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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얼티밋 Jan 14. 2022

27. 독일이란 나라는


 어렵다.     


 독일 워커웨이는 뮌헨 시내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시골에서 약 4주 정도 할 예정이었다. 이번에는 흥미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서 말을 키우며 동물 관리제품 판매업을 하는 가족 사업가의 집에 머물기로 했다. 할 일은 주로 동물들 배변 청소와 식사 챙겨주기, 산책 등이었다. 이곳을 택한 이유는 독일에서 다소 희귀한 언어인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아는 딸이 있다는 소개글에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상상과는 많이 다른 스테이가 되어버렸다.     


 이 스테이 이전에 만난 독일인과 이후에 만난 독일인들을 모두 합쳐서 지금까지 총 여섯 명의 독일인과 함께 지내봤지만 그중 세 명은 참...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어려웠다. 그리고 그 세 명 중 단연 독보적인 한 명이 있었으니, 바로 이 집 호스트 마리였다. 이 집을 뺀 나머지 세 번의 워커웨이 경험을 토대로 한다면 누구에게나 박수치며 워커웨이를 추천할 수 있었겠지만 마리를 겪으며 결코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배웠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골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마리는 홀로 큰 캐리어와 함께 멀뚱멀뚱 서있는 나를 바로 알아보았다. 역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마리의 집은 건물 세 채와 말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작은 마장까지 모두 흰 눈에 폭 파묻힌 상태로 나를 맞았다. 독일 남부지만 한국 겨울만큼이나 가차 없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우리는 내가 지낼 숙소 문을 재빨리 열고 들어갔다. 아예 대문 밖 도로로 따로 문이 나 있는 개인 숙소는 먼지가 보얗게 앉아 있긴 했지만 거실 겸 주방, 싱글 침대가 두 개인 넓은 침실, 욕실까지 갖춘 아파트 구조였다. 호스트와 떨어져 온전히 혼자 쓸 수 있었고 개인 욕조도 있어 고된 하루를 보내고 한국에서 가져온 허니버터아몬드를 씹으며 목욕을 즐길 수도 있었다.     



 마리는 집 몇 채와 숲뿐인 시골 마을(이 집에 머무는 동안 이웃이라고 할 만한 사람을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매일 차로 출근하는 직원만 세 명 보았을 뿐인데 마을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에서 남편과 함께 동물 관련 제품을 개발, 판매하는 사업을 했다. 그녀는 강직하고 단호한 인상에 호쾌한 웃음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자기주장이 강하고 엄격했다. 가끔 마냥 기분 좋게 들을 수 없는 말을 할 때도 있었다.


 남편 루터는 풍채가 아주 좋은 카우보이상이었다. 정말 어디 목장 하나 할 것 같은 모습으로 호탕하게 껄껄 웃으며 장난삼아 나를 놀리고 농담을 하다가도 뒤에서 이것저것 챙겨주는 츤데레 스타일이었다. 영어가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일에 관련된 간단한 이야기는 주고받을 수 있었고 나머지는 딸 한나가 통역을 해주고는 했다.


 한국에 교환학생을 간 적이 있고 한국과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20대 중반 딸 한나는 가까운 도시에서 심리상담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주말마다 찾아와서 일을 도왔다. 한나는 한국 문화를 잘 알았고 심지어 태민을 아주 좋아하는 데다가 여러 사회 안건에 대해 나와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어서 주말이면 소파에 누워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마리의 집에 도착한 당일, 늦은 저녁을 함께한 후 루터는 출장 때문에 바로 차를 몰고 나갔다. 앞으로 며칠 동안은 나와 마리만 있을 예정이었다. 사업을 하는 가족이라 그런지 출장이 잦은 모양이었다. 루터가 돌아오면 마리가 휴가를 가고, 내가 떠나기 일주일 전에는 다시 루터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긴 출장을 간다고 했다. 그가 없는 사이 혼자 동물 관리를 하기는 힘든 까닭에 마리가 내게 며칠 정도 더 있어줄 수 있냐고 물었지만 독일 다음인 이탈리아 호스트와의 약속 때문에 거절해야 했다. 이탈리아 호스트는 그쪽에서 먼저 고정된 날짜의 2주를 제시했기 때문에 일정이 어긋나면 아예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때 마리는 내게 중요한 질문을 뒤이어 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나중에 그것 때문에 정말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이 생기고 말았으니.     


