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읽고, 손을 통해, 몸과 마음에 닿는
필사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필사가 어떻게 좋았는지 제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어요. 책을 읽고 나면 나에게 남는 무언가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기록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필사. 그 필사가 제 영혼을 깨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책을 아주 험하게 봅니다. 밑줄 긋고, 색연필로 색칠하고, 책의 가장자리를 접습니다. 도서관책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 구매해서 읽습니다. 책을 험하게 읽는 이유는, 읽은 책을 잘 기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었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나~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생각이 남지 않는 다는 분들께는 책을 험하게 보는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중고로 되팔기 위해 깨끗이 보는 사람에게는 권하지 않습니다.
눈으로 글을 읽고 마음에 드는 문장에 빨간 볼펜으로 줄을 긋습니다. 마음에 들어 빨간 줄을 그은 내용 중 기억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페이지 위쪽 가장자리를 접습니다. 3센티미터쯤이요.
밑줄 그은 내용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페이지 아래쪽 가장자리를 접습니다. 한 10센티미터쯤을요. 거의 책 반까지 접는 상황이 됩니다. 아래쪽 접기는 한 책에 10개에서 15개 정도만 접습니다. 그 이상을 접을 책이라면 책 전체 필사를 할 정도의 제 인생책이 되겠지요?
밑줄과 오른쪽 위쪽이 접힌 페이지를 옮겨 적습니다. 읽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선택해서 그 문장을 다시 손으로 써내려 가는 일입니다. 문장이 손을 통해 저에게 들어옵니다. 문장의 의미를 곱씹습니다. 마음으로 의미를 해석해 봅니다.
눈으로 읽는 것도 아니고 머리로 읽는 것도 아닌 몸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쳐 마음에 받아들입니다.
작가의 호흡에 맞춰 저의 문장도 잠시 쉽니다. 작가의 단어 선택에 따라 저의 생각이 흐릅니다. 어떤 기준으로 단어를 선택했을지 생각해 보고 저의 표현이라면 다른 낱말이 선택될 수 있을지도 생각해 봅니다.
작가들은 자신만의 문체가 있다고 하는데, 저도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면서 문체를 배우게 되는 것이지요. 작가의 문체를 체험합니다.
문장 속에 숨기어진 작가의 의도, 감정을 따라가 봅니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었을까 시선을 멈추고 손의 속도를 조금 줄여봅니다. 읽는 동안 작가의 생각을 다라가지만 쓰는 동안 나의 생각이 시작됩니다.
읽기를 통해 사유의 길로 들어섭니다. 읽기를 통해 저의 영혼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넵니다. 좋은 이야기가 있으니 들어보라고. 작가의 시선과 저의 생각이 만나는 지점에 필사가 서 있습니다.
타인의 언어를 옮기며 나의 언어를 찾는 과정이 필사이기에 읽기가 있어야 쓰기가 시작됩니다.
읽는다는 것은 이해하는 길이고, 필사를 한다는 것은 이해를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며 속도를 늦추고, 손끝을 통해 새로운 제가 만들어져 갑니다.
그렇다면 책만 필사가 될까요? 다음 주 일요일에 그동안 저의 필사이야기를 통해 함께 진행했던 다양한 필사를 가지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