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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얼티밋 Aug 19. 2021

24. 누구도 주지 않은 부담


 에런이 돌아오고 나서는 아침에 함께 바이올라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장하거나 청소를 하며 크리스마스 준비를 했다. 딱히 '일'이라고 할 만한 건 없었고 에런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마다 도우며 지냈다.


 워커웨이어로서 하루 5시간의 일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녀가 닭장을 청소하는 날이면 청소를 돕고 집을 비워야 하는 날이면 바이올라를 봐줬다.


 일이 줄어든 만큼 육체적 피로도 줄었다. 그러나 마음은 더욱 불편해졌다. 워커웨이의 원래 약속인 주 25시간이 깨져버리자 묘하게 에런에게 빚을 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조각조각 떨어진 청소와 동물 돌보기 일을 모두 합쳐도 하루 3시간 남짓밖에 일을 하지 않았지만 에런은 여전히 나를 가족처럼 챙겨주었다.


 '가족처럼'에는 단순한 숙식을 넘어 시내 크리스마스 마켓에 데려가주고 내가 파리에서 맛본 뱅쇼 와인이 맛있었다고 스쳐지나가듯 이야기한 걸 듣고 집에서 뱅쇼 와인을 끓여주는 것 등을 포함한다. 그녀는 내가 오래도록 접속하지 않은 페이스북 프로필에 알지 못할 이유로 잘못 적힌 생일을 보고 몰래 선물과 편지까지 준비해주었다.

 

 나도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그럴 능력이 없었다는 사실만 빼면. 내게는 누군가를 기쁘게 할 재능도, 사교성도, 돈도 없었다(지금도 다 없는 것들이지만). 나의 영어는 매끄럽지 않아서 항상 대화에 찝찝한 덩어리를 남겨두는 것 같았고 그녀에게 충분히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에런은 한 번도 서운한 티를 낸 적이 없었고 서운했던 것 같지도 않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불안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일을 너무 조금 한다고 속으로 미워하는 건 아닌지(그랬으면 말하지도 않은 생일을 보고 선물까지 챙겨주지는 않았을 게 분명한데도 불안회로가 돌면 이렇게 되어버린다), 민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그녀는 결코 부담을 준 적이 없는데도 혼자 부담을 잔뜩 지고있었다. 




 스물한살, 한창 자존감이 낮고 남 눈치를 많이 봤다. 우울증도 있었지만 그게 우울증인지 몰랐다. 상황이 불편하거나 어색하면 그저 내가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상한 말을 해서,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말을 많이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는 난 왜 이 정도밖에 못하는지, 왜 상황을 더 낫게 만들지 못하는지 구박했다.


 내가 나를 믿고 삶의 든든한 뿌리이자 기둥이 되어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서 누군가의 선의를  반기는 동시에 불편해했다. 내 본래의 모습에 창피하고 자신이 없어서 나를 '틀린 것'으로 타인의 기준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누군가와 의견이 다르면 내가 틀렸다고 생각되어 창피함을 느꼈다. 


 내 삶의 기둥이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린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타인의 기준이 내 기둥이 되어버렸다. 에런이 나를 민폐로 생각하고 있을 것만 같다는 불안은 내가 스스로를 민폐로 규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결국 민폐가 되지 않고 충분한 도움이 되기 위해 하루 5시간이 아니라 24시간을 도와야 한다는 부담감이 들었다. 잠깐씩 돕는 것을 다 합쳐도 하루에 3시간도 안 되자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뭐든, 언제나 도와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생겨버렸다. 정해진 시간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항상 도와야 할 것 같았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색함과 부담감이 늘 따라다녔다. 주어진 일이 없자 오히려 모든 일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어쩌면 순수하게 친구를 돕는다고 생각할 정도로 에런과 친해지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마음속에서 계속 선을 긋고 있었던 것도 같다. 친구 사이에서는 완벽하게 적용되지 않는,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한다는 법칙에 큰 압박을 받고 있었던 듯 하다. 




