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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얼티밋 Jan 23. 2021

23. 하우스 시팅과 죽은 오리

 다음 날 아침 카풀을 타고 애런네 동네를 향해 2시간을 넘게 달렸다. 차가 맥도널드 주차장에 들어섬과 동시에 애런의 오래된 컨버터블 푸조가 눈에 들어왔다. 운전자가 나를 내려주자마자 우리는 포옹을 나눴다.



 애런의 정원 자갈길이 자동차 타이어 밑에서 자르륵 소리를 내자 여름의 기억이 반갑게 되살아났다. 큰 서랍을 낑낑대며 정원으로 들고 나와 다른 사람들이 모두 햇살 아래 자리를 잡을 때 나 홀로 햇살을 피해 자리를 잡고 사포질을 하고는 했다. 기온이 36도가 넘는데 선탠을 왜 하냐, 타 죽을 일 있냐던 나와 햇살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던 친구들의 논쟁 아닌 논쟁도 떠올랐다.

 

 크리스티나와 리아는 크리스마스를 지나 도착하기로 했기 때문에 2주 정도는 내가 이 집의 유일한 워커웨이어였다. 게다가 그중 5박 6일은 애런과 바이올라가 영국에 톰을 보러 가기 때문에 혼자 하우스 시팅을 해야 했다. 문제는 동물들이었다. 분리 불안이 있는 저먼 포인터와 열세 마리의 닭, 세 마리의 오리와 두 마리의 고양이를 혼자 돌봐야 했다. 떠나기 전 애런이 기본적인 일과를 가르쳐 주었지만 나의 부주의로 한 마리가 없어지거나 죽을까 봐 겁이 났다.






 눈을 뜨자 이미 넓은 집에 나뿐이었다. 축축한 겨울의 프랑스 땅을 딛기 위해 애런의 장화 중 하나에 발을 꿰고 나섰다. 헐렁해서 모양이 일그러지는 고무장화의 뒤축을 질질 끌며 뒷마당의 닭장과 오리집을 살피러 갔다. 닭과 오리들을 풀어주고 보니 오리집 밑으로 애런이 돌로 막아놓은 작은 족제비 굴이 보였다. 밤이 되면 족제비가 닭과 오리들을 잡으러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매일 아침 닭과 오리들을 풀어주며 숫자를 세고 밥과 물을 주고 알을 모은다. 오후 2시쯤 다시 한번 상태를 체크하고 알을 찾으러 나선다. 창고에서 발견되는 달걀 수가 닭장에서 발견되는 달걀 수보다 많단다. 수거한 달걀에는 매직으로 일/월을 적는다. 한국과 반대로 일수가 먼저 와서 항상 헷갈렸다.


 누구한테 물려가지는 않았는지, 물과 밥이 있는지만 체크해주면 닭과 오리들은 저들끼리 바닥을 쪼고 넓은 정원을 뛰어다니며 알아서 하루를 잘 보냈다. 뒷마당 바닥이 온통 묽은 새똥으로 가득해서 정원에 나갈 때는 꼭 장화를 신어야 한다는 것과 해가 지기 전에 닭은 닭장으로, 오리는 오리집으로 숫자를 잘 세서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만 주의하면 됐다.

 

  저먼 포인터 알로이셔스도 분리 불안이 있기는 했지만 산책을 잘 가주고 같이 소파에 올라와 있게만 해주면 괜찮았다. 커다란 엉덩이를 나와 같은 소파에 있겠다고 어떻게든 내 엉덩이 옆에 욱여넣는 멍멍이와 소파 등받이 위에 몸을 말고 있는 야옹이들은 거실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 보기가 거의 전부인 나의 하루 일과에 완벽히 동화되었다. 내가 자기 위해 매일 밤 3층에 위치한 내 방으로 올라올 때면 어떻게 해서든 내 침대 위에 같이 올라오려고 하는 나와 비슷한 덩치를 가진 멍멍이 때문에 결국 다섯 밤은 소파에서 잤으니, 소파가 정말 나의 하루였다.






