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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Nov 23. 2023

호주 바닷가 짜장면집, 짜장면과 소주 한 병

식당을 선택하는 데서 나의 기준은 그곳이 돈을 벌기 위해 음식을 파는 식당인가, 음식을 맛 보여 주고 싶어 음식을 파는 식당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식을 맛 보여 주고 싶어 하는 식당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꼭 그런 식당을 만나게 된다. 내가 호주에서 드물게 만날 수 있었던 그 식당은 바로 골코 바닷가에 위치한 짜장면 집이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짜장면과 짬뽕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호주에 산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간절히 생각나는 음식 하나를 꼽으라면 짜장면이다. 하지만 그 갈증을 해소해 줄 짜장면을 호주에서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해산물이 풍부한 이곳 호주에서 짬뽕만큼은 한국 못지않게 맛있게 하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부부가 운영하는 바닷가에 있는 짜장면 집이다. 이곳에서 나온 짬뽕에는 손님에게 최고의 짬뽕맛을 선사하고픈 주방장 주인아저씨의 마음과 땀방울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서빙을 보시는 주인아주머니의 눈빛과 손짓 하나에도 손님에게 정성을 다하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래서 이곳은 내가 바닷가를 산책할 때면 가끔 찾는 곳이 되었다.


붐비는 골드 코스트 중심가에 위치했지만 길 건너편으로는 바다가 보인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도로 너머로 바닷가를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곳이다. 오늘은 아들 녀석 친구와 바닷가에서 조개도 잡고 낚시도 하려고 아침 일찍 서둘러 나왔다. 조개는 좀 잡았지만 낚시는 허탕을 쳐 이래저래 마음의 허기와 위장의 허기를 달려주려 아들 녀석 친구와 이 짜장면 집엘 들렀다. 평일 점심때였지만 짜장면집답게 한국 손님들이 많았고 주인아주머니는 주문이 많이 밀려 좀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배가 더 고파지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겠거니 싶어 괜찮다고 말하고 우리는 물끄러미 야외 테이블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내 눈에 띈 것은 야외 테이블 한쪽에 혼자 앉아 짜장면을 맛있게 먹고 있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어느 외국인이었다.(내가 외국인이면서 감히 호주 사람을 외국인이라 칭하고 있다.ㅋㅋ) 피부 색깔과 생김새로 봤을 때 이곳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지널인 듯했다. 풍만한 가슴을 넓게 풀어헤치고 허벅지까지 길게 찢어진 치마를 입고 다리를 꼬고 앉아 짜장면을, 마치 한국사람이 먹는 것처럼, 맛있게 휘저으며 먹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단무지와 춘장에 찍어먹는 양파까지 야무지게 곁들여 먹고 있었다. 한국 식당에서 한국식 치킨 덮밥이나 고기류를 먹는 외국인은 흔히 보았지만 저렇게 까지 짜장면을 맛있게 먹는 사람은 처음 본 것 같다. 그녀는 허겁지겁 먹지도 않고 짜장면 한 가닥 한 가닥을 음미하듯 천천히, 입에 묻힐 검은 자국마저도 없이 아주 깔끔하게, 고상한 자태로 하지만 맛있게 먹고 있었다.


바닷가에서 낚시하느라 배가 고파질 대로 고파진 우리는 남이 먹고 있는 음식에 침을 흘리며 우리가 주문한 짬뽕이 얼른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가 먹고 있는 짜장면은 오늘따라 유난히도 더 맛있어 보여, 순간 짬뽕에서 짜장면으로 주문을 바꿀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거의 40분가량을 기다려 우리가 주문한 짬뽕이 나왔고, 아들과 아들 친구는 말 한마디도 없이 짬뽕을 들이켜기에 바빴다. 나 역시 배가 너무 고팠던 터라 내 눈앞에 나온 짬뽕에 오로지 집중하고 있었는데, 짬뽕을 반 정도 먹고 배가 어느 정도 차자 다시 짜장면을 먹고 있던 그녀의 테이블로 눈을 옮겼다. 계산을 해 보면 그녀는 우리가 오기 전부터 짜장면을 먹고 있었을 텐데, 거의 한 시간째 짜장면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짜장면을 다 먹고 가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소주 한 병이 그녀의 테이블에 나왔다. 짜장면에 소주라...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까 호주 사람이 저렇게 낮에 혼자서 먹는다고 하니 무척 신기해 보였다. 그녀는 소주잔에 소주병을 기울여 거의 넘칠 듯 한 잔을 채운 후 엄지와 중지로만 소주잔을 잡고 약지와 새끼 손가락은 날개처럼 날렵하게 세운 뒤 소주를 홀짝였다. 한 모금 들이키고는 멀리 바다를 보며 슬플 것 같지만 뭔가 행복한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그녀는 가끔은 슬픈 듯, 가끔은 허탈한 듯한 웃음을 멀리 바다에게 던지며 눈으로 무어라 말하는 것 같았는데, 난 그녀의 생각을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난 속으로 설마 저 소주 한 병을 다 마실리는 없겠지. 몇 잔 마시고 남은 건 가져가겠지 했는데, 우리가 짬뽕을 다 먹고 자리를 뜰 때까지도 그녀는 소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소주병에 남은 소주는 바닥을 보였다.


남편에게

"저 여자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 대낮에 짜장면에 소주 한 병을 먹는 걸까?"라고 물었더니

"한국인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헤어져서 혼자 여기 온 거 아닐까?" 한다.

"헤어진 남자 친구가 한국인이었다면 여기 다시 오고 싶겠어, 안 오고 싶을 것 같은데?" 했더니 남편은

"헤어진 남자 친구가 사무치게 그리워 온 걸 테지. 추억하러 말이야." 한다.

"그런가?"

끝난 사람은 뒤돌아 보지 않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길이 없지만, 슬프도록 아름다운 사랑을 한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내 맘대로 스토리를 쓰며 우리는 짜장면 집을 나왔다.


차를 타고 집을 향해 가면서도 그녀가 소주를 홀짝이며 바다에 던진 그 눈빛이 계속 아른거린다.


바닷가 짜장면 집.

짜장면에 소주 한 병.

그녀의 바다 같은 눈빛.


그녀가 바다에 쏟아낸 그 이야기를 언젠가 바다를 통해 들을 날이 오겠지.



<사진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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