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일기에는 부크월드의 부고기사 이야기가 있었다. 경제나 시사 관련 지식을 좀 넓혀야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신문을 읽고 인상 깊었던 내용들을 메모해 두거나 적어두곤 했었는데, 그날 미국 유명 칼럼니스트였던 아트 부크월드의 동영상 부고기사가 났던 모양이다.
그는 본인이 직접 미리 제작한 동영상 비디오에 출연하여 자신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기사의 제목은 동영상 부고의 첫 멘트였는데 '안녕하세요. 아트 부크월드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사망했습니다.'였다.
그는 저명한 작가였으며 그의 칼럼은 전 세계 500여 개 신문에 실렸다. 1982년에는 논평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병이 악화되어 신장투석을 해야 함에도 투석을 거부하고 호스피스 시설에 들어갔을 때에도 그는 "여기에선 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준다. 다이어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밀크셰이크, 햄버거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내 생에 최고의 시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한 우스갯소리와 종종 그 안에 담아 표현하는 풍자, 워싱턴 정가를 소재로 하여 쓴 해학이 넘치는 글들은 꽤 많다. 또한 다소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글쓰기에 이른 과정, 노년기에 이르러 죽음을 맞이하는 그의 태도도 인상 깊은 부분이 많았다.
그는 생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삶의 의미를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고 한다. '글쎄 잘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 아마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들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닐까요?'
서른이 되던 해나를 아끼던 회사 상사들이 결혼에 대한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취업이 늦어 겨우 직장생활 3년 차였다. 서른은 결혼하기에 그리 늦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열 살 넘는 터울의 상사들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긴 했다. 그들이 청년이던 시절에 서른은, 아이 둘은 거뜬히 낳고 키울 나이이긴 했으니. 게다가 아침마다 고급 커피잔에 감잎차를 타서 본부장님의 책상 위에 놓아두던 때니 지금과는 아주 다른 시절이었고, 그래서 그런 잔소리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한 2-3년 잔소리를 듣다 보니뭔가 색다른 대답을 해보고 싶었다.'아우, 잔소리 좀 그만하세요. 아이고, 어련히 알아서 하겠어요?'로 대응하는 것은 너무 단조롭고 지겨웠다. 그들이 결혼에 대한 잔소리를 애정이나 관심의 표현, 가끔은 빈 공기를 채우기 위한 농담의 소재로 쓴다면, 나도 결혼을 재미로, 웃음의 소재로 쓸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짜 청첩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는 그림판밖에 없어서, 다정한모습의 비광과 유명인의 청첩장 문구를 가져다 붙여 조악하게 만들었다. 포토샵은 쓰는 법도 몰랐을뿐더러 더 웃기기 위해선 보다 저퀄리티의 청첩장이 필요했기에 만족스러웠다. 웃음을 주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주 1)에 내 마음을 담았다. '별첨 1 일시, 별첨 2 지도, 별첨은 차후에 제공할 예정이오니 재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 1)이 포인트였던 청첩짱 (진한 글씨로 표시함)
나는 진지한 얼굴로 팀장님께 청첩장을 드렸다. 그의 얼굴에 퍼지는 놀라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청첩장을 열어보시더니 '니가 인자 미쳤구나!' 하며 크게 웃으셨다. 그 상황과 분위기는 표현할 수가 없다. 글로 표현할 방법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뿐이다. 팀장님은 기막혀하시며, 나는 성공에 도취되어 둘 다 한참 웃었다.
해학은 '익살스럽고도 품위가 있는 말이나 행동'으로, 네이버 지식백과에서는'권위나 고압적인 분위기, 세속적인 가치관들을 희극적인 상황 유발을 통해 부정해 보는 것으로서,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서민들의 욕망이 담겨 있다'라고 설명한다. 그래, 나는 '세속적인 가치관을 희극적인 상황 유발을 통해 부정해 보는 것으로,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말단 직원의 욕망을 담아 가짜 청첩장을 만든 것이었다.
가짜 청첩장은 유머와 해학을 잘 버무려 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이다. 나이가 들수록 참 어렵게 느껴지긴 하지만, 곤란한 상황에서도 날카로운 비수를 꽂는 대답보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를 구하며 유머를 써 표현할 수 있기를.부크 월드처럼 노년이 되어서도 유머를 잃지 않을 수 있기를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