 일을 시작하는 첫날, 7시 알람 소리에 힘겹게 눈을 떴을 때는 아직 사위가 캄캄했고 뺨으로 느껴지는 이불 밖 공기는 차가웠다. 따뜻한 이불속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꾸물꾸물 일어나 대충 얼굴에 물을 찍어 바르고 옷을 챙겨 입은 뒤 문을 열고 나오자 어젯밤 계단 위의 내 발자국은 밤새 내린 눈 속으로 지워져 버리고 없었다. 1월 독일 남부의 추위는 아주 매서웠다.

 

 옷깃을 단단히 여미며 마구간으로 향했다. 말들을 보고 있던 마리는 나를 발견하고는 하루 일과와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설명해주었다.      


 매일 아침 일과는 7시 30분에 시작됐다. 전날 밤에 불려둔 말밥을 주고 밤새 겨울바람과 눈 때문에 바닥에 얼어붙어 있는 말똥을 깨부숴서 수레에 실으며 아침을 시작한다. 말 세 마리, 개 한 마리와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은 강아지, 닭 열세 마리, 고양이 다섯 마리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신경 써줘야 할 건 언제나 말이었다. 

말은 하루 식사를 다섯 번에 나누어 했고 식사를 할 때마다 성격에 따라 분리되어야 했으며 마구간에는 끊임없이 똥이 쌓였다. 가장 예민한 동물이기도 했다. 그중 한 마리는 특히 예민한 성격이라 주변에서 움직일 때면 아주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를 들었다. 말이 발로 나를 걷어찰 수 있을 사정거리 안에 들어갈 때면 항상 긴장했다. 



 다음은 닭을 볼 차례다. 우선 닭장 곳곳에 쌓인 닭똥을 긁어낸다. 물통의 짚과 엉겨 밤새 얼어붙은 물을 버리고 깨끗한 물과 밥을 주기 위해 닭장 바로 옆 사무실 건물에 들어가면 사무실에 사는 고양이 A가 밥을 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사료 팩을 까서 A의 그릇에 부어주고 나면 밖에 사는 세 마리 고양이의 밥을 챙겨줄 차례다. 건식 사료와 습식 사료를 섞어 밥을 만든 뒤 본채 앞에 놓아주면 사무실 고양이 A의 아들들인 B, C, D가 와서 먹는다. 그리고 본채 안에서 나머지 한 마리 E까지 밥을 먹이면 닭과 고양이 아침일과는 끝이다.


 이쯤 되면 개와 태어난 지 몇 달도 안 된 아기 강아지가 아까부터 산책을 가자고 조르고 있다. 완전히 해가 뜨지 않은 겨울 아침에는 개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기 위해 빨간 LED 목걸이를 채우고 주머니에는 간식과 목줄을 넣은 채 집 뒤편 들판으로 나간다. 둘 다 신나서 달려 나가지만 너무 멀리 가지는 못하게 간간이 불러서 간식을 주며 20분 정도 걷는다. 혹여나 개가 근처 숲의 사슴이라도 보는 날에는 사단이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이걸 아는 이유는 실제 사단이 난 적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책까지 마치고 돌아오면 어느새 8시 30분이 되어있고 진짜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을 먹는 동안 오늘 해야 할 일을 듣고 받아적는다. 마리는 일을 하러 사무실로 가고 나는 아침상을 치우고 설거지부터 일을 시작한다. 빨래, 다림질, 마구간 청소, 시간 맞춰 말밥 주기, 말썽쟁이 강아지가 먹으면 안 될 것을 먹고 있나 눈 떼지 않고 주시하기, 개 산책하기, 본채와 사무실 청소하기, 식물 물 주기 등이 기본적인 일이었다.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동물을 보는 일이다보니 지속적으로 신경을 곤두세운 채 상시 대기해야 해서 항상 피곤했다. 게다가 이것저것 정해진 일일 퀘스트까지 마치면 저녁 7시쯤 눈이 감길 정도로 체력이 바닥났다.



 그래도 나름 괜찮았다. 새로운 독일인 가족을 알아가는 것도 즐거웠고, 무섭고 신경쓸 게 많기는 해도 말이라는 쉽게 보지 못하는 동물과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다. 독일의 가정식을 먹고 나무 보일러를 때는 과정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절대 손은 못 대게 했지만(한 번 도와주려다가 된통 혼났다). 그 집 개는 내가 본 개 중 가장 착하고 순해서 두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유 없이 꼭 안아주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건 마리에게 "왜 내 침실에 침대는 두 개인데 워커웨이어는 한 번에 한 명만 받느냐"고 물었을 때였다. 아파트가 넓기도 하고 볼 것도 할 것도 없는 시골에 친구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마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두 명이 일해도 둘이 떠들면 한 명분만큼밖에 일을 못하니까. 둘이 싸우면 골치 아프기도 하고."


