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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얼티밋 Jan 27. 2022

29. 피렌체의 미학


 

어둠 속에서 버스 속도가 느려지는 걸 느끼며 눈을 떴다. 매점과 화장실이 있는 휴게소 주차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화장실에 들른 후 매점으로 들어가 생수를 한 통 집어 계산했다. 독일어로 감사합니다인 '당커슌'을 말하려고 할 때였다.


"그라치에, 차오."

점원은 불쑥 다른 말을 뱉었다.


아, 나 지금 이탈리아구나. 오스트리아는 또 언제 지났대.


구글맵으로 확인해보니 이탈리아 북부를 지나는 중이었다. 당황해서 점원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말았다. 국경을 넘는 버스가 하루에도 몇십 대씩 지날 이 곳의 점원은 이렇게 불쑥 이탈리아어로 사람들을 놀래키는 일을 은근 즐길 수도 있겠다 따위의 생각을 하며 문을 밀고 나왔다. 점원의 얼굴은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정신연령이 전혀 성숙하지 못한 나라면 잠 덜 깬 여행자의 뇌를 꼬아버리는 일로 키득거리고 좋아했을 텐데.




다시 한참을 달려 피렌체 시내 역 앞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7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다. 진남색의 하늘이 아주 조금씩 밝아지는 게 보였다. 에어비앤비 숙소는 한때 피렌체의 지배자였던 메디치 가문의 예배당 산 로렌초 성당 바로 옆 골목에 있었다. 터미널에서는 조금 걸어야 했다. 진남색 골목길에는 피렌체의 울퉁불퉁한 바닥 돌길을 따라 위아래로 덜컹거리는 캐리어 바퀴 소리만 울렸다.


서울의, 하다못해 내 고향인 남양주의 코딱지 만한 도시(비닐하우스와 밭도 많으니 도시는 아니고 읍내라고 할 수 있겠다)도 오전 7시가 이렇게 조용한 적이 없다. 출근하기 위해 버스를 타는 직장인들, 일찍 학교에 가서 자습하려는 고등학생들, 벌써부터 청소를 시작한 부지런한 아파트 경비분들로 하루가 이미 시작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2월 겨울의 피렌체는 7시에도 고요한 아침 공기를 품고 있었다. 아직 피렌체가 깨지 않았는데 나 혼자 깨있기는 싫었다. 숙소에서 한 잠 자고 피렌체가 깨어날 때 나도 일어나기로 했다.




피렌체 자체가 거대한 도시가 아니기는 하지만 숙소를 두오모에서 도보 3분 거리, 산 로렌초 성당 30초 거리에 잡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내가 빌린 방에는 창문이 없어서 성당이 내다보이는 전경은 없었지만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마치 작은 광장으로 보이는 듯한 산 로렌초 성당의 계단은 가까이 있었다. 계단에 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과 목을 쭉 빼고 걷는 비둘기들 앞으로 버스커들이 자리를 잡기도 했다. 나도 자주 계단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다. 


 두오모가 있는 곳이 단연 피렌체의 제1광장이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지만 두오모 주변에는 앉을 곳이 별로 없다. 두오모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는 출구 쪽, 그러니까 사람들이 거의 없는 건물 반대쪽에 벤치 몇 개가 있을뿐, 피렌체는 전반적으로 앉아 쉴 곳이 많은 도시는 아니다.


물론 부단히 두 다리를 움직이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만큼 볼 것이 많은 도시다. 앉아서 낭비할 시간 따윈 없다. 하지만 볼 게 그 정도로 많은 만큼 어디든 잠깐 멈춰선 시선 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장관인 도시이기도 하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든 10분 이상 꼼짝하지 않고 눈길 머문 곳을 쳐다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아르노강 난간 같은 곳에 그냥 올라앉아 있는 것 같은데, 물론 젤라또 하나 사서 아르노강 난간에 앉아 도심쪽을 쳐다보며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도 좋지만 몇백년된 아름다운 예술품 앞에서 설레어 흥분한 사람들의 들뜸을 함께 느끼며 그 모든 장면을 하나의 씬으로, 현장에 동화되어 느낄 수 있다면 더욱 강렬한 체험이 될 것이다. 


아마도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 벤치를 놓았다가는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겠지만 피렌체가 조금만 덜 붐비고 앉을 곳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그래도 동시에 붐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피렌체의 아름다운 예술품들과 거기에 담긴 역사와 교훈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니, 결국 둘 중 하나를 택해야겠지. 그렇다면 나도 피렌체시와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대신 두오모 광장의 전망 좋은 무지하게 비싼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즐기면 되겠지.




