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년의 휴학을 마치고 복학했다. 수많은 선택지들과 전과를 고민했지만 결국 사회학으로 돌아왔다.
공부를 하기 위해, 사회학으로 돌아왔다. 이전 글에 적었듯이 복학할 생각에 두려움보다 설렘이 더 컸다. 누가 가라고 해서 가는 게 아니라 정말 내가 공부하고 싶어서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를 떠나있으면 그 소중함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고, 공부할 생각에 가슴이 다 뛸 정도였다.
나는 2학년 1학기부터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부푼 꿈을 안고서, 대학생활이 이렇게 치열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대학교는 더이상 공부하는 공간도, 20대 초반의 자유와 낭만이 있는 공간도 아닌 것 같다. 학생들은 취업준비로 바쁘고 학업과 알바 양쪽에 치여산다.
토익, 학점은 이제 너무 당연하다. 거기에 더해 대외활동, 공모전 수상, 동아리 활동, 봉사, 자격증까지 필요하다. 이게 취업을 위해 필요한 거냐면 그것도 아니다. 사실 인턴 합격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다. 취업 전선에 뛰어들려면 저기에 인턴 몇 번까지 더해야 한다. 다들 이 정도 스펙은 가지고 있어서 이 정도로 내가 더 뛰어난 지원자가 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안 가지고 있으면 떨어지는 스펙이 되어버렸다.
사실 이런 얘기 많이 듣긴 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요즘 대학생들 바쁘다, 힘들다는 말 뉴스에서 많이 들었는데 직접 와보니 피부에 느껴지는 살벌함과 처절함이 달랐다.
낮에는 수업, 저녁에는 알바, 밤에는 과제, 새벽에는 공모전과 자격증 준비. 틈틈이 이어지는 대외활동 미팅과 쉬는 시간을 깎아 무리하게 강행하는 봉사활동. 집에 손 벌릴 수 있는 형편도 아닌데 알바비는 모자라고 이미 받아놓은 학자금 대출에 생활비 대출까지 받아서 간신히 적자를 메꾼다.
나는 공모전과 봉사활동을 빼고 위 사항들에 모두 해당한다. 거기까지는 아직 엄두도 못 낸다. 그래도 가까운 미래의 생계가 달렸기 때문에 경쟁자들을 따라가기 위해 열심히 짧은 다리를 찢었다. 그러다 결국 한 달 전 가랑이가 찢어지고 말았다.
공부하러 온 대학에서 취업 준비 하느라 정작 학문 공부에는 집중하지 못했고 취업해도 끝나지 않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죽도록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번아웃이 왔다. 아니, 번아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약간의 휴가로 고쳐질 번아웃이 아닌 것 같은 쎄한 느낌이 들었다. 숨막히는 경쟁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쉴 수 있을 것 같은데 경쟁은 사라지기는 커녕 심화되기만 할 테니 말이다.
돌아온 나의 집 한국은 미친듯이 치열했고 불가능해보이는 이 모든 걸 다들 멋지게 해냈다. 나만 못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엄청 게으르고 재능도, 열정도 부족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경쟁에서 이기지 못할 사람처럼 느껴졌다. 돈도, 빽도, 재능도, 학벌도 없는 나는 이기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게임에서 제발 꼴등만은 면하기 위해 미친듯이 허우적대고 있었다.
며칠 전 이 절망감을 덴마크 친구에게 이야기하던 중 친구가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여기선 어떻게 해도 지기 힘든데(You can't really lose here)... 너 정말 힘들겠구나."
그 친구에게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언젠가 길바닥에 나앉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없었다. 그에게는 국민연금을 못 받을 수도 있으니 내 손으로 연금을 만들기 위해 대학생때부터 주식투자를 해야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대신 덴마크 정부에 월급 절반 가까이를 줘야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가 재기불능 상태까지 가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덴마크는 천애고아도 뒤를 봐주는 빽이 있는 곳, 믿을만한 정부가 있는 곳이었다.
경쟁에 질릴대로 질려서 그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탁 풀리면서 이렇게 미칠듯이 경쟁하면서 사는 게 세상사는 유일한 방식은 아니라는 사실에 약간 위안이 들면서도 씁쓸했다.
이 땅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경쟁력 없는 내가 이 땅의 경쟁을 뚫고 계속 여기서 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1) 사회가 요구하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더 노력하든가(물론 안 될 확률이 더 높다)
(2) 이 땅을 떠나든가
(3) 사회가 요구하는 경쟁력이 없어도 존엄한 삶의 유지는 가능하게 이 땅을 바꾸든가
이 세 가지 선택지 중 나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아직 이 고민의 답은 모르겠다.
결국 끊임없는 고민으로 머리만 복잡하고 번아웃으로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갑자기 집중력이 떨어져 하루종일 멍하고 현실감이 없었고, 활자를 읽어도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과제를 하는 것도, 생각을 하는 것도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장 처리할 대외활동 보고서와 학교 과제가 쌓여있는데 나는 30분 책을 읽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다.
이 상태로 계속 살 수는 없었다. 증상이 한 달 정도 지속되자 결국 병원을 찾았다.
진단명은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었다. 학교 일과 미래에 대한 걱정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 '가성 치매'를 동반한 우울증이 생긴 것이었다.
가성 치매란 우울증의 대표 증상 중 하나로 마치 치매처럼 기억력 감퇴, 집중력 감소, 사물이나 사람의 이름을 순간 잊어버리는 네이밍 디피컬티 등을 말한다. 집중이 워낙 안 된다 싶더니 병 때문이었다니. 뭔가 명확해지면서도 허탈했다. 내 의지로, 어떻게든 노력하면 나아지는 게 아니었구나. 내 탓이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는 것 같기도 했고 동시에 당장 시험을 앞두고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에 답답하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은 약을 처방해주셨다.
실제로 약이 도움이 되었든 안 되었든 증상은 호전되어갔다. 학기가 끝나면서 스트레스는 줄었고 집중력은 이전 대비 60-70% 수준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전문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귀국 후 1년 6개월이 지난 나는 현재 한국의 상황에 숨막히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발버둥치고 있다. 위에 제시한 3가지 길 중 어느 길을 택할지 고민하면서 나 하나 건지기 위해 꾸준히 스스로를 돌아보고 챙기고 있다. 그게 설령 병원에 가서 항우울제를 타먹는 것일지라도 나를 챙겨가며 이 길을 걷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있다. 아직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내가 석사 유학을 갈 수 있을지, 석사를 할 수는 있을 것인지도 알 수 없다. 한국에 살지, 외국에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버둥거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