 우리는 프랑스에 있었지만 크리스마스는 영국식으로 치르기로 했다. 영국의 크리스마스 식탁에는 칠면조가 오르지만 프랑스에서는 칠면조를 구하기 힘들어서 에런이 톰을 보러 영국에 갔다올 때 아이스박스에 냉동 칠면조를 넣어 공수해다. 처음 마주한 칠면조는 거대했다. 한아름 안으면 품에 꽉 찰 정도였다. 영화에서만 보던 칠면조 요리라니, 조금 들떴다.



 에런 어머니 부부는 크리스마스 이틀 전 런던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에 도착했다. 이렇게 쉽게 국경을, 심지어 해협을 건너다니 대륙에 붙어있지만 섬이나 마찬가지인 한국 시민으로서 아주 많이 부러웠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도시 두 곳의 왕래가 기차 몇 시간으로, 몇 만 원으로 해결된다는 것은 두 도시의 발전과 국가 경쟁력 성장에 크나큰 도움 아닐까. 인재와 혁신적인 아이디어들, 상품들이 아무 장벽 없이 오갔다.


 서울과 도쿄가, 서울과 베이징이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잠시 상상해보았다. 한국에 살다보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하고 놀랄 정도로 똑똑하고 창의적인 사람들을 자주 보는데 그들이 톡톡 튀는 외국의 인재들과 더욱 쉽게 자주 생각을 주고 받는다면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던 빛나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아쉬워진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적은 비용으로 기회와 행복을 나누는 정책이나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도 생길 것이다. 한국 내 민족 다양성과 문화 다양성도 풍부해질 것이고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소외와 차별을 경계하는 태도도 자리잡을 것이다. 다시 한 번 70년 전의 일이 현재에 미치는 거대한 영향력을 실감한다. 




 가족들의 도착에 맞춰 에런이 차를 몰고 파리에 픽업을 다녀오기로 했다. 저번 여름 같았다면 크리스티나가 바이올라의 베이비시터 역할을 했겠지만 집에 워커웨이어는 나뿐이었다. 내게는 동생 없이 언니만 둘이고 제대로 아이를 돌본 적도 없어서 어린 아이와 둘이 있으면 어쩔 줄을 몰랐다.


 아이와 어떻게 대화를 하는지, 어떻게 놀아주는지, 아이 밥은 뭘 줘야 하는지,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몰랐다.


"진짜 괜찮겠어?"

 

"파리까지 갔다와야 하는데 애 데리고 혼자 운전하기는 힘들 거 아냐. 컨디션도 안 좋은데 차라리 맘 편하게 집에 두고 가는 게 낫지. 나 있잖아."


라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사실 속은 걱정으로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원래 에런은 신장이 좋지 않은데 최근 들어 다시 화학요법을 고려할 정도로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다섯 살 아이를 혼자 데리고 장시간 운전을 하는 것은 에런에게도 아이에게도 좋을 것 같지 않았다. 애 보는 데는 재능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해야만 했다.


"알겠어. 딱 4시간이야. 금방 올 테니까 걱정할 거 없어. 그냥 바비 애니메이션이나 디즈니 영화 틀어주면 돼. 점심은 네가 요리하기 쉬운 음식 아무거나 해주면 되고, 화장실은 가고 싶을 때 바이올라가 너한테 말해줄 거야. 끝나고 엉덩이만 닦아줘.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에런은 떠나기 전 내 말 잘 듣고 있으라며 바이올라에게 신신당부하고 문을 나섰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것부터 고비였다. 아이는 디즈니 타이머 앱이 없으면 양치를 시작하지 않았다. 양치를 하다가도 관심가는 다른 것이 있으면 하던 걸 멈추고 거기에 집중했다. 겨우 양치와 세수를 마치고 옷장 앞에 서면 가지런히 개어져있는 옷 하나하나를 펼치며 거기 얽힌 에피소드를 내게 쏟아냈다.


 오후에 도착할 에런의 엄마는 한때 악세서리 디자이너로 일했고 지금도 종종 손녀의 옷을 직접 만들어 선물해주곤 했다. 오늘 나의 목표는 아이에게 곧 도착할 할머니가 선물해준 옷을 입히는 것이었다.


