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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nic Cho Jun 01. 2024

군인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왜 나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의사 파업과 페미니즘 운동을 바라보며 든 자책

몇 달 전부터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의사들의 파업으로 한창 뉴스가 도배됐었다. 그리고 그보다 꽤나 오래전부터 페미니즘이란 여성 인권 운동은 심심찮게 뉴스에 다뤄졌었다. 그렇게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군대 시절을 겪으면서도, '왜 군인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할 생각을 미처 떠올리지 못했을까?'라는 자책에 잠기게 되었다. 의사 파업이나 여성 인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군대에서 군인들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는 심심치 않게 일어났지만, 그 피해자인 남성들은 왜 그 오랜 세월 동안 자신들의 기본적인 인권 보장을 요구하지 않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 이유로 아마 "국방의 의무"라는 신성한 명분 아래에서, 있는 집 자식들은 면제로 쏙 빠져나가면서도, 남은 남성들을 육군, 공군, 해군, 해병대 같은 현역이나 ROTC와 육사 같은 장교나 부사관, 혹은 병역특례나 공익 등으로 갈라치기하며 마치 본인들이 선택한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직도 공군 훈련병 시절 들었던 "너네 여기 억지로 끌려왔어? 너네가 선택해서 온 거 아니야!"라는 조교의 불호령이 귀에 맴돈다. 분명히 어쩔 수 없이 군 복무라는 의무 때문에 내린 결정이 정신 차리기도 전에 어느새 내가 원해서 고른 꼴이 되어 있었다.


이런 갈라치기가 의대 증원이나 여성 인권에도 적용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단결된 운동이 가능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예를 들어, 그냥 의대 인원을 증원한다기보다는 "생명을 살리는 의사의 본분"이라는 명분을 강조하며 인력이 부족한 외과나 흉부외과 등의 분야를 치대나 한의대와 같은 특수한 의대로 새롭게 분류하여 증원하면서, 기존의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 인기 학과의 인원은 새로운 의대로 빠져나간 인원분을 반영하여 소폭 감소시키는 등의 갈라치기를 했다면 의사들의 대응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마찬가지로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희생을 돕자"는 명분을 강조하며 만 19세 미만인 자녀 1명 당 연령에 따라 매달 15~30만 원 정도를 세금으로 여성들에게 지원하고, 그 재원 마련을 위해 무자녀인 25세~45세 여성들에게 연령에 따라 매달 30~90만 원가량의 세금을 걷는 방식으로 갈라치기를 했다면 여성들의 반응은 어땠을지 또한 궁금하다.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피지배층인 남성들에게 해온 갈라치기가 유사하게 의사들과 여성들을 갈라치는데도 적용될지 궁금하다.


혹시나 이 글이 의사 분들이나 여성 분들에게 불쾌하게 다가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적다 보니 불현듯 든다. 그런 의도는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단지 명예로워야 할 "병역의무"를 마친 한 남성으로서 주변의 누군가가 다쳐서 의병 제대를 하는 모습을 보거나 뉴스에서 군인들이 다양한 사건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여태까지 왜 그런 부당함을 바꿔보려고 시도할 생각조차 못 했는지를 고민하다가 든 생각을 유사한 맥락인 의대 증원 파업이나 여성 인권 운동에 대입해 상상해 보았을 뿐이다. 어쩌면, 남성들도 군 입대 영장에 불응하거나 예비군에 미참석하는 방식으로 군대에서 사람이 죽거나 다쳐나가는 현 상황을 바꿔보려는 행동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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