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AI 투자로 다시 한번 저력을 입증한 실리콘밸리의 조용한 터줏대감
테크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실리콘밸리 또한 미디어가 곧 영향력인 시대로 접어든지 오래입니다. 안데르센호로위츠처럼 ‘미디어 포워드’한 전략이 선구자처럼 주목받고, 팔로워 수가 영향력 및 존재감으로 치환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새로운 세대의 창업자들은 이제 소셜 미디어와 콘텐츠를 통해 벤처캐피탈을 발견합니다. 샘 알트만처럼 OpenAI CEO로서 주요 공인이 되거나, 유명 유튜브 채널이나 팟캐스트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며 사상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새로운 표준이 된 것이죠. 아니면 피터틸처럼 정치적 논란까지 감수하며 공인으로서의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핵심은 사람들이 먼저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죠.
하지만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자 및 투자자들과 교류를 하다보면 유튜브에서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실리콘밸리 외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창업자들로부터 존경과 환호를 받는 투자사들도 많으며, 반대로 콘텐츠로 알려진 것 대비 현지 평판이 별로인 곳도 부지기수입니다.
또한 창업 및 투자 현장에서는 조용히 움직이면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펀드들이 존재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Accel Partners입니다. 회사 이름은 다들 한 번씩 들어봤지만 실제로 근무 중인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을 만난 적이 없다면 펀드를 이끄는 리더는 누구인지, 대표적인 스타 플레이어는 누구인지도 쉽게 기억나지도 않는 곳입니다. 하지만 Accel은 여전히 실리콘밸리의 터줏대감입니다. 그리고 이번 메타 - 스케일AI 인수에서도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며 또 한 번 명성을 입증하였습니다.
Accel은 1983년 실리콘밸리 샌드힐로드(Sand Hill Road)의 한복판에서 설립된 유서 깊은 벤처캐피털입니다.
설립자는 아서 패터슨(Arthur Patterson)과 짐 스와츠(Jim Swartz)로, 두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펀드명에 내세우지 않고 처음부터 ‘Accel’이라는 이름으로 팀 중심 문화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철학 덕분에 Accel은 파트너 개인보다는 협업과 내부 인재 양성에 초점을 맞춘 조직 문화를 구축할 수 있었죠.
실제로 미국 본사의 매니징 파트너 11명 중 9명이 Accel에서 주니어로 경력을 시작해 내부 승진한 케이스일 정도로, 내부 육성과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중시해 왔습니다. 즉, 대중에게 알려진 스타플레이어가 없다는 것은 우연이 아닌, Accel이 오랫동안 견지해온 팀 중심의 철학이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Accel은 초창기부터 “준비된 마음(Prepared Mind)” 철학을 투자 원칙으로 삼았는데, 이는 루이 파스퇴르의 격언인 “우연은 준비된 마음을 찾는다”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사전에 깊이 있는 연구와 테마 분석을 통해 투자 기회를 포착하고자 하는 이 접근법은 현재까지도 Accel의 의사결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2000년대 초반 한때 Accel이 예전만 못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2005년 페이스북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이러한 의구심을 불식시켰습니다. 당시에도 기업가치를 너무 높게 책정하였다며 닷컴 버블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조롱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해당 투자 한 건으로 Accel은 운용 중이던 펀드 전체의 몇 번에 달하는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습니다.
페이스북 투자의 성공으로 Accel은 2010년 이미 세콰이어, 벤치마크, KPCB 등 당시 경쟁자로 불리던 투자사들을 제치고 감히 넘볼 수 없는 톱티어 벤처캐피탈 반열에 올라섰으며 이후에도 드롭박스, 아틀라시안, 크라우드스트라이크 등 굵직한 성공 사례들을 다수 배출하며 소리 없이 강한 명성을 이어가게 됩니다.
Accel은 현지에서도 '조용한 실행' 스타일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경쟁사들이 대대적인 홍보나 공격적인 행보를 보일 때도, Accel은 내부 역량 강화와 포트폴리오 지원에 집중하면서 일관되고 신중한 투자 템포를 유지합니다. 미디어에 덜 노출되는 대신 투자 성과 자체로 말하는 전략을 취한 덕분에, 창업자들 사이에서는 "과대광고보다 실질 지원을 잘하는 투자사"로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투자 대상 선정은 신중하지만, 투자 단계에서는 전략적 유연함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스타트업의 첫 투자든 마지막 투자든 '준비된 마음'에 부합한다면 기꺼이 베팅하며, 심지어 창업한 지 10년이 넘은 기업이라도 Accel이 가치를 발견한다면 적극적으로 파트너십을 제안합니다.
