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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사님 Jul 11. 2021

나의아저씨와 기생충으로 본 자존감에 대한 고찰

당신의 자존감의 기준은 어디에


자존감이 뭘까. 사전적 정의로는 자신에 대한 존엄성을 타인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 기해 얻어지는 개인적 의식이라고 한다. 사회복지학사전에 따르면 그렇다. (2009, 이철수 저) 뭔 말인지 모르겠다.




좀 더 쉽게 가보자.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은 아이유에게 종종 멘토처럼 삶의 대한 조언을 해준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 달리기 얘기를 하다가 외력과 내력의 이야기가 나온다. '달리기를 잘한다니 내력이 강할 것 같아서 뽑았다.' 내력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 자존감도 그런 면에서 내력과 통일한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책 보다 사람


자존감에 대한 책들이 붐을 일궜던 때가 있다. 현재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딱 한 번 읽은 적은 있다. 별 도움 안 됐다. 되려 지인들에게서 그 방법을 깨닫곤 하는 순간이 있곤 했다.


나는 늘 누군가를 만나면 별일 없는지부터 묻는다. 안부인 사다. K는 늘 똑같이 대답한다. "문제없지." 녀석의 그런 의연한 모습을 늘 부러워하곤 한다. 한 편으로 삐뚤어진 마음에 '나는 이렇게 힘들고 사건 투성인데 너는 왜 아무 일도 없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부러움과 인정의 뒤편에 질투와 시기가 숨어 고개를 내밀려할 때마다 그가 나의 몇 안 되는 소중한 지인 중 한 명이란 사실을 각인해야 했다.


K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하고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종용하지 않는다. 그래, 보다 좋은 표현을 빌리자면 심플. 심플하다.


영화 '기생충'에서 조여정은 부잣집 사모님으로 등장한다.

조여정을 보고 사람들은 '굉장히 심플해'라고 말한다. 극 중에서도 조여정은 별 고민 없이 모든 것을 뚝딱 해치운다. 부에서 우러나오는 여유 그 자체다.


그런 K를 부러워한다. 이만큼 따라잡았다 싶으면 K는 열 걸음은 앞서 가 있곤 했다. 이리저리 우회하고 유턴해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는 어느새 정상에서 웃고 있곤 한다.  보기 드물게 선하고 매력적인 사람. 그리고 나는 보기 드물게 까탈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사람.


전에는 이런 관계를 아예 유지하거나 만들지조차 못했다. 내 안의 끌어 오르는 질투심, 열등감을 콕콕콕 찌르는 순간 관계는 파국에 닿곤 했다. 찌질의 냄새에 깊이 빠진 내게 그가 손을 잡은 후 고민했다.


 미워하고 좋아하는 감정이 동시에 드는 양가감정 아래 나는 갈등했다. 함께 있으면 좋으면서도 초라해지는 기분. 부러워하고 끝나면 그만 일 텐데. 하지만 이 사람을 잃을 순 없어, 질투하지 말고 축하하고 기뻐해 주자 하며 마음을 다 잡는다.


돌아보면 사랑도 자존감이 전적으로 영향을 끼치곤 했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이들에게 열렬히 빠져들곤 했다. '당신을 가지면 나는 당신의 자존감을 가질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듯. 그러나 관계가 깊어질수록 대화를 나눌수록 허탈감이 몰려오는 순간이 있곤 했다. '아 너는 나랑 다른 세계를 사는구나'라는 기분이 드는 순간 뒷걸음질 치게 됐다. 이 관계를 유지할 자신이 없다며.


난 왜 이렇게 비뚤어진 어른이 돼버린 걸까 의식하고 고찰을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 글은 자존감,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그 빌어먹을 것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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