 마리는 전에 친구 두 명을 워커웨이어로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둘이 싸우는 통에 일도 제대로 안 되고 자기만 스트레스를 받았단다. 그게 문제라면 이해는 가지만 이상한 건 첫 번째 문장이었다. 


 워커웨이어는 대부분 노동시장에서 돈으로 사고 팔 법한 죽기 살기로 하는 노동은 하지 않는다. 외국 여행자가 많기 때문에 일하다 다쳤을 때 병원에 가기도 쉽지 않고 정식 노동비자를 받고 일하는 게 아니라서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워커웨이어는 일손을 돕는 사람이지만 호스트 밑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아니며 직원도 아니다. 떠들면서 이야기한다고 두 명이서 한 명 몫밖에 못하는 것도 사실이 아닌 데다가 일하는 동안 대화를 하면서 호스트와 다른 여행자들을 알아가는 게 워커웨이의 묘미기도 하다. 만약 워커웨이어에게 숨 돌릴 틈도 없이 하루 다섯 시간의 고강도 노동을 바란다면 적어도 호스트가 본인 프로필에 작업 분위기와 작업의 종류, 부상 위험에 대해 설명해놓아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대화를 하면서 일을 해도 문제없는 이유는 워커웨이가 그저 일손보다는 문화교류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고된 작업량에 대한 고지가 필수는 아니기에 미리 안내하지 않았다고 해서 호스트를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워커웨이어와 호스트의 상호 기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으로 느껴질 수는 있다. 워커웨이어는 하루 작업량으로 평가받는 일꾼 취급을 기대하며 멀리까지 일을 도우러 오는 게 아니다. 호스트 집에서 일을 도와주며 머무는 여행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친구가 되고 싶은 거지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마리는 워커웨이어를 무보수 노동자에 더 가깝게 생각하는 듯했다.  

   


 스테이 내내 그녀와는 잘 맞지 않았다.

 둘 사이에 이미 정해진 역할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리는 나를 혼내고 가르치는 상사, 나는 혼나고 아무 말 못하는 어린 직원의 역할. 어쩌면 그녀가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이라 우리의 관계에서도 상사의 역할에 너무 몰입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하루는 아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마구간으로 나가보니 마리가 이미 모든 일을 끝낸 상태였다. 한 시간 일찍 눈이 떠져서 그냥 혼자 다 했으니 본채로 바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녀가 옷을 갈아입으러 위층에 올라가겠다고 사라졌을 때 나는 소파에 앉아 한창 20번대 확진자가 나오던 한국의 코로나 기사를 읽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가 계단을 타고 내려와서 말했다.


 “오늘 아침 일도 안 했으면서 식사 준비도 하지 않고 소파에서 스마트폰으로 놀고 있는 거야? 너 정말 뻔뻔하구나.”


 평소 식사하는 시간보다 한 시간이 일렀고, 무엇보다 내게 부탁한 적도 없는데 평소에는 각자 챙겨먹는 아침상을 내가 차려놓았길 기대했다는 말에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거기서 왜 화를 내냐고 세게 말했어야 했지만 여기는 마리의 집이고 둥글게 넘어가고 싶은 마음에 사과를 했다.


 “미안해요. 몰랐어요. 지금이라도 차릴게요.”


 그렇지만 마리는 됐다고 하고 나가버렸다. 듣는 사람과의 관계보다 언제나 자기 할 말을 중시하는 듯한 태도였다. 나는 네가 기분 나쁘든 말든 내 할 말 할 테니 너도 하고 싶으면 네 할 말 하든가, 그렇다고 들어주겠다는 건 아니지만, 이라는 태도가 냉담하게 풍겨왔다.     


 그녀가 정말 내 사장이라고 생각하는구나 확신이 들었던 사건은 한국에서 일을 하던 친언니가 코로나로 인한 경기 침체로 권고사직을 받아 다니던 일을 그만두었을 때였다.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는 항상 내가 했고, 특히 아침에는 마리가 바로 출근을 해야 해서 혼자 본채에 남아 정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날은 힘들어하는 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릇들을 식탁에서 설거지통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때 뭔가를 가지러 마리가 본채로 다시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통화를 끊을 때까지 나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스마트폰을 내려놓자마자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일인데 통화를 그렇게 오래 해?"

