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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행기타는S Feb 03. 2022

승무원 이야기_2.설거지를 하다 엄마 생각이 났다.

'여보가 출근하고 나면 내가 설거지 할게.' 라고 호언장담 했지만

나는 오후 늦도록 침대 밖으로 몸을 꺼내지 못했다.

강아지 산책을 다녀오느라 점심시간에 공원을 한 바퀴 돈것이 하루 일정의 전부였다.

쏟아지는 잠을 몰아내려고 노력해봐도 눈을 깜빡 하고나면 한 시간씩 훌쩍 지나갔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남편이 퇴근할 시간에 다다르고 있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명절동안 명절이라는 이유로 탑처럼 쌓아놓은 설거지 더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명절이 아니고서도 나는 설거지 더미를 쌓아놓곤 했다.


어렸을 때 부터 나는 설거지를 싫어했다. (그래서 거의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

설거지가 싫어서 애초에 요리를 하지도 않았기에 쉬는 날이면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는데

그런 나 때문에 엄마는 항상 내 밥을 챙기고 외출하거나

외출중에도 집에 들러 끼니를 챙겨주곤 했다.


언니가 아이를 낳아서 엄마가 조카를 봐주던 때 조차도 엄마는 열심히 유모차를 끌고와 내 끼니를 챙겼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언니부부의 집이 있었다.)

몸이 한 개 임에도 불구하고 자식 둘에 그 자식의 자식까지 돌보고 있는 우리 엄마였다.



우리 엄마의 지극정성 자식사랑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출퇴근 때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공항 리무진을 타기위해 버스정류장으로 나가는 출근길 내 옆엔 항상 엄마가 함께였다.

새벽 5시든, 추운 계절이거나 비가 억수로 오는 날에도 마찬가지 였다.

나는 빳빳한 유니폼에 다리가 묶인 사람인양 높은 구두를 신고 종종거리며 걸었다.

캐리어를 끌어야 할 손은 중심을 잡는데에 쓰느라 꽃받침을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허공에 휘둘렀고,

대신 엄마가 캐리어를 돌돌 끌었다.

한 겨울에는 커다란 어그부츠를 신고 출근하다가 공항버스가 오면 엄마에게 벗어놓고 정류장을 떠났다.

비가 오는 날엔 우산을 두고 갔고, 강아지를 안고 있다가 건네주고 가기도 했다.

그렇게 나를 버스에 태워 보내고 나면 엄마는 혼자 집에 돌아와 내가 최종목적지에 도착할 때 까지 내 연락을 기다렸다.


엄마는 가끔 내게

'네가 떠나고 나면 엄마 자궁이 쑤-욱 빠지는 기분이야.

 그래서 네가 도착할 때까지, 네가 안전한지 확일할 때 까지 잠이 안와.'

라고 말했다.


뉴욕에 도착할 때까지 순수 비행시간은 15시간 이지만

출발시각 전 3시간 30분 일찍 출근, 도착지에 도착하여 비행을 정리하고 호텔까지 들어가면 최소로 잡아 2시간을 잡고나면 거의 20시간 이상이였다.  

그 시간동안 엄마는 나를 애처롭게 생각하며 기다렸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에게 생존소식을 알렸다. )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리무진을 타고나면 엄마에게 연락해 버스 탑승을 알렸고,

엄마는 버스 어플을 이용해 내가 탑승한 버스를 체크하고 정류장에 도착할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왔다.

머리를 가누지 못할 정도로 피곤에 찌들어 짐짝이 된 몸을 이끌고 버스에 오른 나는

종종 기절해 자고있느라 제때 내리지 못하곤 했는데 엄마는 창 밖에서 창문을 톡톡 두들기거나 기사님게 양해를 구하고 버스에 올라 나를 일으켜 내리곤 했다.


그래서 정류장에 다다를 때 나는 항상 창 밖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문 앞으로 와서 손을 잡아주거나 (주저앉을만큼 근육이 무너진 다리에 높은 하이힐때문이었다.)

짐을 대신 내려주던 엄마가 있었으니까.


언제나 나의 출퇴근에 함께였던 엄마였다.

하지만

2015년 조카가 태어난 이후 엄마는 더 이상 나를 챙기지 못했다.

어쩌면 챙기지 않아도 될 것을 챙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더 이상 내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류장에 도착할 때면 (눈이 떠있다면) 사람들 사이로 여전히 엄마를 찾았다.

혹시라도 나를 데릴러 와주지는 않았을까 하고 목을 쑤욱 빼고 시선을 바삐했다.


고작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버스정류장이였지만 혼자서 출근하고 퇴근하는 길은 왠지 허전하고 고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결혼을 한 뒤 친정과 1시간 가량 먼 거리에 터를 잡은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쓸쓸함을 느낀다.  

고작 몇 백미터 혼자 캐리어를 끌고 공항버스를 기다릴 때, 나는 문득 옛날이 그립다.

온전히 엄마의 품에서 자라던 그 때, 홀로서야 하는 그 마지노선까지 함께하던 엄마의 최선의 보살핌이

나는 그립다.





혼자 싱크대 앞에서 물을 틀어놓고 퐁퐁을 짠 수세미로 그릇을 닦고있는데 문득

잠결에 듣던 엄마의 설거지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집안일 하던 모습을 보던

예전의 너무나도 아닌 날들, 너무나도 평범하고 하찮은 그 날들이

얼마나 소중한 날들이였는지 새삼 깨닫는다.


나의 생일도, 나의 어떤 기념일보다도

너무나도 아무것도 아닌 그 날들이 나는 소중하고 그립다.

정말 아름답고 특별한 날들은 그저 평범한 하루 중 아무 날 이라는 것을

나는 엄마의 품을 떠나오고나서 알게되었다.

늦게 일어나느라 아침밥상 앞에서 투정을 부리던 때와

엄마를 두고 친구들과 밥 먹으러 나가던 때를 뒤늦게 후회하며 말이다.



퐁퐁을 머금은 그릇들이 식세기 안에서 요란하게 헹궈지고 있다.

그 때와는 또 다른 세상, 다른 시간이지만

애틋한 마음은 그 때와 같다.

마음을 마음껏 표현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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