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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사님 Jan 08. 2023

혹시, 취미 있으세요?

취미가 뭐냐는 말에 한 번 즘 깊이 고민해본 사람을 위한 글 

오랜만에 미술관을 다녀왔다. 이번에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을 통해 열린 키키 스미스 개인전인데, 전체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어렵다'였다. 사실 모든 미술 작품은 어렵다. 돌아보면 수능 문제만큼 친절했던 것도 없더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대 미술은 난해하다. 그럼에도 나는 미술을 사랑하고 좋아한다. 물론, 그에 반해서 지식은 별로 없지만. 그래서 당당히 취미란에 미술 작품 관람을 적지 못하고 있다. 취미라고 말하면 왠지 그 분야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으니까, 그래서 못하고 있다. 


너 그림 좀 그린다


그럼에도 시간이 나는 데로 틈틈이 미술관을 들리는 이유는 사실 칭찬의 힘이 컸다. 어릴 적, 나는 유독 많이 듣는 칭찬이 하나 있었다. 그건 그림에 관한 칭찬이었다. 초등학생 때였다. 어쩌다 그런 상황이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교생 선생님 한 분이 '너는 그림을 찰 잘 그리는구나'하고 칭찬을 해줬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내 경우에는 좀 심했다. 칭찬받으면 또 칭찬받으려고 그것만 열심히 판다. 


그렇게 내 취미는 그림 그리기가 됐는데, 자연스레 특별활동으로 수묵화까지 배웠다. 생기부를 찾아보면 장래희망에 화가라고 기재되어 있는 걸 보아 당시에는 정말 미술에 진심이었나 보다. 하지만 미대는 진학 과정과 진학 후에도 비용이 어마무시하게 든다라는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미술의 꿈을 접었다. 무엇보다, 화가로 살아가기에는 알량한 재능이라는 것을 깨닫고 포기했다. 


그래도 변함없이 초중고 12년을 미술 수업을 언수외 보다 더 열심히 들었다. 이래서 칭찬이 무서운 거다. 애들 앞에서는 함부로 물도 못 마신다는 말처럼, 칭찬 한 마디에 미술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됐고, 언젠가 바스키아나 앤디워홀이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야, 걔넨 천재고 넌 아니야!'라고. 아니, 이건 좀 너무 심한 것 같다. 그래도 꿈과 희망에 한창 부풀어 있을 시절인데, 순화해서 이렇게 얘기해야겠다. '그림 그리기 말고, 그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면 나중에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단다.' 

 

취미와 자기 계발은 다른 거야


또다시 생각해보니 그 말에 반항심이 차올라 영어와 더욱 멀어질 것 같다. 시간을 돌릴 기회가 온다고 해도 취미를 바꾸라는 말은 그냥 하지 말아야겠다. 차라리 비트코인이나 미리 사두라고 해야지. 그래야 지금처럼 미술관도 가끔 다니고, 작가들 이름이나마 알고 있겠지. 미술 관람이 그렇게 나쁜 취미도 아니고. 


사실, 내가 취미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된 건 얼마 전 취미를 말해야 하는 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색함을 깨고 관계를 가깝게 만들기 위해 그들은 다정하게도 취미를 물어봐줬다. 그에 확신 없는 목소리로 '요리요, 요리.'라고 대답했다. 요리도 사실, 취미라고 말할 정도에 수준은 아닌데. 그래도 다른 것보단 좀 더 많이 해봤으니까 취미라고 할 수 있겠지.


언제부턴가 누군가 취미를 물으면 한참을 고민하게 됐다. 왠지 자기 계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깊이 있게 알고 있음을 증명해야만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사실 취미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이 그렇다. 시간 내고, 돈 들이고, 관심 갖고 행해야 하는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그 정도면 당연히 전문성도 있어야지.'라고 내 안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덩달아 외친다. 


그래서 취미가 뭐야


하지만 좀 전문성이 떨어지면 어때, 내가 즐거우면 됐지. 그래, 이렇듯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취미가 뭐냐는 질문은 여전히 내게 난제다. 그리고 대다수 사람들에게도 그런 것 같다. 지금껏 만나는 사람들 마다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건넨 이 취미가 뭐냐는 말에 대부분 유튜브 보기, OTT 영상 시청하기를 말했으니 말이다. 어쩌다 우리에게 '취미 있으세요?'라는 말이 이토록 어려운 질문이 됐을까. 


씁쓸하다. 내가 즐겁게 할 수 있고 관심 가지고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면 그만인데, 그게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그렇다면 나 답다는 건 뭘까. 누구보다 나답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이효리 조차 나 다움에 대해 고민한다.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그리고 관심 갖는 건 뭘까. 이 간단한 질문에도 고민한다. 그리고 살아간다. 취미가 뭐냐는 말에 당당히 '저는 ~이에요.'라고 말하는 당신, 제법 잘 살았다. 멋있다. 하지만 '취미요?... 딱히 없는데. 그냥 시간 나면 영상 보기?'라고 말하는 당신도 잘 못 산건 아니라고. 그냥, 그렇게 나는 말하고 싶다. 취미가 없으면 어때, 이제부터라도 찾으면 되지. 괜찮아, 요즘은 백세인생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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