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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별 Jun 25. 2021

입사도 퇴사도 없는 15년 차 프리랜서 이야기

순간의 선택들이 쌓여 프리랜서가 되었다.

저는 15년 차 프리랜서입니다. 제2외국어 전공자고 2학년 마치고 어학연수 1년 다녀온 후 복학을 하면서 시작한 일이 직업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에게서 빨리 독립하고 싶었고 '독립=돈 독립'이라고 생각을 하다 '이제 정말 돈을 벌어야겠다'라는 상황이 왔던 거죠. 뭔가 돈을 번다는 건 우아하고 낭만적이고 멋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것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부모님께 짐이 되지 말고 오히려 짐을 덜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절실했습니다. 몸은 이미 대학생이 되며 독립을 했으니 다음 단계는 돈 독립이었던 거죠.



사는 곳에 연고가 없고, 이제 막 복학한 23살, 콤플렉스가 가득했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프리랜서의 삶이란


제 머리를 빠르게 풀가동해야 했고 선택지는 별로 없었습니다. 완벽주의자에 결정 장애가 있는 저는 사실 그때도 자신은 없었어요. 저는 영어 전공해서 영문학 교수가 되는 것이 초등학생 때부터 꿈이어서 고1 때 가고 싶은 학교와 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능 치고 나니 영어과 갈 정도는 아니었고 차선으로 지금 전공으로 입학하면서 복수 전공으로 영어를 하고 미국 유학을 가는 걸로 목표를 바꿨습니다. 전공에 대한 건 아무것도 모르고 입학을 했고 막상 가 보니 동기 중 1/3은 교포, 1/3은 외고 출신.. 하.. 나름 고등학교 때는 공부 좀 한다는 부심은 저 멀리로.. 1학년 1학기에 기말고사 안 보러 간다고 버티다 친구들한테 끌려가서 시험 보질 않나, 반수 하고 싶다고 하질 않나.. 저 그때 정말 철이 없었던 것 같네요..



한 2년 그렇게 다니다 보니까 이러다가는 졸업할 때까지 바닥 깔아주는 생활할 것 같아서 조르고 졸라 어학연수 딱 9개월 갔다 왔는데 그때 제가 뭘 알았을까요? 정말 이제 겨우 말을 떼는 수준이었던 말이죠. 근데 발등에 불 떨어지니까 민망하고 부끄럽고 그런 거 없었습니다. 다행히 과 홈페이지에 알바 구인 구직란이 있었고 제 경력을 써서 올릴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그때 처음 연락해 주신 그분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제2외국어 시장이 작을 때여서 아마 잘 모르셨으니 저에게 연락을 주셨지 싶습니다.




땀인지 눈물인지 뭔가 뚝뚝 흐르던 시절_알고 보니 꿀이었나?




그렇게 시작한 일은 정말 소중하고 감사하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에서 한 시간 이상 대중교통을 타고 가야 하는 곳이었을 때도 그 정도는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이동거리 30분만 넘어도 힘들다 하는데 말이죠. 제대로 아는 게 없는데 제 지식을 나눠줘야 하니 준비를 두 배, 세 배로 했습니다. 모르는 게 들통나서 쪽팔리기는 정말 싫었으니까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일을 시작하고 한 5년 정도까지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았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모르는 거 하나 알아 놓으면 또 새로운 모르는 것이 나타나고 그렇게 매일 도장 깨기 하듯이 모르는 것들을 알아내려 애쓴 시간이었습니다.



일적인 부분 말고도 초반에는 속상한 일들도 많았습니다.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일을 주거나 돈을 주면서 유세를 떠는 사람들도 많았고 아주 우아하게 인신공격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이 일을 해야 하나?',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하며 혼자 울었던 날도 많았습니다. 지금도 울컥하네요. 흔히들 20대가 꽃 피는 시기라고들 하면서 다들 돌아가고 싶어 하는데 저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던 시기입니다. 온실 속에 있던 화초에 갑자기 이제 그 온실이 사라지고 더 이상 없으니 앞으로 들꽃으로 살아가라고 하는 것 같은.. 그렇게 살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7가지 ㄲ 중 무엇을 갖고 계시나요?





'7가지 ㄲ'에 대해 아시나요? 한참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 동기 언니가 해 준 이야기인데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같은 것입니다. 깡, 꼴(태도), 꾼(전문성), 꿈, 끈(인맥), 끼(기운), 꾀(지식) 입니다. 이 7가지 듣고 노트에 적어서 나에게 해당되는 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좋겠다 했는데 다 지나서 오늘 20대를 돌아보니 이 7가지로 제가 버틴 것 같습니다.



20대는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없애고 싶지도 않은 날들입니다. 다행히 저는 모든 걸 내어주고 챙긴 언어 능력으로 꾀(지식)를 가질 수 있었고, 부족한 게 나타날 때마다 어떻게든 채워서 이 분야에서 꾼(전문성)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힘들 때는 위기를 기회로 삼는 끼(기운)를 발휘하고, 깡으로 버티면서도 갑질 하는 상대에게 적절한 꼴(태도)을 부렸습니다. (되도록 매너 있게 굴러했으나 선을 넘을 때는 기꺼이 받아쳐 주는 똘끼를 발휘했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시기에 제 주변에 저를 지켜준 끈(인맥)이 있었습니다. 사실 앞의 6가지는 다 제 자랑이지만 사실 저는 정말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인데 끈이 정말 제 자랑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렵고 힘들고 심지어 위험한 상황들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지나고 보니 내가 정말 어떻게 그 시절을 살았나 싶은데 그건 다 제 사람들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20대를 지나 30대인 지금 이제야 저는 제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아마 저랑 같이 울고 웃고 힘들 때 안아주고 때로는 쓴소리도 해 주고, 저를 믿어주고 맡겨주었던 그런 고마운 사람들이 있어서 20대를 잘 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쓰다 보니 엄청 길어졌네요. 오늘은 나름 제가 프리랜서가 된 스토리를 풀어봤습니다. 다음에 이어서 프리랜서로서의 생활, 경력 단절과 전환에 대한 고민 그리고 프리랜서로 꿈꾸는 저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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