵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만났을 때 다름으로 인해 발생한 어려움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양쪽에서 노력하여 다름을 인정하고 극복할 수는 있겠지만 첫 만남에서 그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그게 온전히 한쪽의 부족이 될 수는 없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결국 그게 성장 동기가 되어주었고 끊임없이 모르는 것들을 상기시켜줬다. 스트레스는 막대했지만 무지가 부끄러워서라도 공부하려고 노력했다. 영어 공부뿐 아니라 인종 차별과, 특히 세계사에 대해 공부하게 만들어주었다. 이 다름이 다방면에서 영감도 많이 주었고 다양성을 다루는 방법도 가르쳐주었다. 외국에 있는 것만으로도 인생에 동기부여가 됐다. 친구들과 더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어서 스스로 영어 공부를 했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알아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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