숙소 앞 산 로렌초 성당을 지나 관광객들이 주로 다니는 골목을 따라 쭉 걷다보면 두오모와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꽃의 성모 마리아)이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두오모 광장에 들어서게 된다. 양 옆 건물들이 해를 막아 비교적 어두운 길을 걷다가 갑자기 확 트이는 밝고 넓은 공간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고개를 드는 순간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장면 전환이 굉장히 극적으로 느껴졌다. 대체 왜 광장 전경 사진을 광각으로 하나쯤 찍어두지 않은 건지 모르겠지만 본격적으로 두오모 광장에 발을 내딛기 전 골목길의 끝에 몇 분 간 멍하니 멈춰 서서 감탄했다. 


두오모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두오모뿐이 아니었다. 패기 있게 여행을 떠났지만 배경지식은 전혀 없던 상태였다. 지금 와서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는 여행 전 세계사 공부를 미리 하지 않은 것이었다. 유럽의 복잡한 역사, 동양과는 다른 가치관이 위키피디아 한 쪽 읽는다고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누가 누구를 정복하고, 누구와 누구는 한 조상이며, 이 언어가 실은 누구와 누구의 언어가 짬뽕돼서 나온 것이고, 서로 지역감정은 어땠으며 등등 큰 그림을 알아야 '두오모'라는 디테일이 어디쯤 들어가서 앞뒤로 어떤 조각과 맞춰지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를 못했다. 


우리가 창덕궁의 역사와 궁내 각 건물의 용도, 현판에 걸린 시의 의미 등을 알아야 단순히 외관에 감탄하는 것 이상의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듯이 말이다. '인상깊은 것'도 의미있지만 '감동을 주는 것'은 그 의미가 더욱 크다. 두오모의 만듦새와 외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지만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전면에 장식된 석상들 하나하나의 사연과 피렌체의 역사가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가지는 의미를 알았더라면 감탄을 넘어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여행을 다니며 역사 유적을 자주 마주쳤지만 역사 속 옛날을 느꼈다기보다 옛날 유적이 서있는 현재의 장면을 보았을 뿐인 것 같다. 베르사유 궁전도, 님펜부르크 궁전도, 버킹엄 궁전도(어쩌다보니 다 궁전이다) 얕게 보고 왔다. 정말 뻔한 얘기지만 다시 가면 진짜 진짜 잘 보고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감동을 놓치고 온 게 너무 아쉽다.


그래서 비록 늦었지만 집에 와서 세계사를 조금 공부한 후 모자라나마 피렌체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피렌체를 방문할 생각이니 너무 늦은 건 아니지 않을까 스스로를 위로 중이다.


코로나 때문에 잠시 막히긴 했지만, 배낭여행을 떠나는 내 또래 대학생들도 많은데 부디 나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유럽여행 카페에서 구한 한국인 동행분들은 대부분 혼자 배낭여행을 온 대학생들이었고 그들도 나와 비슷하게 배경지식이 없었다. 그저 유명하고 멋있는 풍경에 감탄하며 사진 찍는 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큰 돈 들여 언제 다시 올지 모를, 혹은 아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기회로 유럽에 온 건데 그 역사와 가치는 제대로 느끼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유럽여행이라는 컨셉에만 들떠서 사진으로만 보던 곳에 왔다고 신기해하고 멋있다고 감탄하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된다. 유럽까지 왔는데 제대로 뽕 뽑기 위해서는 타이트한 스케쥴에 유명한 건축물 하나라도 더 보려는 게 아니라 내가 느끼는 감동의 깊이를 한 발짝이라도 더 늘릴 수 있게, 내 기억 속에 더 강렬히 남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는 내 안에 남지 않는다. 느끼는 게 있어야 남는데 느끼려면 아는 게 있어야 한다.


나도 여행 다닐 때는 뭘 모르는 상태로 다녀서 본 건 많은데 기억나는 건 많지 않다. 여행 중 기억나는 건 대부분 뭔가를 느꼈던 워커웨이 스테이의 기억이고, 막상 파리, 런던 같은 유명한 여행지는 기억나는 게 많지 않다. 항상 깨달음은 기회가 다 지난 다음에야 오더라. 아깝다.




그래서 당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내가 유일하게 느낄 수 있었던 외관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두오모 광장은 독특한 색조합으로 눈을 휘어잡았다. 일평생 분홍색과 연녹색의 조합을 본 적이 없건만 흰색, 분홍색, 연녹색, 검은색은 독특하고도 조화롭게 배열되어 안 어울릴 듯 잘 어울렸다. 분홍색과 연녹색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색이었던가? 정교하게 위치한 색색깔의 대리석은 분홍색이라고 해서 다 같은 색이 아니라 약간의 채도와 명도 차이를 내며 단조롭지 않게 건물 외벽을 구성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봐온 건축물의 색조합을 깨버리는 초현실적인 분위기였다. 


