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면서 관계도 지키는 말, Assertive

[브런치 연재] 글로벌 설득

by 켈리황

글로벌 환경에서 일하다 보면, 말의 내용만큼 그 말을 전달하는 태도가 대화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같은 의견이라도 어떤 태도로 말하느냐에 따라 존중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방어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래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 못지않게, 어떤 태도로 말할 것인가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소통 스타일은 메시지의 '그릇'이 된다


자주 관찰되는 소통 태도는 대략 네 가지 흐름 안에서 나타난다.

소극적으로 침묵하는 방식(Passive),

강하게 밀어붙이는 방식(Aggressive),

겉과 속이 다른 간접 표현(Passive-Aggressive),

그리고 단호하지만 존중을 유지하는 방식(Assertive)다.

말의 내용은 같아도 이 '그릇'이 달라지면 메시지가 전달되는 방식 역시 달라진다.


침묵과 직설, 그 사이에서


예를 들어 회의에서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을 때를 생각해 보자.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괜찮습니다”라고 말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마음 한편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메시지는 전달되지 못한 채 내면에 고인다.


반대로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면 내용이 타당하더라도 관계에 긴장이 생길 수 있다. 사람들은 메시지보다 태도를 먼저 기억하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동의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생각을 품은 채 뒤에서 불만을 이어가기도 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긴장이 관계에 남는다. 때로는 평소에는 조용히 넘어가던 사람이 어느 순간 예상보다 강한 톤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충분히 표현되지 못한 생각이 누적되다 한 번에 표출되는 경우다. 메시지 자체보다 갑작스러운 태도의 변화가 더 강하게 기억되면서 의도와 다르게 관계에 긴장이 생기기도 한다.


소통의 스펙트럼.png (by 켈리황)


예를 들어 같은 상황에서도 표현 방식은 꽤 다르게 나타난다.


“괜찮습니다. 그냥 넘어가죠.”라고 말하면 마음속 의견은 남지만 대화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반대로 “이건 잘못된 결정 같습니다.”처럼 단정적으로 말하면 내용보다 톤이 먼저 부각될 수 있다. 겉으로는 “좋은 의견이네요.”라고 말하면서 뒤에서 불만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Assertive한 표현은 조금 결이 다르다.


“제가 보기에는 다른 선택지도 함께 검토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논의해 볼 수 있을까요?”처럼 자신의 관점을 분명히 드러내면서도 대화를 이어갈 여지를 남긴다.


“지금 방향도 충분히 이해됩니다. 다만 다른 옵션이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일 가능성도 있어 보여서, 그 부분도 잠깐 같이 검토해 보면 좋겠습니다.”처럼 상대의 흐름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관점을 분명히 드러내는 방식이다.


메시지와 관계를 동시에 놓지 않으려는 태도가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기대


한국 조직 문화 안에는 묵묵히 성과를 내면 조직이 알아서 평가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때가 되면 승진도, 역할도, 보상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로벌 환경에서는 그 기대가 반드시 공유되지는 않는다.


원하는 역할, 커리어 방향, 기여도에 대한 인식은 대개 명확하게 표현될 때 논의의 대상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실제로 글로벌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자신의 목표와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는 사람들이 기회가 생겼을 때 그 자리에 더 자주 연결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는 능력 부족이라기보다 의사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도 적지 않다.




균형: 두 개의 볼륨을 맞추는 일


우리는 상대를 존중하는 법은 오래 배워 왔다. 말을 삼키고, 분위기를 읽고, 때로는 나보다 상대를 먼저 세우는 방식을. 하지만 나 자신을 존중하는 언어는 충분히 연습해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대화는 종종 두 개의 볼륨을 동시에 조절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하나는 나의 목소리, 다른 하나는 상대의 목소리다. 둘 중 하나가 지나치게 커지면 대화는 쉽게 균형을 잃는다.


Assertive라는 태도는, 관계를 지키기 위해 나를 지우지도 않고,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상대를 밀어내지도 않는 방식이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드러내면서도 대화의 온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힘,
바로 그 균형이 신뢰와 설득의 기반이 되는 경우가 많다.


글로벌 환경에서는 명확한 표현이 관계를 해치는 요소라기보다 오히려 신뢰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서로 다른 문화권이 협업하는 상황에서는 암묵적 기대보다 명확한 의사 표현이 불필요한 긴장을 줄여 주기도 한다.


Assertive Communication은 말을 강하게 하는 기술이라기보다 메시지와 관계를 동시에 지키는 태도에 가깝다. 글로벌 조직에서는 이 태도가 신뢰 형성과 리더십 존재감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sunset1.png 사진: Unsplash의Josh Millgate


결국 설득은 태도에서 완성된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시도와 자신을 존중하는 태도가 만날 때 메시지는 조금 더 자연스럽게 힘을 갖는다.


그래서 글로벌 환경에서 통하는 설득은 특별한 화술보다 자신의 목소리를 존중하면서도 상대와의 관계를 함께 고려하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조용한 질문 하나

나는 지금 내 의견을 숨기고 있는가,
아니면 관계를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충분히 표현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순간 대화의 방향이 조금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종종 말의 양보다 말의 태도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