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혜다] #아이 악몽 다루기 #괴물을 무서워하는 아이
엄마, 꿈에 막대기가 나왔는데 그게 마녀였어요!
어느 날 밤, 첫째 아이가 갑자기 어제 꾼 꿈이 생각났는지 다급하게 저를 부르며 말했습니다.
"막대기가 마녀로 변했어? 어떻게 생긴 마녀였는데?"
"네, 손도 있고, 얼굴도 있고."
"으응. 그 마녀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모르겠어요. 근데 그냥 무서웠어요."
"꿈에 다른 건 안 나오고 마녀만 생각나?"
"네."
아이에게 질문을 해서 꿈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실마리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퍼뜩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로 마녀→고약한 여자→고약한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아이에게 확인해 볼 요량으로 슬쩍 힌트를 던졌지요.
"그거 엄마 마녀네. 마녀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음.. 장난감 많이 사주세요?"
아예 핸드폰 메모장을 켜고 아이에게 마녀에게 원하는 걸 모두 다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제가 잘 전달해 주겠다면서요.
장난감 많이 사주세요.
단 거 먹어도 배 안 아프게 해 주세요.
밥 먹기 전에 단 거 먹게 해 주세요.
장난감 1000개 더 사주세요.
집 5층이 되게 해 주세요. 계단이 있으면 다 합치면 넓겠죠. 뛰어놀 수 있으니까.
사탕 많이 사주세요.
내 꿈에 나타나지 말아라!
장난감은 많으면 좋아요. 없다면 심심하니까. 심심하면 엄청 괴로워요. 지금 집에 있는 건 쓸모가 없어요. 새로운 걸 경험해 보고 싶어요.
아! 근데 무서운 건 빼고요. (뭐가 무서운데?) 다이빙, 스케이트 보드. 서핑보드.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주세요.
그 당시 아이는 여름 방학이 끝나고 유치원 등원을 하려다가 못하고 집에서만 지냈습니다.
같은 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은 아이가 생기고, 동네 학교와 학원 근방에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제가 무서워서 유치원에 안 보냈거든요. 한 달째 집에서만 계속 머물렀죠. 엄마인 저도 다시 시작된 가정 보육에 힘이 부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때였습니다. 둘째 낳고 쉬던 일을 다시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지요.
아이는 (1) 먹는 것을 많이 통제당한다, (2) 집에만 있는 것이 심심하고 재미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2)는 당장 크게 변화시킬 수 없기에 (1)의 욕구를 채워주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사탕과 과자류를 평소보다 한 두 번 정도 더 허락해 주면서("이렇게 단 걸 좋아하니 밥을 안 먹지"나 "그만 먹어, 밥 못 먹겠다"는 얘기는 꾹 참는 게 포인트) 삼시세끼 메뉴로 뭘 먹이고 있었는지 되짚어 보았습니다. 신경을 덜 썼더라구요. 미안하다, 엄마도 살아야지- 혼잣말하면서 아이에게 좋아하는 반찬 좀 읊어보라 했습니다. 먹는 욕구를 며칠간 기분 좋게 채워주고 난 뒤, 아이는 마녀 꿈 얘긴 안 합니다.
샤론 무어의 <좋은 잠 처방전>에 따르면 만 2-5세 사이 아이들 중 1/4 정도는 3개월이 넘는 만성적 악몽을 꾼다고 합니다. 1/4이면 꽤 많은 비율입니다. 아이가 무서운 꿈을 꾸기 시작하고, 괴물, 마녀, 유령, 상상 속 두려운 존재들에 대해 '실제로' 공포를 느낄 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몇 가지를 말하려고 합니다.
아이의 악몽이 지속적인 불안감 때문인지, 낮 시간 동안의 활동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는 것 때문인지 구별합니다.
● 일정이 너무 많을 때
● 낯선 일들을 겪을 때
● 핸드폰, TV, 태블릿 같은 전자기기를 많이 볼 때
● TV 속 무서운 이야기나 이미지에 노출됐을 때
대처: 이것들을 줄여줍니다.
대처: 불안감을 낮추도록 도와줍니다.
둘째가 태어난 뒤, 첫째의 일상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루에 8번씩 엄마 젖을 먹는 동생이라는 녀석 때문에 엄마랑 같이 책도 못 읽고, 밥도 따로 먹을 때가 있고, 뭣보다 '쉿. 조용히 해. 동생 깨.'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겁니다. 그즈음은 아이가 죽음과 하늘나라, 귀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횟수가 많아졌던 걸로 보아 발달적으로 상상력이 풍부해질 때이기도 했습니다.
첫째는 동생을 괴롭히거나 엄마에게 땡깡 부리는 대신 마음속에 괴물을 하나 두기 시작했습니다. 이 괴물은 동생을 미워하고, 엄마를 독차지하고 싶어 합니다. 집에서 마음껏 소리 지르고 아기처럼 엄마 옆에 찰싹 붙어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합니다.
괴물이 처음에는 작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커져서 꿈에도 나오고, 낮에도 불쑥불쑥 생각 속에 끼어듭니다.
이 괴물이 너무 무섭습니다.