 


외벽은 아주 장식적이었지만 베르사유 궁전처럼 금을 둘러놓은 화려함이 아니라 우아한 화려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람키 몇 배 높이에 자리잡은 채 관광객들을 내려다보는 상들은 건물에 장중함을 더한다. 15세기에 지어진 높다란 건물은 5백년이 넘도록 감동을 간직하고 있었다.


여행기간 열 달을 통틀어 지식 부족을 뚫고 모습만으로 감동을 느끼게 해준 건 피렌체 대성당과 미켈란젤로 광장이 유일했다. 15세기에 기계도 없이 사람의 힘과 기술로 지은 대성당은 5백년 후의 인간도 감탄할 정도로 놀라웠다. 입을 헤 벌리고 대성당 정면을 쳐다보는 나 같은 사람들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대성당을 향한 상태로 왼쪽을 바라보면 두오모 꼭대기에 올라가려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쯤에서 한국인 동행분을 만나기로 했다. 카톡으로 계속 연락을 하며 둘 다 이 부근에 있다는 건 확인했는데 주변에 혼자 온 동양인이 한두명도 아니었고 그냥 무턱대고 가서 한명씩 '00님이신가요?' 하기는 좀 불편했다. 약속 시간 5분을 넘어가는데 둘 다 '저 여기 있는데요?'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알고 보니 그 분은 내 이름을 보고 남자로 착각해서 줄곧 혼자 온 한국인 남자를 찾고 계셨다고 한다. 인상착의는 맞지만 성별이 안 맞아서 우물쭈물 말을 걸까 말까 고민 중이셨다고 한다. 내가 그 분을 발견해서 말을 걸자 정말 나일 줄은 몰랐다고 깜짝 놀라셨다. 그 분과는 두오모를 함께 올랐다. 줄은 성당 내부에서 긴긴 여정을 시작해 곧 두오모 내부 지붕과 외부 지붕 사이 공간을 지나는 좁은 길로 들어섰다. 두오모의 돔 뚜껑은 실제로 마주하면 어마어마하게 크다. 지름도 넓고 높이도 높다.  


1420년대 두오모를 설계한 브루넬레스키는 37,000톤에 달하는 돔 뚜껑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돔을 이중으로 만들고 내벽과 외벽에 공간을 만들어 하중을 견딜 수 있게 했다. 덕분에 6백년이 되도록 단단히 버티고 서 있고, 우리가 돔 꼭대기로 올라가기 위해 지나는 계단이 이 사이에 있는 것이다.



쉼 없이 15분 정도 열심히 계단을 오르자 두오모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르노 강과 멀리 미켈란젤로 광장, 피티 궁전이 보인다


두오모는 지상에서 올려다봤을 때 그 자체로도 아름다웠지만 그 위에 서서 내려다본 피렌체 시내는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할 만큼 아름다웠다. 두오모를 제외한 도시는 붉은 지붕이 덮인 낮은 건물들 사이사이 베키오 궁, 피티 궁전, 미켈란젤로 광장 등 랜드마크가 점점이 찍혀있는 중세도시 모습 그대로에 가까웠다.


피렌체에는 콘크리트에 유리창 달고 번쩍번쩍한 외관의 비즈니스 호텔 같은 건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도시의 테마가 붉은색, 주황색, 갈색 벽돌이고 우리의 시간여행을 깨는 현대적 요소는 별로 없다. 도시를 걸어다니면서도 느꼈지만 전경을 한눈에 보니 더욱 실감났다. 5층 이상의 고층 건물은 없고 다들 붉은 지붕이 덮인 낮은 건물들뿐이었다. 그리고 두오모 위 전경에서만 유일하게 피렌체에서 두오모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두 시간 동안 멍 때려도 참 좋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뒷 조가 끊임없이 올라왔고 좁은 옥상 자리를 비켜주기 위해 곧 내려와야 했다. 우리가 올라올 때부터 있었던 세 명의 한국인 일행은 사진이 잘 나오는 명당 자리를 우리가 갈 때까지도 자기들끼리 차지하고 끝없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뒤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관광객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옷이 안 예쁘게 나왔네, 각도가 안 좋게 나왔네 하면서 십 분 동안(십 분은 내가 두오모 정상에 머문 시간인데 내가 올라오기 전부터 갈 때까지도 그러고 있었으니 아마 한참 동안 그러고 있었을 듯 싶다) 한국어로 이야기하며 갖은 포즈를 다 잡고 있었다.




