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흠뻑 빠져 시청 중인 <눈물의 여왕>에서 여자 주인공인 홍해인(김지원)의 남동생 홍수철(곽동연)은 ‘어후철(어차피 후계자는 홍수철)’을 외치며 밉상 아닌 밉상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드라마 속 어느 캐릭터보다 안쓰럽고 마음이 가는 인물이다. 아마도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자기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한 채 지내고 있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 넘어지거나 다칠까 봐 걱정하는 엄마의 극진한 보살핌 때문에 자전거나 인라인과 같이 바퀴가 달린 것은 배워보지도 못하고 미끄럼틀조차 타보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버렸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 없이 성인이 되어버린 그는 겉은 성인이지만 안은 아직 배우지 못한 것들이 많은 어린아이처럼 보인다.그럼에도 아빠가 된 자신이 아들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만큼은 알려주고 싶어 이제서야 자전거를 배우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울컥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부모에게 아이는 그런 존재다. 아이가 아픈 것보다 내가 아픈 것이 수천수만 배가 낫고, 아이가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해줄 수 있는 그런 존재... 그러다 보니 사랑의 마음을 쏟고 쏟아 울타리를 치고 또 쳐서 보호한다. 나 역시 그런 엄마다.
얼마 전 둘째 아이는 퇴근한 엄마를 보며 다시 한번 눈물이 터졌다.(지난 글 회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떨어져 울고 난 뒤...) 이유는 이랬다. 미술 시간에 장승을 그려 각자의 작품을 칠판에 모두 붙이고 나서, 스티커를 한 개씩 나누어주고 잘한 친구의 그림에 붙이는 활동을 했는데, 자신의 그림에는 한 장의 스티커도 붙지 않아서 속상했다는 것이다.
아이가 방학 때 만든 우리 집 장승
욕심 많고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성향의 둘째 아이가, 집에서 그림을 그리면 엄마 아빠 할머니까지 엄지를 들어 올리며 각종 감탄사를 연발하는 리액션에 익숙해져 있는 꼬맹이가, 많은 친구가 한 개씩은 스티커를 나누어 받는 이 상황 속에서 분명 큰 상심을 했을 것이다. 그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해 아이의 속상한 마음이 너무도 이해가 되었고, 엄마인 나의 마음도 아이 못지않게 속상했다. 솔직히 고백하면,우는 아이를 토닥이며 '이런 활동이 꼭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이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밝고 씩씩하게 학교에 갔고 그제야 감정을 누르고 한 발짝 물러나 생각할 수 있었다. 그날 아이가 배웠을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술 작품은 모두가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도.. 모두가 나를 좋아하며 최고를 외쳐주지 않는다는 것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도.. 속상하고 외로웠지만 배우고 한뼘 더 성장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배움의 기회는 아이들이 생활하는 모든 상황에 존재한다. 아이들은 이런 기회들로 배우고 성장한다. 물론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렇기에 많은 부모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안전을 위해서 주의를 주고 당부하고 건의한다. 교사로 생활하는 나는 학교에서 매일 많은 부모님의 걱정과 건의와 당부를 마주한다. 뭐든 대신해 주고 앞장서서 해결해 주는 부모님도 마주한다. 부모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부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에 대한 사랑 때문에,배움의 기회를 빼앗아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다칠까 걱정되어 아이에게 안전한 울타리를 쳐주고 있는 내가, 혹시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경험하고 익혀야 할 많은 것들을 막는 배움의 장벽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홍수철 엄마처럼 아이를 너무도 아끼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지금 아이가 배우고 단단해지고 성장해야 할 기회를 잃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혹여 너희들이 아프지 않길 바라며 배움의 기회를 빼앗지 않도록... 더 많이 보고 느끼고 부딪히며 너희 삶의 주체가 되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