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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Nov 01. 2023

이름을 삼가는 세상

빚과 소름

뚱냥이와 견인

컨트롤씨

빈센트 완고흐

모짜렐라 모자랠라

안 질리나 졸리

마카* 남이야

보조 배탈이

미워도 다시 삼 세 판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소금처럼 짜다. 늘어만 가는 빚에 소름이 끼친다. 나는 뚱뚱한 고양이와 같이 사는 개사람. 컨트롤씨는 복제를 거듭하고, 거울 앞에 서서 반뿐인 고흐를 완성하려 귀를 붙인다. 어젯밤 먹다 남은 피자 한 조각. 모짜렐라는 늘 모자라고, 졸리는 눈으로 질리지 않냐고 물어온다. 마카다미아* 봉지를 뜯으며, 깨지지 않는 껍질에 싸인 동그란 알을 씹으며, 마카* 남이라 외쳐본다. 주식 앱을 켜려는 순간 배터리는 나가고 보조 배터리 하나 없는 내 인생은 배탈이 나는가 싶다. 다시 생각해도 그놈은 미워 죽겠는데, 맞짱은 삼 세 판은 뜨고야 말으리라.


여러 이름을 달고 나는 메타버스 위를 붕붕붕 떠오른다.


이름을 삼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셀 수 없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아침부터 손가락 운동은 열심히.

해가 밝아도 기어만 들어가려는 나는 거북목을 하고 손바닥만 한 화면의 글자를 섬세하게 두드린다.


우체국 택배 5호 박스를 타고 잘 죽으라*는 축복을 퍼붓는 나라에 도착했다. 제니*도 아니면서 캥거루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만난 건 파란 눈의 사람들.

하이, 웟츄어네임?

마이 네임 이즈 은수.

른수?

은수.

엉수?

유 캔 콜 미 제니

제니! 잇츠이지.


내 이름은 어디에도 쓸모가 없다.

어딜 가도 거짓 이름이 가면처럼 나를 옭아맨다.

택배 상자를 타고 올 때 잃어버리지 않도록 상자에 내 이름 석자를 써 놓았건만을.

날 불러줄 이도, 날 들어줄 이도 발신인과 수신인이 같은 상자 위 내 이름뿐.


이름을 삼가는 세상에서 나만 조용히 내 이름을 불러본다.






*'마카'는 모두를 뜻하는 경북 사투리

*망치로도 깨기 힘든 호주 견과류

*구다이 마잇

( Good day, mate의 호주식 발음, 모르고 들으면 Good die로 들림)

*호주를 배경으로 한 만화영화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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