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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Feb 12. 2024

겨울 끝의 상상 사진관

해가 바뀌고 계절이 변하면 늘 막연한 바람 같은 것이 있었다. 언제나 마음속에 둥둥 떠 있는 단어들이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맴돌았고, 그것들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모습으로 이따금 고개를 내밀었다.


연휴의 마지막 날, 생이의 개인전에 다녀왔다. “생”은 이름이다. 정확히는 [이 생] 어시스턴트 시절을 함께 했던 후배의 이름으로, 예명이지만 줄곧 이 이름을 부르고 있다.


그러면서 같은 시절을 함께 했던 정훈이도 시간을 맞춰 동행했다.


엊그제 같다는 진부한 표현이 무색하리만큼 정말이지 지난날의 사건과 사고(?)들이 쾅 하고 밀려들듯 떠올랐다.


우리 모두 왠지 그 순간이 어제의 일처럼 느껴져서 멋쩍게 웃었다. 이미 10년도 지난 일들인데 마치 전장을 함께 헤쳐나온 전우애 같은 마음이 들어서였을까. 자꾸만 웃음이 났다.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 오래전 상상하던 그럴듯한 모습의 어른은 아닐지 몰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럭저럭 어떠한 형태를 가진 사진가로서 사회인의 모습으로 다들 잘 지내는 모양을 지니고 있었다.


불에 그을린 나무 냄새와 얼그레이 향이 맴돌던 전시장에서 수많은 기억과 마음들이 일렁였다.


다행이었다. 부끄럽지 않게 서로를 마주할 수 있어서, 앞으로의 미래를 응원할 수 있어서.


최근의 나는 적잖은 이별의 인사를 듣는다. 분명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인사말이지만 모두 조금씩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있다. 당신이 나를 찾아준다면 실재한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우리의 거리는 이별 같은 것이 아니다.


서로의 삶에서, 우리가 나누었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존재한다. 당신이 나를 기억해 준다면, 나는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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