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진지하게 들여다봅니다. “사실 우리가 키우는 모든 채소는 풀에서 시작한거야” 유하파파가 말합니다. 절로 나던 풀에서 나는 열매를 따먹다 먹을 만한 풀들을 개량해 지금의 채소와 과일들이 탄생한 거죠. 더 많은 수확물을 위해 개량을 거듭하면서 열매들은 커지고 달아지고 맛있어졌지만 작물이 스스로 가지고 있던 적응력은 약해지고 있습니다. 벌레 한 마리 들어오지 못하는 하우스에서 자라거나, 각종 살충제, 제초제와 화학비료로 자란 작물들은 스스로 가지고 있었을 각종 힘들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란 작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강하게 가지고 있던 향마저 잃어갑니다. 유하네를 방문해 바비큐를 즐기던 한 친구가 유하네 텃밭 상추에 고기를 싸먹으며 “아니 원래 상추에 향이 나는 거야? 식감이 왜 다르지?”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비닐하우스에서 곱게 자라 마트에 예쁘게 진열되어 있던 보들보들한 상추만 먹어봤던 친구에게는 유하네 상추가 낯설었나 봅니다. 풀과 경쟁하고 스스로 벌레를 쫓으며 자란 작물들은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하네는 이 힘이 사람에게도 스스로를 지킬 힘으로 전달될 거라 생각합니다.
풀이 영양분 가득한 흙으로
풀이 가득한 밭에 유하할머니가 앉습니다. 앉은 키 만큼 자란 풀 숲에 앉아 쓱쓱 풀을 뽑기 시작하십니다. 한창 풀을 매다 할머니는 “여기는 너희가 사는 곳 아니야. 저리 가”라고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갑작스런 목소리에 함께 풀을 매던 유하엄마가 놀라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여기 뱀이 있잖아. 새끼인 것 같은데 내가 한마디 했더니 저리로 갔어” 하십니다. 뜨거운 햇살에 풀 숲 그늘에 뱀이 쉬고 있었나 봅니다. 혹시나 유하세하에게 해가 갈까 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알아챈 뱀이 스스로 자리를 피해줍니다.
장마 사이 할머니와 유하엄마가 열심히 뽑아놓은 풀을 한쪽에 쌓아 놓습니다. 옛날에는 집마다 두엄장이 있었다고 하지요. 두엄은 풀 등을 쌓아서 썩혀 만든 거름을 말합니다. 지금은 화학비료나 포장되어 나온 퇴비를 사서 사용하기 때문에 시골에서도 두엄장을 보기 힘듭니다. 유하네는 밭에서 나온 각종 풀을 비롯해 깻대, 고춧대 등 작물 부산물들을 모아 한쪽에 쌓아 썩힙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비료나 퇴비가 아니라 스스로 만든 건강한 퇴비, 두엄을 작물들에게 주려고 하는 거죠.
올 봄 마을 도정공장에서 나온 왕겨에 각종 풀과 유하네가 먹고 남은 음식물 찌꺼기 등을 넣어 썩힌 두엄을 밭에 뿌렸습니다. 두엄을 뒤집으니 어른 엄지손가락보다도 큰 굼벵이들이 잔뜩 나오기도 했습니다. 유하는 닭밥으로 준다며 얼른 통에 주어 담았지요. 옆에 있던 세하가 “여기도 궁뎅이가 있어”라고 해 한바탕 크게 웃기도 했습니다. “이거 잡아서 팔면 돈 되겠는데” 요즘 사슴벌레며 장수풍뎅이 굼벵이를 작은 상자에 넣어 판다는 얘기에 유하파파가 웃으며 농담을 합니다. 실제 며칠 후 유하는 학교에서 자연과학시간에 받았다며 굼벵이를 상자에 담아오기도 했으니 영 농은 아니었습니다. 두엄을 뒤집으니 질긴 풀들은 사라지고 포슬포슬 흙이 나왔습니다. 풀이 썩어 다른 식물들에 꼭 필요한 영양분을 가득 가진 흙이 된 것입니다. 두엄장에는 유하네가 먹고 버린 단호박씨가 넝쿨을 만들고 다시 단호박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두엄 한 수레를 퍼 넣고 심은 맷돌 호박도 줄기 줄기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겠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영양분을 가득 가진...” 풀 속에 사는 유하네는 어느새 개똥 철학가가 되기도 합니다.
유하네는 오늘도 풀 숲을 헤치고, 잘 자란 풀을 베어 눕히며 들깨를 심으러 나섭니다. 풀들이 스스로 만들어 낼 유기물과 영양분이 가득한 땅을 기다리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