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5월 생 아이면 아이가 다섯 살이건, 열 살이건 간에 매년 5월에 아프다는 소리다.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긴 하다.
말이 안 되는데 이 얘기를 쓰는 이유는
내 배를 가른 부위가 유독 요즘 들어 쑤시고 거슬리기 때문이다.
내 아이는 일월생이다.
painful new year!!
아이를 낳은 지 3년이 되었다. (30년은 늙은 것 같은데)
3년 치의 늙은 몸과
3년 치의 땀과 눈물
3년 치의 신경정신과 약물
3년 치의 외로움
그리고 3년 치 성장한 아이가 남았다.
남편의 육아 외면, 양가 부모님들의 외면, 코로나 사태로 인한 이웃 간의 단절이
나만 겪는 어려움이 아니라 생각하고 참았다.
그런데 고통이란 사람마다 역치값이 다르다고 한다.
어느 엄마는 씩씩하게 세네 명의 아이를 혼자 길러내기도 하고
어느 엄마는 한 명 키우는 것도 숨차 헐떡거린다.
하루는 의사인 친구와 대화를 했다.
"나 힘들어. 너도 알겠지만 내가 살면서 힘들다고 한 적 있니. 근데 요새는 진짜 힘들어. 이건 진심이야."
"얘. 사람마다 고통의 역치는 다 달라. 어느 환자는 살짝만 건드려도 아프다고 하고, 어느 환자는 수술 중에도 잘 견디지. 그렇다고 우리가 아프다고 외치는 환자에게 에이 다른 분은 더 잘 참으시는 데 왜 아프시냐고 물을 수 있을까? 그들이 아프면 아픈 거야. 네가 아프면 넌 아픈 거야. 네가 힘들면 힘든 거야. 다른 사람이 견딘다고 해서 너도 억지로 견디려고 하지 마."
엄마는 언제나 본인의 고통이 우선이었다.
혼자 나를 키우면서 힘든 것은 당연히 맞는 소리지만
그래도 너무 티를 냈다.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알아?"
"나만큼 좋은 엄마가 세상에 또 어데 있겠냐."
"너는 날 괴롭히려고 태어난 년이야."
그녀가 힘들게 벌어 온 돈으로 먹고 자고 생활하는 대가로
나는 온갖 가시 돋친 말을 들어야만 했다.
성격 탓인지 대차게 반항 한 번 못했다.
욕하면 듣고, 때리면 맞고, 던지면 치우고 그랬다.
그렇게 살다가 15살 때 갑자기 위에 극심한 통증이 왔다.
시험기간 때 밤을 새우면 위염 증세는 뭐 흔하게 있었는데
평소의 위염이 파도라면 그날은 쓰나미급이었다.
난생처음으로 엄마에게 병원에 가자는 소리를 했다.
그녀는 오늘은 늦어서 응급실은 비싸니까 내일 가자고 했다.
동네 병원에서 위 내시경을 했다.
술담배도 안 하는 15살의 위가 별게 있었겠나.
검사는 싱겁게 끝났다.
검사 후 의사 선생님이 다정하게 말씀해 주셨다.
"학생. 할 말 있으면 어? 다 하고 살아. 마음에 담아두면 병이 되거든. 그럼 진짜 아프게 되는 거야.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화나면 확 다 때려 부수고 어? 다 해. 알았지."
그분의 말 한마디는 위염의 근본을 뿌리 뽑는 처방이었다.
그 와중에 수면 내시경이라고 추가비용까지 냈는데 잠이 안 와서 맨 정신으로 내시경을 했다.
간호사분이 잠 오는 약은 많이 남았으니 더 맞고 가라고 했다.
엄마는 옆에서 기다리다가
"야. 이거 언제 다 들어가냐. 지루하다 지루해. 그냥 링거 따서 한입에 마셔 버리고 집에 가면 안 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