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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다 Dec 26. 2020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3)

#애착의 대물림 #아이를 자유롭게 사랑하고 싶은 부모를 위한 빨간약

메인사진 by Volodymyr Hryshchenko on Unsplash


애착과 관련한 지난 시리즈의 3번째 글입니다. 





나의 애착 유형은?


다음 질문을 읽고 간단하게라도 답을 해 보세요. 


◐어린 시절 엄마/아빠 각각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5개의 형용사나 문구를 떠올려 보세요. 
◐각 표현을 선택하게끔 한 기억이나 경험을 떠올려 보세요.
◐부모님 중 어느 분과 더 가깝다고 느꼈나요? 그 이유는?
◐어렸을 때 언제 기분이 나빴고, 그럴 때 어떻게 했나요? 그런 행동을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부모님과 처음 떨어졌던 일을 말해주세요.
◐어렸을 때 혹은 성인이 되어 부모님이나 다른 가까운 사람을 잃은 적이 있나요?
◐현재 부모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느껴지나요?


이 내용은 <애착과 심리치료>(David J. Wallin 저)라는 책 52페이지에서 발췌한 건데요. 어른을 대상으로 애착이 어떤지 확인하는 질문지 중에서 몇 가지만 추려본 것입니다. 질문에 답할 때 머릿속으로 간단하게 떠올려도 좋고, 빈 용지에 끄적거려도 좋습니다. 하다가 감정이 너무 격해지거나 감당하기 어렵다면 멈추고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괜찮다면 또 시작하고, 아니면 스킵하고 다음 내용을 읽으셔도 됩니다. 



떠올려 보셨나요? 

이 질문에 답한 방식에 따라 안정애착과 불안정 애착이 나뉩니다. 부모와의 관계에 대해 말한 '내용'이 아니라 이를 떠올린 '방식'에 따라서 말이지요. 안정애착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답을 할 때 순조롭습니다. 기억이 잘 떠오르고, 부모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은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내용이 하나도 없는 게 아니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야기 내용에 일관성이 있습니다. 내용이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습니다.

  



불안정 애착의 사람들이 부모를 떠올리면.. 


불안정 애착의 사람들이 대답한 '방식'을 살펴볼게요.


무시형

부모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사실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데, '부모는 아주 훌륭했다', '정상적이었다'라고 묘사하는 등 기억과 사실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별로 부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들이 아이였을 때는 아마 '부모와 떨어져도 잘 울지 않는 아이'였을 것입니다. (모든 안정적인 아이 역시 초기의 적응기간만 잘 보내면 부모와 떨어져도 잘 울지 않습니다. 여기서의 설명은 부모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처럼 구는 모습을 말합니다.) 


집착형

내용을 떠올리는 동안 화가 나거나 수동적이 되거나 두려워집니다. 그 내용에 마음이 많이 빼앗기게 되는 상태입니다. 길게 말하고, 모호한 표현을 많이 씁니다. 할 말이 많습니다. 아마 아이였을 때, 이들은 부모와 떨어지든 함께 있든 잘 달래지지 않는 아이였을 것입니다.  


혼란형

상실, 학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심하게 혼란스럽습니다. 죽은 사람이 여전히 살아 있다거나, 어린 시절에 자신이 했던 어떤 생각 때문에 그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부모에 대해 칭찬만 하거나 아주 오랫동안 생각이 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부모'라는 자극은 전체를 흔들어 놓는 혼란 그 자체입니다.  




불안정 애착을 물려받고, 물려주는..


무시형

무시형으로 자란 성인은 자신을 거절하거나 자기 뜻대로만 아이를 대하려는 부모 밑에서 자랐을 경향이 높습니다. 아이는 위로가 필요할 때 부모에게 다가갔지만 거절당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거절을 당하면 처음에는 화가 납니다. 강하게 울고 소리도 쳐봅니다. 그래도 다음에 다시 시도해 보지요. 그러나 계속 거절당하면 결국에는 좌절합니다. 울지만 달래 달라는 기대가 줄어든 울음입니다. 화가 났다기보다는 무력감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소용이 없으면 결국엔 자신 역시 차가워집니다. '내가 애정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게 해야 해.'라고 무의식적으로 배우면서요. 그리고 사람보다는 세상에 더 몰두합니다. 어렸을 때는 장난감과 환경에, 커서는 일에.   