 애런의 집은 다이닝룸, 벽난로, 3미터가 넘는 층고를 가진 3층짜리 시골 주택이었다. 워커웨이어가 네 명 밑으로 떨어진 적 없던 여름과는 정반대로 적막이 흐르는 3층 집은 슬퍼 보였다. 혼자 소파에 앉아 있으면 외로움을 넘어 공허하기까지 했다. 겨울 해가 진 뒤 불빛이 닿지 않는 곳에 시선이 머물 때면 컴컴하니 무서웠다. 밤에는 왠지 초대받지 않은 누군가 이 넓은 집에 몰래 들어와 있을 것 같아 묘하게 긴장됐다. 문단속을 철저히 했고 거실의 커튼은 모두 닫았다. 오싹함과 긴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늑함의 상징인 벽난로에 불을 때고 크리스마스트리 조명도 켜 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입을 열 일도 없었다. 

 이제 바이올라도 학교에 다녔다. 워커웨이어가 없을 때는 애런도 나처럼 혼자 넓은 집에 덩그러니 있었을 텐데 그녀는 어떻게 감당하고 있었던 걸까. 집이 클수록 공허함도 크다. 물론 애런은 큰 집에 혼자 있는 걸 즐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큰 집 따위 필요 없다는 걸 깨달았다. 큰 정원도, 잔디도 필요 없고 바비큐 기계도, 개도 필요 없다. 그저 나와 사랑하는 사람이 살 만한 적당한 집이면 된다. 집이 크면 외롭기만 하고 관리도 힘들다. 애런청소는 그대로 대청소다. 1층부터 3층까지 쓸고 닦으려면 시간이 증발해버린다. 내게는 약간 모자랄 정도의 집이면 충분하다. 집보다는 누구와 함께 사느냐가 더 중요할 테니 말이다.



 반대로 간만에 온전한 자유를 누리는 건 좋았다. 어찌 됐든 누군가와 함께 살면 자는 시간, 먹는 시간, 휴식 시간에 하는 것들까지 맞춰야 하니 말이다. 워커웨이는 좋은 여행법이지만 언제나 호스트의 생활에 내 하루가 묶여있다는 점에서 제약이 많다. 피곤해서 자고 싶어도 같이 보던 영화를 끄고 잘 수는 없으니 소파에서 끄덕끄덕 졸아야 하고 시내에 나가고 싶을 때도 호스트가 나갈 일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배고파도 밥 시간을 항상 맞춰 먹어야 했다. 


 혼자 있으니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보고 싶은 걸 보다가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었다. 어떤 노래를 틀든 어떤 영화를 보든 웃든 울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까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혼자 있어서 외로웠지만 따라온 자유는 나쁘지 않았다.






 며칠 동안 하우스 시팅은 순조로웠으나 여섯 번째 되던 날,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알로이셔스는 현관문을 열어 주면 알아서 정원에 배변을 하고 들어오기 때문에 그날도 평소처럼 문만 열어주었다. 가끔 닭들을 귀찮게 굴기는 하지만 물어 죽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시간에 한 번 정도 문을 열고 나 없이 개만 내보냈다. 오후 열두 시에 한 번, 두 시에 한 번 문만 열어주다가 네 시에 문을 열어줄 때는 나도 정원으로 함께 나갔다.


 본채에서 뒷마당으로 이어지는 자갈길에 하얀 형체가 누워 있는 게 보였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끼며 걸음을 빨리했다. 하나인 줄 알았던 흰 점은 점차 두 개로 나뉘었다. 가까이서 보니 마리의 오리가 땅에 누워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눈을 감고 서로 30센티 정도 떨어져 누워 있던 오리들 옆으로는 몇 방울의 피가 떨어져 있었다. 혹시나 숨을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몸에 손을 대보았다. 손끝에 매끄럽게 닿는 깃털은 놀랄 만큼 푹신하고 부드러웠다. 동시에 차가웠다.


