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어른 동화 10
주룩주룩 장맛비가 하루하루를 채우던 7월의 어느 월요일. 문을 열고 들어선 교실에는 세 아이가 놀고 있다. 웅이, 동이, 상이 세 아이들은 오늘도 제각각의 자리에서 현재를 즐기고 있다.
이른 휴가를 다녀온 상이가 검게 그을린 피부를 드러내며 웃고 있다.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는 상이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우리 상이 잘 놀고 왔어?" 하고 며칠 못 본 그리움을 담아 꽉 안아준다. 상이도 좋은지 웃는다.
동이는 교실에 들어설 때부터 교구장의 교구를 발로 다 흩트리고 누워있는 상태다. 오늘 뭔가 안 좋은듯한 상태를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인사를 건네도 본채 만 채다.
웅이는 내가 교실에 들어서면 눈을 나에게 마주하고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안녕하에요" 배꼽인사를 한다.
나도 90도보다 더 숙여 반갑게 웅이에게 인사를 하고 안아준다.
웅이 동이 상이 세 녀석은 오늘도 자신의 색을 뿜뿜 하며 놀이하던 중이다.
웅이가 블록놀이를 하고 있다. 멋지게 작품을 완성하고 아주 기분 좋게 놀이 중이다. 블록 길을 따라 굴러가는 구슬을 보며 만족의 소리를 낸다. 초록색 구슬이 굴러간다. 웅이도 따라간다. 얼른 집어 다시 길의 처음에 가져다 놓고 굴러가는 모습을 보고 또다시 집어 처음길에 놓는다.
다른 공간에서 놀던 동이가 웅이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며 다가온다. 동이도 구슬을 잡아 블록의 처음 자리에 올려놓는다. 구슬이 길을 따라 빠르게 굴러간다. 웅이가 소리를 지른다. "초록색~"
웅이는 초록색을 좋아한다. 요즘 초록에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초록색, 초록색~" 초록 구슬이 동이의 손에 들려 이동할 때마다 "초록색~"하고 외치며 발을 동동 구른다. 이유는 자신의 초록을 가져가는 동이가, 자꾸만 없어지는 자신의 초록색 구슬에 대한 원망이다. 초록에 대한 집착이다.
몇 번을 타이르고 설명해 줘도 초록색 구슬의 존재와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웅이를 잠재우기 위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초록 구슬을 포함한 구슬들을 통에 담아 안 보이게 치우고, 웅이가 좋아하는 점토놀이를 보여준다.
어느새 눈이 점토에 가서 따라오는 웅이가 귀엽다. "웅아, 우리 점토놀이 할까?"
파란색 점토에 하얀색 점토를 조금 나누어 주자 금세 안정을 찾고 놀이를 하는 웅이다.
웅이가 점토놀이를 하다가 말한다. "괜찮아~, 뭐가 괜찮아 뭐가."
그 소리를 듣고 나는 한마디로 "빵! 터졌다."
이유인즉슨, 웅이는 한계상황이나 자신이 원하는 게 안되었을 때 소리를 지르고 울고 화를 낸다.
그럴 때마다 가정에서나 유치원에서 "괜찮아."하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 결과 웅이는 자신에게 오는 문제상황에 스스로에게 "괜찮아."하고 이야기하곤 했다.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혹은 자신은 괜찮은데 주변은 안 괜찮은 상황에서 "괜찮아"를 외치는 녀석의 말에 우리는 웅이의 말뒤에 "안 괜찮아. 뭐가 괜찮아." "지금은 너만 괜찮지 우린 안 괜찮아."하고 장난반 사실반 이야기하곤 했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말을 잘 따라 하는 웅이가 이 말도 따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비 오는 그날 보여준 것이다.
실무사 선생님이 웃으시며 "웅이가 '괜찮아' 하잖아요. 오늘은 뒤에 말을 붙여서 말하는데 우리가 하는 말 따라 하는 것 같아요." 하시는 거다. 그래서 올 것이 왔구나 했는데 점토놀이를 하다가 더 많은 점토를 가지고 싶어 점토통에 손을 내밀다가 "오늘은 이걸로 놀이하자. 나머지는 다음에 놀아야지" 하는 말에 웅이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괜찮아. 뭐가 괜찮아 뭐가"를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말을 연습하듯 반복한다. "괜찮아, 뭐가 괜찮아 뭐가" 이야기하듯 말을 연습하듯 종알 종알 이야기하고 있는 웅이의 뒷머리가 사랑스럽다. 그리고 말조심을 다시금 다짐한다. 웅이는 대화를 할 때 아직 말을 따라 하는 게 많다. 다섯 살 때보다 상호작용이나 대화에 대답을 하는 확률이 늘긴 했으나 웅이는 말을 따라 하면서 또한 말을 배우고 있다.
다섯 살 하반기 웅이가 물병을 내밀며 "가꼬께, 가꼬께" 하고 말한다.
"가꼬께? 그게 뭐야? 뭘 갖고 와?" 하다가, 웅이가 물을 다 마시면 "물 갖고 올게" "선생님이 물 갖고 올게. 기다려." 하고 물을 다시 떠다 주었던 것이 떠올랐다. 물이 마시고 싶으니 물가 지고 오라는 거다. 선생님이 자신에게 물을 갖다 줄 때마다 하던 말을 기억해 내서 "물 주세요"가 아닌 "가꼬께"를 외친 거다. 그날 이후 웅이는 물이 필요할 때는 "가꼬께"하며 물병을 내밀었다.
"괜찮아. 뭐가 괜찮아 뭐가"도 이 맥락인 것이다. 아차차, 살무사님과 다시 한번 "우리말 조심해요."하고 다짐을 한다.
웅이, 상이, 동이가 유난히 보고싶은 비오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