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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애 Sep 18. 2021

질문을 핑계로 한 명령

그의 화법은 참 묘하다

그의 화법은 참 묘하다. 그리고 의도를 숨긴 그의 묘한 화법에 나는 꼭두각시처럼 놀아난다. 보통은 이렇다. 물을 마시고 싶은데, 움직이기 싫다면? 그는 나에게 ‘물 좀 가져다줄래?’ 라고 하지 않고, ‘물이 없네’ 라고 하거나, ‘물 마실래?’ 하고 나에게 묻는다. 그럼 나는 어느새 컵에 물을 담아 와 그에게 내밀고 있다. 상대적으로 성격이 급한 나의 성미를 아주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온수매트 켜져있나?’ 라고 묻는다면 나는 온수매트로 가서 전원버튼을 누른다. ‘우리 설거지하고나서 놀까?’ 하고 말한다면 나는 고무장갑을 끼게 된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의 물음표는 나를 자연스레 무수리처럼 움직이게 한다.


어느 날은 왜 그렇게 돌려서 말하냐고 물어보니 ‘~해라’ 또는 ‘~해줘’ 라고 말하기가 너무 미안하다고 한다. 상대방을 배려하려고 명령조를 피한다는데 글쎄... 듣는 입장에서는 결정권을 나에게 넘김으로써 죄의식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해 보여서 더 열 받는다. 이십대때는 그걸 몰랐다. 정말 사려깊고,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마음 따뜻한 오빠였던 그는, 이제 능구렁이 화법으로 상대방을 시켜먹는 아재가 된 것일까. 화가 난다. 결국 내가 하는 이 모든 그를 위한 행동은 그의 화법으로 인해 그가 시킨 것이 아닌, 내가 자의로 한 행동이 된다. 


“오빠. 부탁할때는 뭐라고 말하랬지? 이제부터 ‘~할까?’라고 하지마. ‘~해줄래?’라고 해.”


이제 서른이 넘어 머리가 굵어진 나는 그를 바꿔보고자 했다. 하지만 제 버릇 남 못준다고 그는 또 나를 시켜먹으려다 나의 화를 돋우고, 나는 그런 스스로에게 강한 의문이 남는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거지? 그리고 왜 난 그 부탁을 들어주고 있는거지?’


화가 나 먼저 침대에 눕는다. 화가 난 건 그의 말하기 방식이 아니다. 그에게 자꾸 당하는(?) 내 모습이다. 사실 소파에 누워잘까 생각해봤지만 옛 어른들 말씀이 생각나 그러지 않았다. 


‘부부는 아무리 싸워도 잠은 같이 자야한다.’ 


정말 옆에 눕기 싫은 날도 있었지만 꾹 참고 누웠기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거라 생각한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헝클어진 머리의 뒷모습을 보면 또 그만 마음이 애잔해지는 것이다. 미워서 견디지 못하겠던 그 마음들은 자면서 다 숨으로 내뱉어지는건지, 돌아누운 그 등이 너무도 조그마하게 보인다. 그럼 나는 그 등을 안아주는 수밖에 없다. 누가 또 텅 빈 그의 등을 안아주나. 내가 안아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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