두오모에서 내려와 동행분과 파스타와 피자로 식사를 한 후(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아르노 강을 건너 피티 궁전 쪽으로 이동했다. 두오모 성당을 보고 아르노 강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베키오 궁이 있는 시뇨리아 광장을 지나서 직선으로 시원하게 뻗어있는 우피치 미술관 건물을 관통하면 아르노 강변을 따라 걸으며 베키오 다리를 옆면에서 볼 수 있다. 금속 세공사의 가게들이 모여있다는 베키오 다리는 직접 다리 위를 걸을 때는 잘 몰랐지만 다리를 옆에서 볼 때 작은 네모칸들이 다리 옆면에 붙어있는 것 같아 신기했다. 저러다 집들 중 하나가 강물로 떨어져버리면 어떡하나 걱정됐다.



베키오 다리를 건너 피티 궁전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흥미로운 가게들이 많다. 가방이나 신발, 가죽 제품, 귀금속에 관심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 피렌체에서 뭔가를 사고 싶다면 바로 여기로 와야 한다. 특히 엽서, 고품질 문구류 구경 좋아하는 사람들이 눈 돌아갈 곳이 있다.


Il Papiro라는 가게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엽서와 종이, 편지지부터 달력과 실링왁스까지 수제 고급 문구류를 파는 곳이다. 도톰하고 부드러운 질 좋은 종이 위에 피렌체 특유의 아름다운 문양, 색상 디자인이 더해진 엽서는 저절로 한 번씩 집어보게 만들었다. 벌써 40년이나 된 가게로 토스카나 전통 재료와 방법을 통해 프린팅한다고 한다. 물론 뒤집어 본 가격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나는 한 장도 못 살게 분명해져서 가게 안 사진 찍기가 눈치보였기 때문에 제대로 된 사진이 없는 게 아쉽다.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서만 구경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로서 가게에 직접 들어가 구경하는 일은 별로 없었고 돈을 주고 뭔가를 사는 것은 호스텔 비용과 싸구려 슈퍼 음식 또는 식사빵이 전부였다. 물론 사고 싶은 건 많았지만 통장잔고를 생각하면 금방 구매욕구가 들어갔다. 이 가게만 빼면 말이다. 두오모의 분홍색과 연녹색의 생각지 못한 조합처럼 이탈리아는 섬세한 색 조합과 디자인에 특출난 것 같다. 카드에 그려진 그림들은 굉장히 섬세하면서 독특했다. 나름 문구류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독특한 고급스러움이 있었다. 문제라면 카드 한 장에 10유로, 다이어리 하나에 55유로 정도 하는 가격이었지만 그만큼 제품의 질이 좋았다. 돈만 있었으면 캐리어에 자리가 부족해 한국으로 택배를 부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뭉텅이 샀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나는 한 장도 못 살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직원이 따라붙지 않게 있는 듯 없는 듯 구경했고 위 사진도 구석에 짱박혀서 찍은 거라 각도가 저렇게 이상하지만(실제로는 매장도 사진 속 크기의 방이 두 칸 정도 더 있는 것만큼 넓다) 방문했던 다른 사람들 중에는 실링왁스 시연을 보거나 종이에 프린팅하는 걸 봤다는 사람도 있으니, 다음에는 작정하고 가서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신나게 구경하고 싶다. 문구류 모으는 걸 좋아해서 집에 각종 편지지와 메모지를 모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 줄 선물도 하나 사다주고 말이다.





피렌체 여행의 절정은 해질녘 미켈란젤로 광장이었다. 언덕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이틀 머문다면 꼭 이틀 연속 올라갈 정도로 멋진 곳이다. 높은 언덕을 따라 조성된 계단에 빼곡히 앉은 젊은이들과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는 티 없는 푸른 하늘, 계단 앞 평평한 공간에 마이크와 스피커 등 간소한 음향 장비를 설치해놓고 기타 하나 들고 잔잔히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는 가수, 가수 뒤로 펼쳐지는 숨막히게 아름다운 피렌체 전경과 그 사이 우뚝 솟은 두오모 성당.


지금까지 내 눈으로 마주한 광경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해가 짐에 따라 가수는 기타를 들고 내려갔지만 아르노 강을 따라 가로등에 조명이 들어오고 멀리 두오모와 우피치 미술관에 불이 들어오는 모습이 음악의 빈자리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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