시크하고, 쿨해 보이는 이들의 속은 멋지지 않습니다. 독립적이고 대단히 일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만성적인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애를 써서 독립적이어야만, 일에 몰두해야만 자신을 받아줄 수 없었던 부모를 향한 좌절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담실에서 이런 아이들은 좀처럼 어떤 말도 꺼내지 않겠다는 완고한 태도를 보입니다. '기분이 어때?'라고 물으면 가느다란 실눈을 뜨고 침묵합니다. '1주일 동안 짜증 나는 일 있었어?' 물으면 '다 그렇죠 뭐.'라며 비스듬히 기대앉아 검은 아우라를 뿜어내기도 합니다. 너무 당연합니다. 이들이 만약 곁을 내주고, 애정을 표현하기 시작하면- 그러니까 친한 척을 하기 시작하면- 상대에게 거절당하거나 굴복당할 것이니까요. 위로가 필요할 때는 정작 함께 있어주지 않으면서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만 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게 얼마나 힘듭니까. 스스로를 대할 때도 말랑한 감정이나 소망은 느껴선 안 되는 것이 됩니다. 애착 규칙은 무의식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무시형 애착의 사람이 부모가 되면 어떨까요? 그에게 애착 규칙은 '사람을 믿지 마. 너 혼자 잘해봐. 감정은 나약한 사람이 느끼는 거야.'입니다. 이들은 아이가 아이처럼 구는 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 감정을 날것으로 드러내는 아이는 자신이 그동안 애써 피해 왔던 욕구를 드러내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표현하는 감정을 자꾸 외면하게 됩니다. 아이가 강한 감정 표현을 하면 축소시키려고 하고(우는 아이를 잘 달래주지 않고 혼을 낸다거나), 아이의 세밀한 감정을 잘 읽어내지 못합니다. 자신이 꺼 놓은 감정 캐치 스위치가 아이에게도 역시 꺼진 상태니까요. 그러면 아이들은 부모가 어렸을 적 자신의 부모에게 느꼈던 거절감을 그대로 느끼면서 자신 역시 무시형 애착의 성인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무시형 애착을 위한 빨간약


① 내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 감정적으로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 닥쳤을 때 자신에게 화가 날 수 있습니다. 강해야 하고, 잘 해내야 하고, 감정의 동요 없이 무난하게 흘러가야 하는 규칙이 깨지는 상황은 그 예전 자신이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의 갈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를 내고 나서 해야 하는 일이나 어떤 목표에 다시 집중하는 대신, 화 너머에 있었지만 필사적으로 막았던 슬픔과 초라한 것 같은 마음을 발견해주세요. 그리고 위로해 주세요. 이때, 자신을 위로할 다른 믿을 만한 사람이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약한 소리 하는 게 힘든 이들이 다른 이를 찾는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용기입니다.)


② 훈육 상황에서 무시형 애착의 사람이 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규칙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한계 설정은 아이에게 안전감을 줍니다. 그것이 문제는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훈육 시에 여기에 더해서 자녀를 통제하고, 비난하고, 감정을 무시하는 말과 행동을 덧붙일 때 일어납니다. 그러니 규칙을 잘 지키는 부분은 그대로 잘하시되 필요 없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하면 됩니다. 



집착형


집착형으로 자란 성인의 부모는 어렸을 때 아이에게 이랬다 저랬다 하는 부모였을 것입니다. 어떨 때는 공감을 잘하다가도, 또 어떨 때에는 감정조절을 못해서 아이에게 빽- 소리를 지르며 화풀이를 하고 마는 모습일 수도 있구요. 핵심은 '이랬다 저랬다'입니다. 어떨 때는 잘해주다가도 또 홱 돌아서는 상대와 사랑할 때 우리는 그 '좋은 때'의 가능성에 집착해서 전전긍긍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도 부모가 이번엔 나에게 잘 대해줄지, 나를 들볶지 않을지, 찬바람이 불지 눈치를 보게 될 것입니다. 



아이는 모든 신경을 부모에게 향하기로 합니다. 한 눈 팔다가 그 기회를 놓칠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고통스러운 건 더 증폭시켜 말하기로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세게 얘기해야 내 말이 들리는 것 같아서요. 이 아이들은 '부모가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어서 일이나 다른 것을 탐색할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아이는 자라면 어느 정도 부모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말고 자기만의 관심사를 찾아 떠납니다. 부모는 반대한다고 여길 법한 가치관이나 신념도 기웃거려 봅니다. 완전히 독립한 아이는 부모와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다른 길을 걷는다고 해서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믿습니다. 그런데, 집착형 애착의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끊임없이 이런 신호를 받습니다. "나에게서 멀어지지 마. 네가 독립해 버리면 내가 예전에 버림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그래서 아이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갈 기회를 자꾸 잃습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분노하면서도 달래 달라고 애원하는 어른, 정신적 독립을 꿈꾸지만 그러기엔 너무 나약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진 어른이 됩니다. 