스케일AI와 Accel의 인연은 2016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스케일AI가 와이콤비네이터에 합격하기도 전, Accel의 파트너 댄 레빈이 창업자 알렉산더 왕에게 투자를 제안했고, 스케일AI는 댄의 집 지하실을 첫 사무실로 사용하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Accel은 스케일AI의 시리즈 A를 리드하면서 과감한 선택을 합니다. 엔젤 투자자를 제외하고는 다른 기관 VC에게 투자 기회를 공유하지 않고 라운드를 독점하여 25%의 지분을 확보한 것입니다. 이는 매우 공격적인 베팅이었지만, Accel의 확신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 후 Accel은 매 라운드마다 추가 투자에 참여했고, 가장 최근 진행된 10억 달러 규모 시리즈 F 라운드에서도 다시 리드 투자자로 나서며 스케일AI의 성장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습니다.
그 결과 Accel은 스케일AI의 지분 18%를 보유한 최대 투자자가 되었습니다. 이번 메타의 인수로 Accel은 25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Accel의 전체 투자금 대비 25-50배에 달하는 수익으로 추정되며, 진정한 톱티어 VC가 '회수 기근' 시대에도 어떻게 큰 성과를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Accel은 창업가 정신이 기업의 특정 단계나 실리콘밸리라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하나의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합니다. 때문에 벤처 투자가 꼭 초기 투자일 필요는 없다는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퀄트릭스입니다.
고객 경험 솔루션을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기업 퀄트릭스는 2002년 유타에서 시작한 작은 회사입니다. 설립 후 수익을 내며 10년간 외부 투자 없이 사업을 이어온 퀄트릭스는 Accel의 끈질긴 구애 끝에 2012년 처음으로 외부 투자를 받기로 결정합니다.
당시 딜을 주도한 Accel의 라이언 스위니는 외부 자금 유치를 통해 일개 지역 소프트웨어 회사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설득했습니다. 투자 유치를 외부 간섭과 불필요한 부담으로 여겼던 창업자들은 결국 Accel과 세쿼이어의 자금을 받았고, 그 이후는 하나의 성공 스토리가 됩니다.
퀄트릭스는 2018년 상장 직전 SAP에 80억 달러에 인수되었고, 2021년 상장을 거쳐 2023년 무려 $12Bn 기업가치로 CPPIB-실버레이크 컨소시엄에 인수되며 다시 비상장사가 되었습니다. Accel은 초기 투자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올렸으면서도 2023년 컨소시엄 인수 당시 5억 달러를 재투자, 여전히 퀄트릭스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Accel Partners의 사례는 실리콘밸리에서 미디어 가시성과 실제 영향력 사이의 흥미로운 괴리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안드리센 호로위츠나 피터 틸 같은 미디어 스타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동안, Accel은 조용히 42년간 쌓아온 전문성을 바탕으로 업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Accel의 투자팀이 강조하는 "준비된 마음(Prepared Mind)" 철학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닙니다. 새로운 기회를 식별하고 깊은 확신을 가진 상태에서 투자에 임한다는 이 원칙은 기술 유행에 휩쓸리기보다는 철저한 연구와 준비를 바탕으로 한 선택과 집중을 의미합니다. 거품과 변동성이 큰 벤처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공하는 VC의 핵심 조건이라 할 수 있죠.
특히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적 대전환기를 맞은 지금, Accel의 접근법은 더욱 주목받고 있습니다. Accel 파트너들은 AI를 가장 중요한 인플렉션 포인트로 지목하면서도, 과도한 열풍과 현실을 구분하는 냉철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장기적으로 AI가 모든 산업을 재편할 잠재력이 크다고 평가하며, 이 역시 '준비된 마음'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시대의 실리콘밸리에서 Accel은 '결과 우선' VC의 대표주자로 남아있습니다. 그들의 조용한 선택은 전략적 결정이지 약점이 아닙니다. 신진 창업자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VC를 발견하고 평가하는 환경에서도, Accel은 본질에 집중하며 자신들만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결국 진짜 영향력은 조용히 흐른다는 것을 Accel Partners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샌드힐 로드의 진짜 힘은 여전히 미디어 스포트라이트 밖에서, 준비된 마음을 가진 이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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