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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퀸 Nov 26. 2020

모든 곳의 경험은 삶의 무기가 되어

스무살, 눈물 젖은 김밥을 먹다.

"학생 일당 얼마야우리가 일당 줄 테니 오늘 우리랑 놀자~“     

얼마 주실 건데요저 일당 받겠다고 나갔다가 잘리면 책임지실 거예요?

식사하러 오신 거니 맛있게 드시고 가세요~“       


고작 내 나이 스무 살, 나에게서 그런 용기가 어찌 나왔을까? 처음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닭갈비집 서빙이었다. 건대입구에서도 가장 손님이 많은 가게였다. 평일 낮에 다른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구역을 나눠서 서빙을 보고 있는데 옆쪽에 있던 아르바이트생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이다. 남자 두 명이 앉아있던 테이블 때문이라는 느낌이 들어 위치를 바꿔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부르는 남자 손님들. 속으로는 무섭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겉으로는 난 멋져 보였다.        


손님이 많고 늘 바쁜 닭갈비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일의 강도일 것이다. 돈을 번다는 것이 쉬울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무거운 철판을 3-4개씩 나르고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닭갈비를 볶아주던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월급날의 뿌듯함과 매일 새로운 손님들을 만나고 단골이 되어가는 손님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맛있게 잘 먹었다며 계산 후 남은 잔돈 몇 천 원을 앞치마 주머니에 찔러주고 가는 손님들이 있는 날은 괜히 기분이 더 좋았다.       



닭갈비집 서빙을 거쳐 전화 설문조사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지도 조사를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대대적으로 모집했는데 시급이 꽤 괜찮아서 바로 신청을 했다. 지지하는 정당과 고향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답을 받아 기입하는 일이었다. 5시간 동안 11명의 정보를 모으는 일이니 '닭갈비집 서빙보다 힘들겠어?' 하던 나의 생각은 와르르 무너졌다.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았냐며 욕으로 시작하는 사람부터 계속되는 질문에 중간에 전화를 끊는 사람까지 한 명의 정보도 제대로 얻기가 쉽지 않았다. 칸막이가 세워진 책상에서 전화기를 부여잡고 연신 굽신거리고 허둥대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 한 끼로 주는 김밥 한 줄을 먹으며 '11명을 언제 다 채우나' 걱정이 들었다가도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서러움이 복받쳐 얼마나 숨죽여 울었는지 모른다. 그때의 눈물 젖은 김밥의 맛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이제 용돈은 없어, 너 용돈은 네가 벌어서 써야 해”  수능이 끝나고 대입 합격 발표를 기다리던 어느 날 엄마의 한마디에 시작된 나의 아르바이트는 인생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닭갈비집을 시작으로 배달 전문 업체, 마트 행사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며 웃고 울었다. 아빠의 실직과 엄마의 사업 실패로 나도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 지금 돌이켜 보면 스무 살의 나는 참 열심히 살았다.       


   모든 스토리에는 악당이 필요하다.


도널드 밀러의 책 '무기가 되는 스토리'에 브랜드의 스토리에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갈등의 세 가지 요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갈등의 뿌리이자 스토리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캐릭터는 바로 '악당'이라고 한다''라는 스토리가 단단해지려면 등장하는 악당은 더욱 사악하고 비겁해져야 한다그럴수록 주인공은 더 많은 응원을 얻고 해피엔딩으로 향할 수 있다.     


스무 살부터 시작한 나의 아르바이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나의 인생에 40그 절반의 시간 동안 내가 만난 악당들과 그들로 인해 눈물 젖은 김밥을 먹던 날들이 내 삶에 그늘이 될까 봐 걱정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경험들은 나에게 단단한 무기가 되어 주었다. 20년 차 수학 강사로 자리를 잡은 지금은 예전에 비하여 편하고 좋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이 경험은 또 다른 무기가 되어 훗날의 나를 있게 할 것이다.       


모든 시간, 모든 곳에서의 경험은 분명 나에게 무기가 된다. 그 무기가 나에게 독이 될지 훌륭한 무기가 될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영화 속 악당을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알고 있다. 나만의 선택 그리고 행동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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