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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징느 Feb 06. 2024

[일기 읽는 시간] 왜 나야?

2009년 10월 7일의 일기

2009년10월7일

 그날의 일기에는 ‘아서 애시’라는 테니스 선수의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그는 버지니아 주 출신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프로 테니스 선수로 총 3개의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따내는 등 뛰어난 실력으로 미국 테니스 역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또한 은퇴 이후 사회 운동가로서도 활발히 활동하였으나 심장 수술 시 수혈받은 피에 의해 HIV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한 인터뷰 기자가 그에게 ‘대체 왜 그에게 그런 일이 생겼느냐고 원망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가 답했다.

테니스 대회 우승 시 나는 ‘왜 나야?’라고 묻지 않았다.
에이즈 감염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즈음 나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준비하던 시험에 떨어져서 자존감이 바닥을 친 상태였고(일기를 한참 읽다 보면 영화에, 미드에, 책에, 집구석 문화평론가가 아닐까 싶을 정도라 시험에 떨어진 걸 아쉬워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을 정도이지만, 그때는 몰랐다), 명절에 시골다녀온 후 친지들의 애정 어린 관심에 시달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 내 신세를 한탄하며 화가 나는 일을 적어 보기도 하고, 삶에 미련이 없다며 사춘기 소녀 같은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그날은 신림동 GS서점(아마 그 시절 그런 이름의 서점이 있었나 보다)에서 아무 책이나 집어 실컷 읽고, 오후에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던 모양이다. 과외 학생의 문제집에서 ‘아서 애시’의 이야기를 보았다.


 나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좋은 대학에 붙었을 때는 ‘왜 나야?’라고 묻지 않았다. 중학교 때 전학을 갔음에도 텃새 없이  금방 좋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을 때도 ‘왜 나야?’라고 묻지 않았다. 모든 감사한 순간에는 그 일들을 ‘그냥’ 받아놓고, 원치 않는 순간을 겪게 될 때만 ‘왜 나야?’라고 묻는 것은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이다. 내가 쓴 신세 한탄의 대부분은 후자의 ‘왜 나야?’였다.


 그 이후로 아서 애시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더 이상 ‘왜 나야?’ 따위의 한탄을 하지 않았다, 로 마무리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15년이 흐른 지금도 ‘왜 나야?’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사실 일기를 다시 읽기 전까지는 아서 애시가 누군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주 있지는 않다. 이제는 ‘그냥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났구나’라고 할 줄 안다. 감사한 순간은 '감사하다'라고 받을 줄 안다.

기억하지 못해도 반복해서 조금씩 쌓아온 저런 순간들이 어딘가에 남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2009년 10월 6일 일기에 쓰여있던 편지 글을 옮겨 적어 본다. 15년 전에 쓴 것이라 좀 창피하지만, 지금의 내가 받아봐도 될 만한 메모라 적는다.

 어린 나에게 해 줄 말이 있을 줄로만 알았지, 어린 나로부터 들을 말이 있을 줄은 몰랐네.

2009년10월6일

"언젠가 또 어제와 같이 절망스러운 기분이 들 때가 올 것이다. 죽고 싶다고 또 되뇔 수도 있겠지. 미련도 기대할 만한 즐거움도 없다고. 그런 시기가 지난 지금 말하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특별히 좋은 일이 생긴 것도 아니고, 즐거움이 생길 일도 없다. 그저 그때는 그런 기분이 드는 거다. 그냥 느끼고 흘려보내라. 걷고, 서점에 가고, 사우나에 가고, 별 일 아닌 듯 인사해라, 이맘때쯤 올 줄 알았다고. 무기력할 땐 지그 지글러의 말을 떠올려라. ‘동기는 행동을 취한 다음에 생겨난다.’  보통의 내가, 의기소침할 때의 나에게 남기는 메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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