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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애 Sep 18. 2021

나는 그의 구글이 아니다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하네

한 살씩 나이를 먹으며 느끼는 것이 있다. 바로 트로트 가사에서 스며나오는 공감대다. 단순한 멜로디에 취해 자칫 쉽게 흘려보낼 수도 있지만, 가만히 시처럼 읽어보면 옛 성현의 말과 같이 뼈에 새겨야 할 문장들이 많다. 가장 최근에 내가 뼈에 아로새긴 문장은 내가 태어난 해에 발매된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라는 곡의 가사다.


남자는 여자를 정말로 귀찮게 한다. 우리 아빠가 그랬고, 나의 남편이 그렇다. 심지어 그는 자연스레 나를 구글 취급한다. 우리집 거실에는 구글 홈이 있는데, 날씨도 물어볼 수 있고, 음악도 틀어주고, 볼륨도 조절해준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내가 있는데, 내일 날씨도 물어보고, 지금 상황에 맞는 음악도 골라달라고 하고, 잠 잘땐 벽난로 소리도 틀어달라고 한다. 왜 내가? 라는 질문에 앞서 나는 이미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언젠가 남편에게 ‘오빠도 스마트폰이 있지 않냐. 왜 나더러 부탁하냐’ 했더니 돌아오는 답이 날 벙찌게 했다.


“현애가 오빠보다 검색이 빠르잖아.”


이러다가 나없인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력자가 되는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고 하면 또 내가 없을땐 본인이 스스로 잘 한다며 나를 안심시키는데, 왜 마음이 놓이지 않고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걸까. 내가 있을 때도 잘 할 순 없는걸까. 왜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할까? 왜 그는 나를 구글 취급할까? 어쩌면 무수리의 영혼을 지닌 내가 그렇게 길들인 것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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