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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충환 Nov 23. 2021

황금마차호

 강원 동해안에는 내가 사랑하는 노란색 배가 있다.


 '황금마차호'. 배 이름답게 색깔이 샛노랑이다. 어찌 보면 참 촌스럽다. 노란색이라니..

 그런데 동해를 가로지르는 노란색 낚싯배는 푸른 바다와 묘하게 어우러져 아우라를 뿜어낸다. 나는 매번 출조 때마다 출렁이는 황금마차호에 몸을 맡긴 채 하늘을 올려다본다.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있고, 푸른 바다에는 노랑 낚싯배가 떠있다. 저 멀리 보이는 육지에는 시커먼 설악의 굴곡이 일렁거린다.


 가히 비현실 적인 풍경이다.



 황금마차호의 선장은 젊다. 나는 배가 처음 건조됐을 때부터 형님 동생 하며 선장과 우애를 쌓아왔다. 선장은 낚시를 참 좋아하고 잘한다. 낚시에 진심이다. 그는 배질을 단순 벌이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삼척 토박이로 바닷가에서 자란 선장은 어렸을 때부터 그 험한 강원도 해안가 절벽 갯바위를 뛰어다녔다고 한다. 나는 벌벌 떨며 넘어가는 갯바위를 양손에 무거운 밑밥 통과 낚싯대를 들고 풀쩍풀쩍 뛰어다니는 인간이다. 황금마차호 선장은 사랑하는 바다와 더 사랑하는 낚시를 하며 늙어가는 멋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바다는 그에게 언제나 사랑스럽지만은 않았다.  




 2020년 9월 3일.


 한반도에 초강력 태풍이 상륙했다. '마이삭'이 삼척 임원항을 강타한 새벽.

 높이 10미터가 넘는 파도가 방파제를 타고 넘어와 내항으로 쏟아져 내렸다. 배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 안쪽, 내항에서부터 건너편 방파제 꼭대기까지 높이는 고개를 한껏 쳐들어야 할 정도로 아주 높다. 하지만 태풍의 바람은 상상을 초월했다. 집채만한 너울들이 넘어와 연달아 정박된 배들을 때려댔다.

 


 그날 새벽, 항구로 달려 나간 선장은 속수무책이었다. 황금마차호를 밧줄로 계선주(정박을 위해 항구에 박아 놓은 철제 말뚝)에 단단히 묶어 놨지만 불안했다. 황금마차호는 마치 손발이 묶인 채로 펀치를 마구 때려 맞는 복서와도 같았다.

 항구로 몰아치는 파도는 어판장의 각종 시설물까지 휩쓸어 버리고 있었다. 이윽고 바닷물이 가득 찬 거대한 수족관이 파도에 밀려와 황금마차호에 실렸고, 그에게 목숨과 같은 배는 결국 시커먼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선장은 그 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임원항에는 모두 13척의 배가 침몰해버렸다.  


 악몽의 밤이 지나고 해가 뜨자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한 모습을 드러냈다. 쨍쨍한 햇볕 아래 비친 항구의 모습은 전쟁터 폐허 그 자체였다. 부서진 시설물과 온갖 쓰레기, 부유물들이 항구를 가득 메웠다. 이 물속 어딘가에 황금 마차호가 있을 것이다.

 어민들과 상인, 선주, 선장들은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한숨만 나오는 상황. 그 순간, 황금마차호 선장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미쳤다!!!'


 물속은 물 위보다 더 엉망일 것이다. 온갖 그물과 배의 파편들이 물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그것들은 아직 세력이 남아있는 너울에 밀려 물속에서 선장을 위협할 것이다. 몸의 일부가 그물 일부에 엉키기라도 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다.

 

 황금마차호 선실에는 각종 장비들이 있다. 각종 낚시 도구는 물론이고, 항해에 필요한 장비들이 장착돼 있다. 하지만 무엇 보다도 중요한 것은 '좌표'였다. 선장이 오랜 시간 동안 힘겹게 찾아낸 '포인트'다. 수많은 파도와 싸워가며 일궈낸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자,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그만의 귀중한 지적 재산인 것이다.

 물속 시야도 뿌옇게 잘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거칠게 없었다. 몇 분 뒤 그는 두 손에 낚시 도구며 항해 장비들을 들고 수면 위로 올라왔다.         

 

뒤집힌 다른 배에 올라가 있는 황금마차호 선장




 성난 바다로 인해 반년 농사를 망쳐버렸다. 배는 끄집어냈지만 거의 첫 건조 수준으로 수리를 해야 할 판이었다.


 "형님... 괜찮아요?"


 암담하고 참담했을 것이다. 답답하고 힘이 빠졌으리라.. 조심스레 던진 나의 물음에 선장의 대답은 너무나도 해맑았다.


 "괜찮아! 더 멋지고 튼튼하게 만들지 뭐!"


 그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보란 듯이 재기하겠다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결국 그는 거의 혼자서 배를 완벽히 재건해 냈다. 황금마차호는 업그레이드돼서 몇 달 만에 다시 태어났다. 그 힘겨웠던 과정에는 선장 곁에 듬직한 동료가 함께했다. 그 동료는 나를 바다낚시로 이끈 사랑하는 웬수이자 선배이기도 하다. 그 선배는 한 달을 휴가 내버리고 선장을 도와 배를 다시 만들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시 재밌고, 즐겁게 바다로 나가 낚시를 하기 위해서다. 이 둘과 술을 한 잔 걸치고 있노라면 항상 처음부터 끝까지 낚시 얘기만 한다. 어떻게 하면 고기를 더 잘 잡을 수 있는지 논쟁하고 가르침을 받는다. 세상 돌아가는 속 복잡한 얘기 따윈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는다. 어찌 이보다 낚시에 진심이고 순수한 사람들이 있을까..


 바다가 내어주면 주는 만큼, 뺏어가면 앗아가는 대로 자연에 순응하며 즐겁게 사는 사람들.

 고기를 잡거나, 못 잡거나.. 큰 놈을 잡아도, 작은놈을 잡더라도 감사하며 행복해하는 사람들.


 어쩌면 잠시 왔다 가는 소풍과 같은 삶 속에서. 나는 내일도 황금마차호와 함께 멋진 인생의 항해를 하려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hwMQ8denI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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