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원자
삶의 의욕이 없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즈음 호랑이를 데려왔다. 우린 꽤 많이 다퉜다.
호랑이도 그랬겠지만, 나 역시 고양이와 사는 건 처음이라 서로 맞출 게 많았다.
그래도 우린 그렇게 맞춰가며 대부분의 하루를 같이 보냈다.
그걸로 충분했다.
2) 사라진 불면증
언제부턴가 잠을 자기 위해 불을 끄고 누우면 불안했다.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는 밤이 이어졌다.
그 어둠 속에 홀로 있다는 무서움, 그 무서움이 나를 휘감았다.
호랑이를 데려온 첫날, 같은 공간에 나 말고 다른 생명이 있다는 게 낯설었다.
그 조그만 녀석은 내 곁에서 곧 잠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에 안도를 느끼고 그 조그만 숨소리를 들으며
오랜만에 나 역시 단잠에 빠져들었다.
3) 꼭 안은 케이지
어느 날엔가 사료를 다 남겼다. 방귀가 잦아지고 항문이 발갛게 부어올랐다.
병원 세 군데를 며칠에 걸쳐 돌아다녔다.
마지막 세 번째 병원에서 처방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케이지 안에 든 호랑이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잘못도 아닌데.
병원을 돌아다니며 걱정하고 별일 아니길 바랐던 그 간절한 마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것일까? 케이지 안의 호랑이 몸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4) 눈빛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어김없이 돌아보면 호랑이가 있다.
이 시선은 모두 이유가 있다.
밥그릇이 비어있을 때, 흐르는 물을 마시고 싶을 때, 루틴으로 자리 잡힌 간식시간인데
꿈쩍도 하지 않는 나를 바라보는 그런 시선들.
여기서 살짝 다른 시선을 얹어보고 싶다.
시선이 느껴져 쳐다본 곳엔 언제나 호랑이가 있다.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가끔은 부동자세를 유지한 채로 내가 자신을 쳐다볼 때까지 바라보고 있다.
내가 그 눈빛을 단순하게 무엇을 원해서라고 단정 짓기엔 너무한 오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고양이들 그리고 호랑이만이 알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이다.
그래서 가끔 그 알 수 없음에 , 어떤 단어도 가져올 수 없음에 아득해지곤 한다.
우린 아마 영원히 모를 테지.
한 가지가 더 있다.
자신을 만져달라고 발라당 누워서 손길을 기다릴 때의 눈빛, 그 눈빛이 원하는 대로 쓰다듬어주면
기분 좋은 골골송을 들려주며 다시 한번 따뜻한 눈빛을 보낸다.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니 물그릇 앞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1) 말 많은 무릎냥
호랑이는 무뚝뚝하고 여간해선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다.
호두는 달랐다. 중성화 수술 때 병원에서 사이렌을 울렸던 것처럼.
유독 말이 많은 편이다.
호두야~ 부르면 냐하앙~ 하고 대답한다.
밥 줄까? 간식 줄까? 통통닭? 모든 물음에 냐하앙 하고 대답하고 달려온다.
또 한 가지. 내 품과 무릎을 좋아한다.
책상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꼭 키보드를 치고 있는 양팔 사이에 들어와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누워서
몇 분씩 있다가 가기도 하고, 소파에 앉아 있으면 무릎에 올라와서 몸을 맡긴 채 잠을 청하기도 한다.
2) 위로
- 모기전쟁
가을로 넘어가는 언젠가의 여름밤. 잠 잘 준비를 마쳤어.
호랑이도 호두도 모두 침대에 모여 다 같이 자려고 누웠는데, 모기들이 활동을 하기 시작했어.
결국 새벽 5시 무렵까지 모기를 잡느라 잠을 자지 못했고 극도로 예민한 상태가 되었지.
동이 트는걸 눈으로 확인하고 침대로 오르는 순간 호랑이가 본능적으로 내 발을 할퀴었고
내 발은 피로 낭자했어. 나는 눈이 뒤집혀 호랑이를 내쫓았고 호두 역시 덩달아 뛰쳐나갔어.
순간적으로 너무 서러운 거야. 멍 때리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데 호두가 다가와서는 내 다리에
몸을 비비고 내 품에 바짝 들어와서 떨어지지 않는 거야.
이불속까지 따라온 호두가 그날은 끝까지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어.
- 코로나
코로나 시기였고 코로나에 덜컥 걸려버렸어.
역시나 이때의 기분도 아픈데 서럽고 뭔가 세상에 혼자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어.
머리가 어지러워서 소파에 앉아 있는데 호두가 무릎에 올라와 몸을 비비는 거야.
또 이렇게 위로받았어.
사실 이 행복신경회로 화를 준비하면서 행복한 기억들을 꺼내보았는데
사건별로 선명하게 규정지을 수 있는 사고신경회로 편과 달라서 혼란스럽기도 했다.
행복한 순간들이 더 형체를 지니고 선명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예상을 빗나갔다.
오히려 그 사고들이 없던 모든 순간들이 사실은 행복했던 순간이었음을 이제와 알게 된다.
지금도 한 녀석은 소파에 누워서 자고 있고 한 녀석은 화장실 문턱을 베개 삼아 자고 있다.
깨자마자 아마 나에게 간식을 달라는 눈빛을 보낼게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