저는 첫째에게 괴물을 스케치북에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꿈에 나온 것, 지금 상상하는 것 전부요.
처음에는 괴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서워서 못 그리겠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되도록 자세하게 그리도록 격려해 주세요.
아이는 실체가 없는 괴물을 지면에 그려내고, 모양을 만들어 냄으로써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습니다.
다음엔 이 괴물들을 찢고, 밟고, 던지고, 여하튼 괴물 퇴치를 위해 뭐든 하는 겁니다.
꿈 분석 전문가이신 고혜경 님은 괴물을 그린 그림을 불태우라고 하시네요. 태우고 나면 무엇으로든 그 에너지가 변한다고요. 헤어진 후 옛 애인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불태우는 것이 괜히 하는 행동은 아닌가 봅니다.
괴물이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오면 어쩌죠?
괴물이 아파트 창문을 통해 들어오면요?
자기 친구들 많이 데리고 오면요?
밤에 잠들기 전 질문을 해대는 몬스터 같은 아이에게 어쨌든 안심을 시켜줘야 합니다.
제일 소용없는 말은 "괴물은 없어." "괴물은 만화에나 있는 거야." 같은 대답입니다.
아이는 물리적 실재가 아닌 마음속에 존재하는 공포심을 분명히 느끼고 있으니까요.
아이의 공포를 작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엄마가 눈빛 레이저를 잘 쏘는데, 한 번만 딱- 째려보면 걔네들이 다 겁먹어.
현관 앞에 엄청 미끄러운 기름을 발라놓자. 오다가 밟고 다 미끄러지면 그때 한꺼번에 공격하는 거야.
괴물이 물을 그렇게 싫어한대. 물 한 바가지 준비해 놓고 다 뿌려버리자. 오다 미끄러지게.
한 번은 괴물이 계속 쫓아올 것 같은데 어쩌냐고 묻길래,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자, 일단 우리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자. 꼭대기에 올라가서 강 쪽을 바라보고 한쪽 손바닥을 입에 갖다 대 봐. 그리고 엄마 따라 해. 퐈~!"
"푸하하하하! 그게 뭐예요! 퐈~~ 하하하하!"
아, 먹혔습니다.
너무 재밌다며 자꾸 해달랍니다. 퐈~. 거짓말 좀 보태서 스무 번 퐈퐈 거렸습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입니다.
두려움을 자극하는 상상력을 유머를 이용한 상상력으로 김을 빼주는 겁니다.
아이가 웃길 만한 포인트는 아무도 모릅니다. 될 때까지 부모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수밖에요.
아이가 무서워하는 활동을 성공할 수 있도록 단계별로 제시하고, 성취 경험을 주는 겁니다.
예를 들어, 밤에 불 꺼진 집 안을 다니기가 무서워서 화장실에 못 가겠다고 하는 상황.
방 안에서 문을 찍고 오는 겁니다. 성공!
그다음엔 문 바로 밖의 옆 방문 앞. 성공!
그다음엔 부엌. 성공!
그다음엔 제일 먼 현관 앞까지. 성공!
언제까지나 아이가 할 수 있다고 하는 만큼만 제시합니다.
그리고 성취를 위해 시도한 작은 수행도 놓치지 않고 칭찬하고 격려합니다.
'방문 앞에 나가는 것도 무서워했는데, 방문 앞까지 세 발자국 갔다!'
'예전엔 무섭다고 하기만 하더니 이제 용기 낼 마음을 먹었네. 그것도 용기야.' 이런 식으로요.
이 활동의 포인트는 단계를 아주 작게 쪼개고 그 단계마다 성공하는 자신감을 획득하는 것이니까요.
가장 중요합니다.
이 모든 활동을 안내하는 부모의 마음에 평정심이 있어야 합니다.
개입 한 번 했다고 해서 괴물이 바로 퇴치되지 않습니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스트레스가 있는 건 아닐까?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게 날 닮아 그런가?
일하느라 다른 사람 손에 키워서 애착이 잘못됐나?
와 같은 다양한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악몽이 무엇 때문인지 파악했고, 원인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이후에 제일 중요한 건 부모의 인내심입니다.
아이가 마음속 괴물을 상대할 자신감을 쌓도록 시간과 경험과 과정을 허락해 주세요.
어릴 적 꿈에 어마 무시한 괴물이 나타나서 어떻게든 숨어 보려고 애쓰며 도망 다닌 기억이 납니다.
그 괴물을 어떻게 퇴치하면 되는지 누구에게 물어본 적도 없고, 그러니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아이의 꿈에 괴물이 초대됐다면 어떻게 다뤄주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그래도 밤을 두려워할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용기를 낼 수 있는지를 배울 겁니다.
괴물 퇴치 작전의 원리는 사실 어른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살다 보면 괴물이 꿈에만 찾아오지는 않잖아요.
내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싶은 일들, 그로 인해 드는 감정을 괴물이라고 부른다면 말이죠.
용기 내는 법을 배운 경험이 아이의 몸에 쌓이기를 바랍니다.
인생 괴물을 잘 다룰 수 있는 씨앗을 심는 마음으로 저는 오늘도 아이의 괴물을 함께 퇴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