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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Dec 11. 2023

연희동

밤이 영원했던 겨울처럼 긴 잠을 잤다.


눈을 뜬 뒤에도 습관처럼 붙어있는 잠의 흔적은 몸 구석구석 남겨져 있었다.


여름 내내 제대로 잠들지 못했던 탓인지 이상하리만큼 수면 시간이 늘어났다.


이대로라면 곰과 함께 겨울잠에라도 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느새 12월 중순, 지난주는 마이너스 기온의 제법 찬 바람이 불었다.


마침 로케가 있었고, 여행을 하듯 경기 북부와 반포 한강 공원 쪽에서 하루 종일 촬영했다.


오랜만에 촬영을 도와준 동생 덕분인지 어시스턴트를 하던 때의 일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연희동 스튜디오의 정리가 거의 마무리되어 간다. 이번 주 중이면 모든 정리를 마친다.


8년을 함께 했던 공간을 떠나는 건 단순히 몇 마디로는 형용할 수 없다.


많다고 하는 정도로는 부족할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왔고, 떠나갔다.


물건이 하나하나 정리 되어 빠질 때마다 추억이 하나하나 기억 속 먼 곳으로 사라졌다.


벽면에 붙여둔 사진들은 아직 떼지 않았다. 이것만큼은 왠지 가장 마지막에 하고 싶다.


모두가 기억하는 미러볼은 여전히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연말이면 사람들을 모아 파티를 했었다. 아마도 스스로가 가진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외로움을 채우고 싶었던 것이리라. 모두가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면 그걸로 행복했다. 어딘가 조금은 괜찮은 삶을 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려도, 쓸쓸히 혼자 돌아가는 길에 울음이 터져 나와도 또 다시 반복했다.


많은 변화를 앞두고 있다. 여전히 꿈을 꾸고, 스스로가 온전히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들을 향해 달리려 한다.


그곳에 사랑과 행복이 있다면 멈춰야 할 이유는 없다. 이렇게 다시 가장 처음의 겨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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