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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써니 Jan 23. 2023

너에게 남기는 편지

나의 너에게, 편지의 시작


"엄마 새해 첫날 꿈을 꿨어.

그 꿈꾸고 너무 무섭고 두려워. 내가 저녁에 다시 얘기해 줄게."


설 연휴 여행지에서의 아침, 딸이 나에게 한 말이다.


"아구~ 우리 딸이 무서운 꿈을 꿨져영?~"하면서 영혼 없는 공감의 말을 건넸다.

바다도 보고 고기도 먹고 뷰 좋은 카페도 가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숙소 들어가기 전, 딸아이와 걷는데 아이가 다시 말을 한다.


"엄마, 내가 꿈 얘기 해줄게."

무슨 비밀 얘기라도 하는 듯 비장하게 말한다.

"응, 꿈 얘기 해줘~"

무슨 꿈이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나 싶어 아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내가 설날에, 그러니까 진짜 새해 첫날이잖아? 근데 꿈에서 엄마가..."

"응, 엄마가?"

"엄마가 죽었어... 엄마가 죽었는데 너무 슬퍼서 나도 따라 죽고 싶었어. 나는 엄마 없으면 못살아. 꿈속에서도 꿈인걸 알겠는데 너무 슬프고 무서워서 막 울었어."라고 이야기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웃기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해줘야 좋을지 순간 여러 마음이 들었다.


"꿈에서 엄마가 죽어서 무서웠어?"

"응, 나는 엄마 아빠 밖에 없잖아. 언니도 없고 오빠도 없고 동생도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없이 나 혼자에 엄마 아빠가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무섭고 두려웠어. 오늘 하루 종일 그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어."


아이의 이런 마음이 사실 이해가 됐다. 나라고 생각을 안 해 본 것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나와 남편 둘이 차를 타고 가다가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우리 딸은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남편이나 나나 형제자매와는 왕래가 없는 상황이어서 아이에게 가족이란 우리 세 식구가 전부이기 때문에 이런 걱정을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너라도 그런 걱정을 했을 것 같아."

그리고 그다음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교과서 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엄마 봐봐!! 지금 엄마가 옆에 있지? 엄마가 우리 딸 눈에 이렇게 있잖아. 그건 꿈이고 실제는 엄마 아빠가 우리 딸 옆에 이렇게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알았지?"

내 말이 아이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 엄마는 외할머니가 엄마 몇 살 때 돌아가셨다고 했지?"

"응, 외할머니는 엄마 나이 스물여덟 살 때, 외할아버지는 엄마 나이 서른두 살 때 돌아가셨지."

"그때 슬프지 않았어? 그래도 이모하고 삼촌이 있으니까 괜찮았을 거 아냐?"

"엄마 무척 슬펐지. 이모하고 삼촌이 있었지만 많이 슬펐어.  가족이 있으면 힘이 날 수도 있는데 오히려 가족 때문에 더 힘들 수도 있어.  왜냐하면 가족에게는 기대하는 것이 있는데 그 기대 같지 않을 때  더 외로울 수도 있거든."

막 열세 살이 된 아이가 이해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런 말이 나오고 말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숙소에 거의 도착하고 있었다.

"엄마, 솔직히 나 요즘 너무 행복하거든. 친구들하고도 관계가 좋고 공부도 내가 잘하는 것 같고, 너무 행복해.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많이 들어. 그러니까 엄마하고 아빠하고 어디 갈 때는 나한테 꼭 이야기하고 가고 꼭 기도해야 돼. 알았지?"

아이가 학교 가고 학원 간 사이 남편과 둘이서 놀러 다니는 걸 아이가 알고 있어서 이런 말을 하나 싶었다.


"그럼, 엄마 아빠 둘이 다닐 때 엄마가 꼭 기도하지. 그런데 이런 불안한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일까? 아닐까?"

"응,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아닐 것 같아."

"맞아,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안한 마음을 주시는 분이 아니시지. 사탄들이 우리 딸에게 불안한 마음과 생각을 심어주는 거야. 그러니까 다음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해 볼게!"

"그래, 좋은 생각이다.

그리고  있지 사람은 누구나 죽잖아. 언제 어떻게 죽을지 우리는 아무도 모르잖아? "

꼰대 같은 말이지만 솔직한 생각이었다.


"엄마는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있을 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해."

"어떤 생각?"

"엄마가 예전에 어떤 수녀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수녀님 말씀이 암은 축복이라고 하시는 거야?"

"암이 축복이라고?"

"응, 그때는 그 말이 이해가 안 됐는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암이라는 병이 생기고 치료하고 하는 과정이 있잖아. 바로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잖아. 그래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병이어서 그렇다고 이야기해 주신 게 기억나."

"음. 그런 의미구나?"

"응, 딸이 걱정하는 것처럼 엄마가 사고나 병으로 죽을 수도 있어.  그런데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지는 말자. "

"그렇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 이긴 해."


"맞아, 지금 이렇게 너랑 내가 같이 있잖아.  이 시간들을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지내자.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잖아.  행복한데 불안한 순간이 올까 봐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하면 얼마나 아쉬워?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들면 기도하고 우리 지금 서로 사랑하면서 살자!!"


진심이었다. 나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마흔 넘어 낳은 아이, 늦게 만난 아이, 나와 마흔 살 차이 나는 아이, 이 아이 곁에 오래오래 머물기를 소망했다.




지인 중 한 분이 유서를 일정 주기로 업데이트한다는 말씀을 해주신 것이 떠올랐다.

유서는 아니지만 나중에 아이 곁에 내가 없을 때 엄마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편지를 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곁에 없지만 나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아이에게 큰 힘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새로운 가정 안에서 충분히 안정된 다음에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써보려고 한다.

지금 내 옆에서 TV를 보며 깔깔깔 웃고 있는 너에게,

엄마의 편지를 너에게 보낸다.


사진: Unsplash의Towfiqu barbhui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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