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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미국 친척들과 함께한 하와이 여행

내게 쓰는 편지(2024.07.15)

by Dominic Cho Mar 24. 2025

문득 궁금해. 이 글을 읽고 있는 넌 지금 어느 곳, 어떤 시간에 머물러 있니? 글을 쓰고 있는 난 지금 호놀룰루에서 LA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스웨덴과 미국의 친척들과 함께 이코노미 좌석에 앉아 있어. 그리고 그런 내 가슴은 하릴없이 서글퍼.


즐거웠던 하와이 여행이 끝나서가 아니야. 이번 여름휴가는 이제 막 반환점을 지나는 중이고 아직 LA와 라스베이거스 여행이 남아 있거든. 그럼에도 가슴 어딘가가 먹먹하네. 그 먹먹한 이유를 어렴풋이 느끼지만 간단한 말로 풀어내지 못해 답답해.


하와이 여행의 시작은 정말로 가슴 뛰었거든. 길거리에서 한국어를 이렇게 자주 본 것도, 듣는 것도, 말한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어. 애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한국말을 만나니 정말 반갑더라. 왜냐면 난 스웨덴 이민을 온 뒤로 의식적으로 한국 문화에 거리를 두어 왔거든. 그리고 그 즐거움이 여행의 끝자락에서 끝내 슬픔으로 다가오네. 그 원인이 단지 한국어에서 멀어지기 때문이었다면 차라리 좋았겠다.


슬픔의 근원은 내가 한국 문화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대상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두운 면도 접하게 되더라. 그렇게 애정에 증오가 섞이기 마련이라 애증이란 말이 있나 봐. 마찬가지로 오랜만에 접한 한국 문화와의 반가움은 내가 얼마나 한국을 사랑했는지를 상기시켰고 그와 함께 익숙했던 혐오감과도 자연스레 다시 마주했어.


이번 여행에서 그런 감정을 일으켰던 순간들은 사실 별 거 아니야. 온 친척들이 호텔방 하나에 둘러앉아 술과 안주를 즐기며 밤늦게까지 떠들던 순간이 그래. 뇌리를 스쳐 지나가던 어린 시절 제주도 친척 여행에선 이렇게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는 대신 어른들은 밤마다 포커나 화투를 치느라 바빴었지. 누가 이기고 누가 얼마를 더 땄는지가 뭐 그렇게 중요하셨길래, 낮에는 피곤하다고 관광버스에서 그냥 잠만 주무셨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어.


또 하와이 호텔 회원권을 판매하시는 분께서 많은 신규회원 신혼부부들과의 카톡 대화방들을 자꾸만 보여주시던 순간들도 그래. 남들이 뭘 하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남들이 한다고 나도 따라서 그걸 해야 할까? 잊고 지내던 그런 한국적인 향이 기억의 코 끝을 스칠 때마다 문득 슬퍼지더라. 그토록 염증을 느꼈던 비교와 경쟁, 몰개성이란 그림자가 너무 짙어 보여.


그러면 가슴 한 편에서 속삭여. '그게 슬플 일인가? 그냥 네가 싫은 거 아냐?' 그러면 고개를 끄덕이게 돼. 이 반복되는 증의 고리가 지겨워서 난 한국에 거리를 두었던 거구나. 그 멀어진 시공간이 불러준 망각을, 한때는 날 그 고리에서 벗어나게 도운 축복이라 느끼기도 했지만, 이 순간 그 망각은 내 뿌리가 어디인지를 상기시키는 저주 같아. 정말로 내가 슬픈 이유는, 그저 내가 슬프고 싶기 때문이구나.


나도 밝고 경쾌한 모습으로만 한국을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해외 생활을 하다 보면 K팝, K드라마, E스포츠 등을 통해 한국을 좋아하게 된 외국인들을 가끔씩 만나잖아? 그들과 함께 대화하다 보면 그 얼굴에 피어나는 즐거운 미소가 부러울 때가 종종 있어. 좋아하는 일에 대해 말하는 이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너도 알지?


그러면 난 그들의 즐거움을 망가뜨리고 싶어 져. "네가 좋아하는 한국 사회의 기저에 깔린 불공평과 부조리도 아냐?" 묻고 싶어. 하지만 그러기보단 난 그들의 미소에 답하려 억지로나마 웃어. 어둡고 씁쓸했던 기억들은 가슴속에 묻어 두자.


그렇게 지금 난 하와이에서 LA로 가는 비행기에 실려가는 중이야. 아직 내겐 흘러가는 시간이 주는 망각이 조금 더 필요한가 봐. 그러다 어느 좋은 날에, 이 서글픔도 네가 있는 그곳, 그 순간에 닿기까지 꼭 필요했었음을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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