예전에 제가 만났던 한 아이의 엄마는 계속해서 자녀의 성장을 방해했습니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오래전 집을 나간 뒤로 엄마는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집착했습니다. 아이의 통금 시간을 매일 체크하고, 잔소리했습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이 속상해서 토로하면 과도하게 화를 내며 친구들을 비난했습니다. 아이는 속이 시원한 것 같았지만 친구들과의 갈등을 다루고 이를 극복할 기회를 잃었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행복하려고 하는 모든 시도가 누군가를 슬프게 하는 것을 목격하고 매일 괴로워했습니다. 아마 집착형 애착의 성인이 부모가 되어 아이와 갈등을 겪는다면 이런 모습일 것입니다. 



집착형 애착을 위한 빨간약



① 당신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이미 당신 안에 있습니다. 공감할 수 있는 능력과 스스로를 달랠 수 있는 능력, 마음에 묻혀 있는 자원이요. 무력감이 주는 잠깐의 위로를 넘어서서 진짜 당신의 감정을 말해보세요. 남 탓하며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한다고 대안이 없는 것처럼 주저앉지 말고 일어나 서세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② 격한 감정이 몰려올 때 감정을 느끼고 나서는 꼭 그에 맞는 이름을 붙여 보세요. 이름을 붙이는 게 낯설다면 감정을 느끼며 몸의 어디에 무엇이 느껴지는지 언어로 표현해 보세요. 화가 날 때 명치가 뜨거워진다든지, 뒷목이 서늘해진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10초 간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감각을 스캔하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대하면서 감정이 격해질 때 이런 방식을 쓰면 아이가 내 감정의 희생물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혼란형


혼란형 애착의 사람들의 부모는 가난했거나 정신과적 질환을 앓았거나 알코올 중독이었거나 하는 경우가 많지요. 혹은 부모가 학대의 당사자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꼭 학대를 하지 않았어도, 부모가 학대의 피해자였는데 이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은 경우에도 그 자녀들은 혼란형 애착을 보일 수 있습니다. 부모가 겪은 상실이나 트라우마가 문제 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이 치유되지 않아서 안전 기지가 되어 줄 부모가 흔들릴 때 자녀는 부모라는 그릇 안에서 심한 불안정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혼란형 애착의 사람에게 부모는 불안의 원천이자 간절한 무언가입니다. 부모는 무섭고 가혹한 사람이었다가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 같은 사람이 됩니다. 아이는 부모 밑에서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키우게 되겠지요. 자신이 아닌 듯한 느낌으로 무력하게 살아가는 분열된 자신 하나, 그리고 아이 같은 부모를 돌보기 위해 가혹한 부모 역할을 하는 자신 하나. 저는 이렇게 쪼개진 마음을 갖고 분투하며 살아온 한 사람을 압니다. 그는 가혹한 체벌과 욕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오직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집안의 모든 걸 쏟아부으며 혹독하게 훈육한 부모 아래에서 자란 그. 그는 어느 하나 의미 있는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괜찮은 상대인가 싶어 다가가면 버거운 삶을 살고 있어서 그에게 사랑을 줄 여유가 없거나, 예전 부모처럼 가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누군가와 안정된 관계를 맺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면 참 존경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맺고 계신 그 관계가 좀 더 단단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혼란형 애착을 위한 빨간약


① 받았던 상처를 치료하세요. 홀로 예전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이 어렵지만 이분들에게는 특히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자신이 믿을 수 있는 누군가와 계속되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참 도움이 됩니다. 상처를 이야기하고, 압도당할 것 같은 감정을 함께 견디고,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는 상대와 말입니다. 정신과 의사든, 상담사든, 종교지도자, 멘토, 친구 그 누구라도 좋습니다. 


② 집착형 애착의 사람들을 위한 빨간약인 '감정에 이름 붙이기', '감정을 몸의 감각으로 느껴보기'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예요. 특히, 몸의 감각에 이름 붙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몸을 돌보는 일의 시작이니까요. 





불안정 애착의 사람들에게 한 줄 위로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들을 썼습니다. 한 분에게라도 잘 가 닿았으면 합니다. 다음 글은 이 시리즈의 마지막인 '성찰하는 마음'에 대해서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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