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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매기 Aug 15. 2024

이제 와서 도서관이 매일 가고 싶다니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중고딩 사춘기 때도 하지 않던 투정을 매일 하게 된다.


'하... 혼자 있고 싶다.'


하루종일 집에 같이 있어도 내 근처를 벗어나지 않고 살을 맞대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 껌딱지 딸내미 때문에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반갑기보다 심드렁한 기분다.


'휴우~ 상대할 사람이 하나 더 늘었군...'


이제 좀 쉬겠구나 싶은 생각은 내가 아니라 남편 생각일 테니 나의 일거리는  늘어난다.


아이와 전쟁 같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 치운 지 얼마 되지 않은 , 숨돌릴틈도 없이 다시 부랴부랴 남편 밥상을 차린다.


'여태까지 밥도 못 먹고 고생이네...'라는 생각이 머릿속엔 있는데 입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하루종일 쫑알쫑알 거리는 아이를 상대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텔레비전이라도 틀어놔야 좀 쉴틈이 생기니 나는 하루종일 귀가 시끄럽다. (스마트폰은 웬만하면 보여주지 않기에...) 언제부턴가 신나는 음악도 소음처럼 느껴서 안 들은 지 오래다.


결혼 전엔 무도 없는 적막한 집이 싫어서 계속 TV를 켜놓고 생활을 했었는데 요새는 집에 혼자 있을 땐 소리 나는 물건은 무조건 꺼두고 핸드폰 벨소리도 듣기 싫어 항상 진동이다.


문득 스무 살 때 핸드폰 부품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때가 떠오른다. 엄마뻘대는 이모들과 다 같이 바닥에 앉아서 부품 조립을 할 때 음악을 자주 들었다.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죄다 쾅쾅 울려대는 락, 댄스 음악이 전부였는데 내가 노래를 들려드리면 이모 한 명이 "노래도 참 별나고 시끄럽다"라고 한소리 했었다. 그럼 옆에 있던 다른 이모들이 민망한 듯이 "왜 그래~ 듣기 좋구먼, 촌스럽기는!" 하면서 젊은이들 눈치를 살피곤 했는데 내가 딱! 지금 그때 그 이모님의 마음을 알 것 같은 기분이다.


나이가 들면 왜 그리 산이 좋고 등산만 한 운동이 없다고 느끼는지 이제 너무 이해가 된다. 세상 고요하고 조용하고 경치 좋고 소리 풀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땀 흘릴 수 있는 바로 그곳이 천국이 아니 어디겠는가?




5살짜리를 데리고 걸어서 코앞인 놀이터 대신 매일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도서관에 다니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만큼 나도 나의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야만 하는 절실함이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을 찾았다. 깝깝하고 답답한 실내보다 야외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아서 매일 소풍을 다녔는데 엄청난 폭염에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처음 방문하게 된 어린이 도서관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빈백소파에 앉아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자니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이었다. 밖에서 뛰어노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우리 딸도 어린이들을 위해서 아기자기 놀이방처럼 꾸며놓은 공간을 보고 매일 도서관에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어린이 도서관 안에서도 유아전용 공간은 글을 못 읽는 아이들을 위해 조용히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줄 수 있도록 따로 분리되어 있어서 진작 올걸~! 하는 아쉬움 마저 들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여름 내내 놀이터 대신 도서관으로 출근을 했다. 아이가 키즈카페 보다 도서관을 더 자주 다니다 보니 장난감 보다 책에 대한 욕심이 생겨버릴 정도로 갈 때마다 책을 한가득 들고 나왔다.


그 덕에 나도 평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해 왔던 책들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깔리고 널린 게 책들이다 보니 저절로 발길이 움직였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열심히 무언가를 보고 읽고 공부를 하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저절로 뭐라 읽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무슨 책을 읽을까?'라는 고민은 단순히 책이 아니라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인생에 대한 고민과 관심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이가 골라주는 책을 읽어 주기만 했지 내가 직접 읽고 싶은 책을 고른 적이 언제였던가? 싶으면서 책을 고르고 읽어 나갈수록 내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방향성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도서관에 매력에 푹 빠지 된 나는 그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아이를 돌보는 것 말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면서 내 열정을 쏟아부을 작은 목표를 찾고 싶었다.


현재 나의 목표는

연재를 시작한 브런치북을 기한 내에 마무리하는 것!

대여한 책을 기간 내에 완독하고 반납하는 것!

우리 딸과 매일 도서관으로 소풍 가는 기분 내는 것!


나는 오늘도 딸과의 도서관 소풍을 준비하며 도시락을 싼다. 학창 시절 이렇게 도서관을 좋아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소용없는 가정도 가끔 해본다.


하지만 앞으로 내 인생은 더 멋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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