 두 오리 모두 숨은 쉬지 않았고 이미 체온이라 부를 만한 건 사라지고 없었다. 죽은 채로 한 시간 이상 지난 것 같았다. 한 마리를 살짝 들어 올려 몸을 살폈는데 큰 상처는 발견하지 못했다. 하얀 몸체 위로 붉은 반점 몇 방울이 튀어있을 뿐이었다.


 죽은 오리를 보자마자 이걸 애런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환한 대낮에 오리를 죽일 만한 건 알로이셔스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 없이 알로이셔스를 혼자 내보낸 그 두 번의 배변 시간에 오리를 물어 죽인 게 분명했다. 애런에게 전화해서 내가 알로이셔스를 잘 보지 못하는 바람에 개가 오리를 물어 죽였다고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오리를 얼마나 귀여워하는지 알기 때문에 미안함과 죄책감이 컸다. 



 오리가 죽었다고 더듬거리는 내 전화를 받은 애런은 오히려 침착했다. 그녀는 오리를 죽인 게 알로이셔스는 아닐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혹시 우리가 오리들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근육이 딱딱해지는 걸 막기 위해 오리들을 창고 대들보에 달아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그녀가 보내준 예시 사진을 보니 말 그대로 목에 고리를 걸어 어딘가에 매달아야 했다. 창고를 뒤져 노끈을 찾았지만 거의 새끼줄 수준이라 오리 무게를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밤중에 줄이 끊어진다면 쥐와 짐승들, 어쩌면 이 집 고양이가 와서 건드릴 수도 있다. 결국 새끼줄과 어딘가에서 찾은 철 와이어를 얽어 단단하게 만든 후에야 오리 머리에 걸 수 있었다. 여전히 오리 몸통은 푹신하고 부드러웠다. 매끄럽고 폭신한 목 근처의 털에 천천히 줄을 감고 와이어가 피부를 파고들지 않게 조심히 매듭지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생각해보니 어려서부터 키우던 개를 제외하고는 나와 한 번이라도 눈을 마주친 동물의 죽음을 목격한 적이 없었다. 이름을 불러주고 내가 '알고 있다'고 느꼈던, 살아 움직이던 동물이 이제는 차갑게 식어 미동도 없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큰 상처가 없었기에 오리들은 살아있을 때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죽음이라는 큰 강을 건넜지만 외관상으로는 그저 잠에 든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종종 죽음을 엄청난 것으로 생각하지만 어쩌면 삶과 죽음은 그저 종잇장 차이일지도 모른다. 내 품 안에 축 늘어져 있던 오리들은  삶이, 살아있음이라는 것이 언제나 위태로운 경계선 위의 줄타기임을 보여주는 듯 했다. 






 나중에 이 주변에 오래 산 이웃 한 분이 오셔서 오리를 살폈는데 털에 파묻힌 날카로운 이빨 자국을 보니 족제비의 짓이라고 확인해주셨다. 그제야 긴장이 좀 풀리며 죄책감에서 놓여났다. 어차피 내가 막을 수 있는 건 없었을 것이다. 설령 애런이 집에 같이 있었다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족제비에게 나쁜 균이 있을 수 있어 오리는 먹지 못했다. 땅에 묻으면 알로이셔스가 파내서 물고 다닐 수 있었기에 결국 오리들은 일반 쓰레기봉투에 담아 보내야 했고 그렇게 생애 첫 하우스 시팅과 내 손으로 목을 메단 오리 해프닝이 지나갔다.



 *왜 족제비가 오리를 둘이나 죽여서 가져가지 않고 놔뒀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지역 이웃분 말씀으로는 가끔 족제비가 필요 이상으로 가축을 죽이는 일도 있다고 한다. 죽은 오리 둘 말고도 닭 한 마리가 없어진 걸로 봐서는 닭을 데려가고 오리는 그냥 죽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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