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마음, 공개
안녕하세요.
김가든입니다.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감정을 정리하려 노력하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어수선하다는 표현이 알맞을 만큼 여기저기 피어나는 마음들을 그냥 어수선한 채로 공개합니다.
여러분과 나누며 정리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가을의 단풍을 무어라 표현할까 고민이 가득한 날에,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친구가 보내온 빨간 단풍 사진을 보았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물었습니다.
가지에 매달린 이파리와 같은 붉은 이파리를 바닥에 한가득 떨군 한 그루의 단풍나무.
친구는 사랑 같다고 했습니다.
사랑이 떨어진 곳에 사랑이 물들었다며.
'가을의 절정은 무엇일까?'
10월의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걷고 있는 길에 가을이 가득했는데. 이게 진짜 가을의 절정인지 궁금했습니다. 물이 100℃에서 끓고, 0℃에서 어는 것처럼 가을에도 완전해지는 어느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을 꼭 마주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보고 있는 가을이 이미 100℃를 찍고 식어가는 99℃인지 아직 100℃를 찍으려 하는 99℃인지 알 길이 없어 하늘의 별 같은 단풍이 얄궂었습니다. 어느 나무는 여름인 양 푸릇푸릇하고, 어떤 나무는 겨울인 양 이파리가 잔뜩 바삭했습니다. 또 개중에 대부분은 그 둘이 섞여 있었습니다.
모두 빨갛거나 노란 나무들로 가득한 숲 속이 가을이라면, 저는 아직 가을의 절정을 보지 못했습니다.
넓은 공터에서는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잡기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바닥의 잔디는 어딘가 고운 모래사장 같은 색으로 변해있습니다. 잡힐 듯 말 듯 도망치는 친구는 넘어질 듯하면서도 결국 잡으려는 친구에게서 도망치기를 성공합니다. 두발로 뛰고 손을 뻗어 잡는 것 오로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체로 만들어 내는 생명의 박동이 아이들을 보며 느껴집니다. 이렇게 무언가 살아있는 것들은 나의 마음을 꿈틀거리게 만듭니다. 어느 날은 사람이 아니고도 문장이나 음악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마음에 찾아오는 날이 있습니다. 저는 그럴 때 심장이 움츠러들고 생전 안 쓰던 몸의 근육들이 움찔거리며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그 순간들에는 무엇이든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금방 또 괜찮아집니다. 그러면 한 문장도 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아이폰의 메모 기능을 자주 사용합니다. 가장 최근에 쓴 메모는 수많은 군중들 사이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이의 눈동자입니다. 단 한 사람을 찾아내려 하는 그 눈동자 어딘가 초조해 보이고 불안해 보이지만, 사랑하는 이를 발견한 순간에는 게 눈 감추듯 어디선가 반짝이는 눈동자가 나타납니다. 참 사랑스러운 순간입니다.
사랑은 어디에 있는 걸까?... 사랑은 무엇일까?...
이것이 정의되는 날 비로소 나는 누군가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어떻게든 사랑을 찾으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사랑의 정의를 찾는 여정의 끝에 가까워진 것 같다고 느끼던 어떤 날에 저는 사랑의 중심에 조금도 파고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물과 기름 사이에 존재하는 그 경계선 안에 저는 부유했습니다. 오랜 시간 그 경계선에 떠다니면서 그 안에서 사랑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과 기름이 어느 순간에 섞이는 것은 그 사이에 무언가 비밀이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사랑은 100℃나 0℃가 아니라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사이에 머무는 무수히 많은 날들 중에 어느 날 문득 사랑이 되어버린 것이죠. 무어라 정의하지 못하는 어떠한 순간에 자연스럽게. 말하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이던 두려움 안에 사랑이 있고, 용기를 내어 고백이 귓가를 울리는 진동에 사랑이 있습니다. 기타를 치는 소년과 노래를 부르는 소녀 그 사이에 사랑이 있고. 노래를 듣는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있습니다. 1과 3 사이에 2가 있는 것을 생각하기는 쉽지만 0과 1 사이에도 무한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기란 참 어렵습니다. 사랑이란 결국 너와 나, 그 사이에 무언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우리 다시 생각해봅시다. 여름과 겨울 사이에 가을은 무엇입니까?
가을의 시작과 끝 그 사이의 절정은 무엇입니까? 사랑과 같습니다.
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친구의 말처럼 가을은 사랑인가 봅니다.
떨어지는 곳에 제 것을 물들입니다.
사랑 같은 가을,
가을 같은 사랑.
또 비슷한 것을 찾아봤습니다.
가느다랗게 얇아지면서도 끝내 사라지지는 않는 달,
점점 두꺼워지면서도 완전히 동그랗지 않은 달.
점점 밝아오는 낮과 점점 어두워지는 밤
사이 안에 달이 있고 낮이 있고 밤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다시 만나는 날까지 무엇과 무엇 그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봅시다.
그 사이를 곰곰이 고민해보는 일은 분명히 재미있는 일이 될 거에요.
무언가 찾으시면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22년 11월 7일 새벽
김가든 쓰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