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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름 Oct 29. 2024

목소리를 내기까지

전쟁 이후의 세계

[인문] 전쟁 이후의 세계. 박노자.




책 한 권 읽고서 그 책이나 책에서 다룬 주제에 대해 다 아는 양 떠드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을 것이다. 책을 읽을수록 말은 조심스러워지고 책을 쓰는 노고를 존중하게 된다. 비판은 해도 그 노력을 비하하긴 어렵다. 물론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싶은 노력이 담긴 책도 있지만 그것도 누군가에겐 효용이 있다. 


책 한 권 읽고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알게 되고 그로 인한 세계 질서의 재편에 대해 비평하거나 러시아의 야만성을 적절하게 비판할 언어가 생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예 몰랐을 때보다 지적으로 더 가난한 처지가 됐는지도 모른다. 완전한 무지와 무지를 자각한 무지 중 어느 쪽이 더 완벽에 가까운 무지인가를 생각해 봤을 때, 섣불리 어느 쪽이라고 꼽기가 어렵다. 모르는 것의 수효를 늘려가는 경우와 모르는 것이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 중 어느 편이 더 나은가를 선택하기도 쉽지 않다. 삶의 효용 면에서 그렇다. 그렇지만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면 모른다는 걸 알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모른다는 걸 아는 것도 지식이고 지식의 증대는 즐거움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노력하지 않는다면 잠깐 즐겁고 말뿐 더 나아지지 않는다.


관심 가지지 않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실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쟁과 기아와 폭력과 강간은 지금 순간에도 실재하고 실현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나는 그것을 직접 보지 않아도 안다. 단 한 번도 겪지 않았지만 지금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확신한다. 누군가의 인생이 송두리째 뽑히고 짓밟히고 있음을 안다. 누군가의 인생을 파괴하는 데에 단 한 번만으로 충분한 그런 일들이 언제나 수많은 인생을 끝장내 왔음을 잘 안다. 그렇지만 나의 세상에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내 삶에 발현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관심을 두지 않아 의식에서도 사라졌다. 나의 세상은 그와는 다른 결의 고통과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워라밸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누군가와의 관계를 어떻게 끝낼 것인가와 같이 나름 나의 세상에는 중요한 고민이다. 거기에 많은 흥미와 관심사들이 더해져 나의 현재를 구성한다. 그런 것들이 생겼다 사라지고 커졌다 작아지면서 지금의 나를 만든다. 


휴대폰을 열면 내가 요즘 관심 가지고 있는 주제들의 영상이 주르륵 나온다. 몇 개의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완전히 다른 카테고리들이 나의 관심사의 우선순위에 있었다. 불과 몇 년 만에 전혀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산다. 점점 확신을 유보하게 되는 이유다. 사람은 변한다. 관심사뿐 아니라 세계관도 사랑도 외모도 다 변한다. 그것에 의심을 품을 수 없다. 변하기 때문에 변치 않는 것을 희구하지만, 변치 않는 것은 사람이 아닌 것들 뿐이다. 강하고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자신은 변치 않는다고 장담하는 사람도 변한다. 제일 먼저 변한다. 확신하지 않는 목소리에 오히려 신뢰가 간다. 변할 것을 알고 있는 것도 지식의 일종이고 지적인 사람에게 신뢰가 가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어떤 주제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 없다면 그건 무지한 거다. 세상 모든 일을 어떻게 다 알겠느냐고 항변해도 상관은 없다. 과연 그렇다. 어떻게 다 알겠는가. 당연히 모를 수 있다. 세상에 넘쳐나는 정보 중 나에게까지 닿지 않는 것도 있다. 모르므로 말할 수 없고 차라리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 건 정직하다고 하겠다. 잘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떠드는 자를 우리는 경멸하지 않나. 그럼에도 나를 둘러싼 세상의 어떤 일들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 없을 만큼 모른다면 무지한 거다. 항변해도 소용없다. 무지한 것을 알게 되었으니 손톱만큼의 가능성이 생겼다. 그걸로 다행이지만 무지함은 창피한 일이다. 무지를 창피해하지 않는 사람들로 구성된 세상은 얼마나 끔찍할까. 적어도 무지를 인식하고 창피해할 줄 아는 사람과 사귀고 싶다. 그 사람에겐 분명 배울 점이 있을 테니까.


관심 가진 분야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 진다. 공부하고 찾아보고 그 세계를 점점 키워간다. 겪어야만 안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경험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지식을 늘려가는 것도 아는 것이다. 전쟁을 겪어야만 전쟁의 원인과 양상을 이해하고 해결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는 것도 세계를 키워가는 방법 중 하나다. 내부에서 커진 세계는 중요해진다. 관심이 생기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커지고, 커지면 중요해진다.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이다. 중요하므로 중요하지 않은 것과 구분된다. 그것에 대해 말할 때 목소리가 커진다.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어떤 분야에 대해 말할 때 목소리가 커지는지 지켜보면 안다. 그 사람에게 그건 중요한 문제다. 누군가의 방에 어떤 물건들이 어떻게 놓여 있는지,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콘텐츠가 목록을 구성하는지 살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어떤 고통을 끌어안고 있는지, 어떤 존재를 증오하고 있는지. 그러나 그것만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전혀 드러나지 않는 세계가 내면에 존재하고 있을 수 있다.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고 자신을 갈아 세상에 쓰고 있는지 모른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내면에 지옥을 지어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야기 나눠야 한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타인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 가짜 이야기 말고, 솔직하지 못한 거짓말들 말고, 진짜로 마음에 있는 것들을 이야기해야 한다. 


누군가를 정말로 알게 되어야 진정 떠날 수도 있다. 모른 채 사랑하게 되고 알게 되어 떠난다. 이미 충분히 관심을 가진 후이므로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의 관심사는 계속 변한다. 중요한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중요한 것이 된다. 사람도 그렇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모른다는 것을 안 후에는 제대로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책 속에 관심을 넣어두고 덮어버리는 순간 세계는 닫힌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 변하지 않는 세계는 지옥이다. 좁고 변치 않는 내면을 가지고 있다면 책을 읽어야 한다. 책 속에서 세계를 꺼내야 한다. 관심을 가지고, 알려고 노력하고, 공부하고 배우고 고민해야 한다. 마음에 있는 것들을 꺼내서 이야기 나눠야 한다. 관심사가 달라지는 건 상관없다. 그건 자연스러운 거니까. 책을 읽고 변해야 한다. 세계는 조금씩 관심사로 채워지고 다양해진다. 세계는 커진다. 커진 세계는 중요해진다. 중요한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그제야 될 수 있다. 


(202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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