 바이올라가 에피소드와 함께 침대 위에 늘어놓은 티셔츠와 치마를 다시 차곡차곡 개서 정리해놓으며 할머니가 준 옷 중에 엄청 예쁜 원피스를 발견했다고 목표로 유도하기 시작했다. 칭찬 한 바가지를 꺼내서 살살 달래가며 가까스로 레이스 달린 베이지 원피스를 고르게 할 수 있었다.



 바이올라는 원피스를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쳐다보지 마!"


"안 볼게. 갈아입고 나와."


 이전에도 옷을 갈아입혀준 적은 몇 번 있었는데 그때는 내가 직접 옷을 벗기고 입혀주는 것을 개의치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혼자 욕실에 숨어서 5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바이올라, 괜찮아? 도와줄까?"


"싫어!"


 바이올라의 콧노래 소리가 욕실에서 울렸다. 건식 욕실이고 다칠 만한 물건은 없었기에 문제가 생긴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내가 문을 열려고 하면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고 도움도 거절했다.


 시간이 점점 늘어졌고 바이올라는 내가 말을 할 때마다 점점 짜증이 나는 듯 보였다. 에런네 방에서 욕실로 들어가는 문이 하나 더 있었지만 지금 욕실에 들어갔다가는 바이올라와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질 것 같았다. 내가 실수한 게 있는지 재빨리 머릿속으로 오전을 재생해보았다. 옷을 고를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아이가 욕실에 들어간 지 20분이 넘어갔다.



"바이올라, 안 나오면 나 혼자 먼저 내려간다!"


"안돼, 혼자 가지마!"


"네가 나와야 같이 가지. 옷 갈아입고 나와. 그 옷 싫으면 다른 옷으로 바꿔도 돼. 바꿔줄까?"


"싫어!"


"......"



 아이 키우는 분들과 베이비 시터, 어린이집, 유치원 교사분들께 존경심이 솟아나는 날이었다. 아이라면 이리저리 관심이 튀고 집중이 쉽지 않은 게 당연하다.


 결정도 자주 바뀌고 기분도 큰 폭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그걸 알고 아이를 보겠다고 했던 거지만 막상 짜증이 난 아이 앞에서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각오가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 같았다.

 


 친구 중 키즈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싶어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극한 아르바이트 탑3에 항상 이름을 올리는 업종인데도 자기는 아이가 좋다고 공고 자리가 없어서 못한다는 친구였다. 사촌동생을 데리고 간 키즈카페에서 다른 집 아이들 서너 명까지 자기 주위에 끌어들일 만큼 아이와 잘 지내서 처음 보는 아이 부모들이 고마움을 표했다는 경험담까지 말해주었다. 친구는 아이를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이가 뭘 원하는지 바로 눈에 보인다고 했다. 그 친구의 재능이 그 날처럼 간절한 적이 없었다.


 이 날 하나 확실히 배웠다. 난 베이비 시터나 어린이집에서 일할 생각 하면 안 되겠구나. 한 명 보는 데도 이렇게 진이 빠지는데... 그분들 진짜 엄청난 전문직이야. 



 그날의 4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이후로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게 중요한 건 아이와 나 둘 중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중요한 사실이다. 그날 이후로 바이올라와 둘이 남게 되는 상황은 되도록 피했다. 창피한 일이지만, 내가 바이올라를 보겠다고 자처했다면 일이 쉬워질 상황에서도 먼저 나서지 않았다.


 동시에 최대한 에런을 도와야 한다는 압박감과 혼자 아이를 보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이 충돌해 스스로에게 더욱 큰 실망감이 들었다. 민폐가 되고 싶지 않으면 도울 수 있는 건 다 도와야 하거늘 하기 싫은 건 안 하겠다고 혼자 슬쩍 내빼는 것 아닌가, 그래, 내가 여기까지지 뭐, 하는 생각도 들었다.


 2019년 겨울, 에런네서 지내는 한 달여 동안 결국 이 두 감정에서 놓여나지 못했고 무겁고 질척한 발걸음으로 떠날 때까지 나의 게으름과 이기심, 그에 대한 실망감으로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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