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의 명암
프리랜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벌써 몇 달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겠지만 사실 첫 글을 쓰고 나서 다시 글 쓸 엄두가 나지 않아 한동안 시간을 보냈습니다. 첫 번째 글을 쓰면서 묻어두었던 예전의 저를 꺼내보고 후폭풍이 왔었습니다. 그러고 한참 더웠던 여름을 지나 이제 가을이 오면서 찬바람이 좀 불어오니 다시 저를 꺼내 볼 에너지가 충전된 듯도 합니다.
저도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고 있어요. 출산과 육아를 통해 시간과 몸이 자유롭지 못하고 아이가 자는 시간에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디지털 노마드에 대해 관심이 생기고 꿈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미 노마드 생활 15년 차입니다. 프리랜서가 아날로그 노마드 아닐까요? 온라인 세상이 아니라 오프라인, 현실에서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때로는 집이 일터가 되기도 하고 출퇴근 시간도 계속 바뀌고요. 예전에는 노마드라는 단어 대신 프리랜서라는 표현을 했지만 어찌 보면 프리랜서가 아날로그 노마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프리랜서가 되면 무엇이 제일 좋을까요?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다?
노력하는 만큼 수익을 낼 수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반은 맞고 반은 아닌 것 같아요.
스페인어 수업을 시작하고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주제로 스페인어를 나눴습니다. 수업 시간은 주로 저녁이나 밤 시간 그리고 주말이었습니다. 수업을 받는 사람들이 가능한 시간에 제가 맞춰줘야 했으니까요. 흔히들 프리랜서가 되면 아침저녁 출퇴근 지옥을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실 텐데요, 저도 출퇴근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수업을 하러 나가는 시간이 대부분 직장인들 퇴근 시간이었거든요. 차들로 꽉 막힌 도로 위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 안에 있다 보면 수업하러 가기 전에 땀샤워를 하는 날도 많았어요. 출근 시간에 사람에 치여 땀에 쩔다 보면 출근도 전에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막 들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혹시라도 땀 냄새 날까 가방에 데오드란트랑 향수 챙겨 넣거나 10-15분 정도 더 일찍 나와서 땀 다 식히고 수업하러 들어가기도 하고요.
출퇴근 시간이 다르니 모임이 있을 때면 시간 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보통 직장인 친구들이 퇴근하는 시간, 근무가 없는 주말이나 공휴일이 제가 일하는 시간이었으니까요. 물론, 모든 퇴근 후 시간과 주말, 공휴일에 일하는 건 아니라 시간을 맞추면 맞출 수 있지만 선택지가 한정적인 경우가 많았죠.
결혼을 하고 나니 가족 모임이라도 있으면 시간 맞추는 게 더 곤란했습니다. 시댁 모임에 참석하게 되면 제시간을 조정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시간 변경을 하는 거지만 입장을 바꿔서 학생이 사정이 있어 시간을 자꾸 변경하면 저도 반갑지 않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제 쪽에서 사정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데 시댁 모임은.. 그쪽을 제 상황에 맞게 바꾸는 게 더 불편해서.. 결국 제 수업을 변경하게 되더라고요.
직장인 신랑이 프리랜서인 제가 일정 조정하는 것이 더 수월하다고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조정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서.. 제가 많이 속상했더랬죠. 신랑이 제 일을 무시하는 건 아닌데도 은연중에 '프리랜서 = 시간 활용이 자유롭다, 직장인 = 시간이 고정되어 있다'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몇 년 간의 투쟁(?) 끝에 지금은 서로 시간 조정하는 균형을 맞춰가고 있긴 하지만 결국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제가 일을 많이 줄이게 되었습니다. 주 양육자가 제가 되고 보니 아이에게 할애할 시간을 제시간에서부터 꺼내 쓰게 되더라고요.
프리랜서는 노력하는 만큼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직장인의 경우 근무 시간과 연봉에 있어서 한계가 있지만 프리랜서는 일을 맡는 만큼 소득을 얻을 수 있고, 몸값? 연봉? 도 내가 정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렇지만 이건 제가 한 달에 120시간 수업을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15년 동안 한 번도 120시간 이상 일해 본 적이 없어요.
저의 수업 시간은 보통 하루 최소 1시간 30분, 최대 4시간 30분을 넘지 않습니다. 정말 수업이 많을 경우 6시간을 한 날도 있지만 시험 기간이거나 정말 특별한 경우, 분기에 1번 있을까 말까 합니다. 수업이 없는 날도 많습니다. 굳이 평균을 따져 보면.. 주당 15시간 정도의 수업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럼 한 달에 60시간 정도겠네요. 대기업 신입 사원 월평균보다 수익이 낮았습니다.
제가 수업이 가능한 시간을 풀로 다 채우면 한 달에 천만 원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 그렇게 하면 한 달도 못하고 병원 신세 질 것 같습니다. 100시간 넘게 했을 때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가 아마 주중에 수업 다 하고 주말에 5번 수업했을 때였는데 그때 집에 오면 12시 넘고 씻고 정리하고 쓰러지듯 1시에 잠들면 8-9시에 눈뜨고 그럼 비몽사몽 오전이 가고 점심 먹고 나면 수업 준비하고 3, 4시면 집을 나섭니다. 그럼 다시 12시에 집에 들어오는 거예요.. 몇 번만 하면 몸이 망가지는 게 금방 느껴집니다.
이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수업 단가를 올려서 적게 일하고 돈을 많이 받을 것인가. 수업 수를 줄여서 적게 일하고 워 라벨을 맞출까..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수업 단가를 올리는 것도 한계가 있거든요. 시장가라는 게 여기도 형성되어 있으니 무작정 올릴 수 없습니다. 또 단가를 올리려면 그만큼 난이도가 높은 수업을 해야 하고 그러면 준비할 것이 많아지죠. 결국 수업 외 시간에 제가 투자해야 할 시간이 늘어나는 셈입니다.
그러니 적정선에서 수업 시간의 한계점을 정해야 합니다. 이게 정말 쉽지 않았어요. '하는 만큼 돈이 된다.'라는 걸 아는데 그걸 내려놓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었어요. 단기간 반짝하고 건강을 망치거나 수업의 질을 떨어뜨리고 싶진 않았어요. 적당히 놀고 적당히 벌자. 그래서 제 연봉은 15년 내내 대기입 신입 사원 초봉이 안 되는 수준에서 왔다 갔다 한 것 같아요.
그렇게 현타 맞은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