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행기타는S Feb 02. 2022

눈 오는 날이 되면 나는 싫었다가 좋았다가 한다.

(퇴고 없이 쓰는 글/ 부지런해지려고 하는 기록) 




2017년 12월 24일 

나는 인천공항 한 구석에 쭈구리고 앉아있었다. 

세탁소에서 빳빳하게 다린 청결한 유니폼 치마가 구겨질새라 

계단 한 쪽에 가지런히 다릴 모아서. 


면세점 쇼핑을 하고 난 뒤 게이트를 통과하고

비행기를 타러 내려가는 그 에스컬레이터 옆 가파르고 차가운 계단에 

그것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말이다. 


영문을 알 수 없었고 비행기는 계속 연착되고 있었다. 

내가 타야하는 비행기 뿐만 아니라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모든 비행기가 멈추어있었다. 

오직 착륙하는 비행기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자욱한 안개때문이라는 소식이 뒤늦게 들려왔다. 

계단에 앉아 추위와 싸운지 3시간 만의 소식이었다. 


인천공항 바닥에서 9시간을 버틴 후에 나는 파리로 출발 할 수 있었다.

기다리던 운항승무원 (기장)은 법적으로 규정된 근무시간을 초과해 

다른 승무원으로 교체되었지만 객실승무원인 스무여명의 동료들은 

언제 출발할지 모르는 기약없는 기다림과 싸우다 승객과 조우하게 되었다. 


2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는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 했다. 

크리스마스에 아름다운 파리에서 시간을 보내려 했던 300여명의 승객들은 

비행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승무원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볼 에너지와 기내식을 먹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어쩌면, 누구보다 같은 처지였기에 우리에게 화를 내지 않았을 지도.




눈이 내리는 게 좋다. 

눈 위를 뛰어다니는 것이 좋다. 

강아지들이 하얀 눈밭을 뛰놀고 빨갛게 언 손으로 그들의 사진을 찍으며 훌쩍거리는 시간이 좋다. 

밤 늦은 시간, 펑펑 내리며 하늘을 수놓는 눈이 그렇게 이뻐보일 수가 없다.


사실,코로나로 일을 나가지 않아서 그렇다. 


펑펑 내리는 눈이 소복하게 쌓일 때면 나는 한편으로 공항의 비행기를 생각한다. 

어느 항공사의 비행기인지 알 수 없을만큼 눈으로 뒤덮인 비행기를 바라보던 시간,

아침부터 발을 동동거리며

오늘은 몇시간 연착되나 마음을 졸이던 그 시간들이 아득하기만 하다. 




눈으로 쌓인 비행기는 반드시 디-아이싱 작업을 거쳐야 한다. 

날개에 쌓인 눈을 없애는 작업인데, 

눈이 많이 올 때는 이 작업도 소용이 없다. 

소복하게 쌓여 꽁꽁 언 눈을 털어내고 나서 이륙준비를 하다가

또 다시 눈이 쌓여 디-아이싱 작업을 하러 작업장에 가야한다. 

작업장에 나와 재빨리 이륙준비를 하지 않으면 또 반복이다. 

최소 30분은 걸리는 이 작업으로

눈이오는 날이면 두 시간의 이상의 지연상황을 겪는건 겨울의 일상이였다.



비가 많이오고, 바람이 많이 불어도 비행기는 뜨고 내린다. 

정말 치명적인 태풍이 아니고서야 그렇다.

하지만 눈은...그리고 안개는... 정말 답이 없다. 


오늘의 날씨에 하루하루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직업병이나 마찬가지다.

2월의 뉴욕, 일주일 내내 호텔에 갇혀 

언제 뜰지 모르는 비행기와 언제 그칠지 모르는 폭설을 견디며 

컵라면 면발을 후루룩 거리고 


내일 결혼을 앞두고 제주도에 갔다가 

태풍에 휩쓸려 서울로 돌아오지 못하는 다른 동료의 소식에 안타까워 한다. 


이처럼 나는, 그리고 나의 동료들은 날씨 하나에 울다가 웃다가 한다. 

날씨는 내게 어떤 존재인가.


햇빛이 내리쬐는 골목을 걷다가 

맑은 하늘에 흩날리는 눈발을 가만히 바라본다. 

어느 눈은 쌓이다 못해 바람에 흩날려 내리는 눈처럼 흩어지고

어떤 눈은 햇빛에 녹아 천막 끝에 또로록 모여 주루륵 물이되어 흘러내린다. 


나는 오늘 기분이 좋았다. 설에 눈이 온 것이 기뻤던 것 같다. 

가족들과 끝없는 쉼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오늘은 연휴의 마지막 날이지만, 나는 내일도 쉰다.) 

위태롭게 빙판길을 걸으며 쌓인 눈이 얼굴위에 날카롭게 스쳤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겨울에 일하고 있는 나의 동료들이 생각나서 말이다.


작년 12월 이후 꼬박 3개월을 쉬고 

3월이면 나도 오랜만에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3월이라 다행이다,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나의 죄책감을 더 깊게한다. 

하늘을 올려다 보며 나는 오늘도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미안했다가, 눈이 사랑스러웠다가.


뭐 그렇다.


 










작가의 이전글 게으른 나의 소박한 계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