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한 달에 한 번 휴가를 낸다. 때로는 나와 당일치기 여행으로 속초에서 바다를 보고 오기도 하고 춘천에서 닭갈비를 먹고 오기도 한다. 남편이 운전석에 앉고 나는 그 옆에 앉아 우리는 하루를 그렇게 보낸다. 남편이 늘 옆자리에 있었기에 정면으로 바라볼 일이 많지 않다.
이번에 속리산을 다녀오겠다는 남편은 전날부터 살짝 들떠있어 보였다. 남편이 부탁한 사과와 부탁하지도 않은 계란을 삶아 지퍼백에 잘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편의점을 지나가다 생각이 나서 초코볼도 하나 사서 건넸다.
딸아이와 내가 자고 있는 새벽에 남편은 출발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속리산행 버스를 타고 간다고 했다. 잘 도착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연락할 수 있을 때 연락하겠지 하며 나도 업무를 시작했다.
사진: Unsplash의Simon English
속리산에 도착해서 이제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고 카톡이 왔다. 마음속으로 안전히 다녀오기를 기도했다. 일이 바빠 정신없는 오후,남편에게 온 카톡에 사진 몇장이 와 있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났다. 작성해야 할 자료가 많아 정신이 없었고 마음도 무미건조했었는데, 남편이 보내온 3장의 사진을 보는 순간 마음이 확 일어났다. 속리산 정상에 올라 활짝 웃는 얼굴을 찍어 보냈는데 나는 왜 눈물이 났을까? 남편과 만나 결혼한 지 19년 차. 남편의 늙어버린 얼굴에 너무 낯설어서 눈물이 났다. 눈꺼풀은 쳐져있고 웃고 있지만 어색한 얼굴,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얼굴을 보는데 연민의 마음이 올라왔다.
'아, 내 남편이 나이를 먹었구나...'
남편얼굴을 정면에서 자세히 뜯어 볼일이 없었던 걸까? 내가 처음 결혼해서 뵈었던 시아버님의 얼굴이 남편에게서 보였다. 19년 동안 크고 작은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잘 살아온 남편인데 사진 속 남편 얼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 시련들이 말이다.
남편과 매번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다. 나와 성향이 많이 달라서 서운할 때도 많았다. 남편의 사진을 보며 내가 사랑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에서 미워했던 남편은 누구일까? 사랑했던 남편은 누구일까?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 낸 또 다른 존재와 나는 사랑을 하고 미워했던 것은 아닐까? 낯선 마음이 들었다. 남편은 사진 속 존재 그 자체인데 내 마음속 남편은 다른 존재 같았다.
말 그대로 남의 편,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장 가까운 사이, 남편..
이 남편을 내가 사랑하긴 한 걸까?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하기보다는 내가 정해 놓은 남편상에 맞지 않을 때 미워했고, 내 기분따라 사랑한 건 아니었을까? 같은 집에서 19년을 살았는데 참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밤 속리산에서 돌아온 남편은 아픈 다리를 끌고 깔깔 웃으며 들어왔다. 사진 속 짠한 남편은 어디 간데없었다. 다리 근육통으로 지하철 계단도 제대로 내려오지 못해서 쩔쩔맸다면서 깔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