 "언니가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받아서 그만뒀대."

 "그래? 그건 알겠는데 넌 여기 놀러 온 게 아니라 일하러 온 거고, 나는 네가 핸드폰 내려놓고 일에 집중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지금 독일에 있는 네가 무슨 수로 언니를 도와주려고 그렇게 오래 이야기해?"


 와우. 

 말문이 턱 막혔다. 누가 보면 내가 그 집 도비인 줄 알겠다. 언니가 잘렸지만 네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으니 조용히 아침상 치우는데 정신을 집중하라니. 언니 괜찮냐, 설거지해줘서 고맙다 그런 것보다 네가 내 그릇 닦는 데 어디 통화를 하냐 이 말이 더 먼저 나왔다.      


 마리가 분명 같이 있기 편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싫은 티는 내고 싶지 않았고 앞으로 몇 주를 함께 있어야 하는 만큼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싫은 소리 잘하는 성격도 아니라 그저 참고 사과하고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순진하기만 한 소리다. 이런 사람이 워커웨이 호스트 목록에 올라 있어도 되는 건가(따지고 보면 안 될 이유는 없지만 마리의 마인드를 생각해보면 껄끄러운 스테이가 될 확률이 높은 것 같다), 이 사람들이 나를 마지막으로 워커웨이 탈퇴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일 때는 문제가 있음을 밝히고 서로 갈 길 가는 게 나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결국 4주 동안 비슷한 에피소드가 수십 개 더 쌓이고 말았다. 


 부탁받지 않은 날에도 소파 청소, 본채 청소, 빨래 다리고 개기, 설거지 등을 했지만 고맙다는 말을 들은 적은 손에 꼽는다. 마리가 휴가 간 동안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그녀 남편을 위해 하루 세끼 요리를 해주길 기대했다(고맙다는 말은커녕 심지어 해달라고 부탁을 받은 적도 없다. 자연스럽게 내 의무처럼 말했다. 그래도 차라리 그녀가 없으니 편했다. 루터는 둥근 성격에 재미있는 사람이었고 이때 그와 많이 친해졌다. 하루는 요리를 못하는 그가 미안해서 그랬는지 한나와 셋이 인도 식당에서 외식을 하기도 했다).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걱정하고 있다가 독일에서만 일 년에 독감으로 2만 5천 명이 죽는데 사람들이 괜히 이런 것만 걱정한다고, 특히 중국인들은 대기오염 때문에 폐가 안 좋아서 더 많이 죽는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째 말이 통하지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마리를 미워했던 것도 같은데 그렇다고 그녀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나와 많이 다른 사람, 워커웨이 호스트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하고 싶다. 냉철하고 독단적이고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내 의사소통 방식과 다른 의사소통 방식을 가진 사람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애초에 그녀가 문화교류를 원했을까, 돌이켜보면 그녀는 그저 잡부를 원했던 것 같다.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혼나면 혼나는 대로 일하는 사람을 원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워커웨이어는 잡부가 아니고, 마리는 대신 돈 주고 사람을 쓰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녀를 겪으며, 그리고 나중에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나보다 훨씬 현명한 대처를 한 영국 친구를 만나며 의사소통 방식이 다른 사람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핵심은 말의 형식에 기분 나빠하지 않고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마리는 말의 형식보다는 내용에 집중해서 듣는 사람 기분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중요시했고 항상 나를 가르치려 했지만, 어쩌면 그녀는 그저 언급되지 않은 애매함을 싫어하는 것뿐이고 정말로 나에게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말의 내용보다는 형식에 쉽게 기분 좋아졌다 불쾌해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알맹이만을 받아들이려 하면 누군가의 말투만으로는 덜 상처받을 수 있다. 누군가 내 인생의 보스처럼 모든 것에 훈수두고 가르치려 할 때 기분 나빠하기 보다‘그래, 정말 배울 게 있을지도 모르지’ 하고 생각할 때는 의외로 정말 뭔가를 배우기도 한다.      


 뭐, 하지만 교훈은 교훈이고, 마리가 나의 노동과 추가적인 도움까지 당연시하고 해고당한 언니와 통화 끊고 설거지에나 집중하라고 했던 건 교훈으로 치고 좋게 봐주긴 힘들다. 하지만 그녀와 지내면서 배운 것이 있고 지나고 돌아보면 살짝 고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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