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경치들을 모아 8경으로 꼽는다. 그런데 왜 꼭 8경인가? 6경이나 9경 아니 10경은 안 되는 건가. 지자체마다 지역의 아름다운 경치들을 모아서 8경으로 꼽고 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별생각 없이 그러려니 했는데, 불현듯 그 이유가 무척 궁금해진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라 해답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8경의 유래는 중국 소주와 삼강 지방의 아름다운 경치를 송나라 때 화가 이성이 “소상 8경도”라는 이름으로 화폭에 담았다. 여기서부터 8경이라는 이름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 화가들이 자기 고장이나 명승지의 멋진 자연풍광을 소상 8경도에 대입했다.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잘 알려진 관동팔경과 단양팔경이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면적의 70%가 산지로 되어 있어 전국에 높고 낮은 산과 계곡이 있다. 우리 땅 여기저기를 가로지르는 강이 있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이 때문에 전국 어디를 가도 아름다운 풍광을 만날 수 있다. 가끔은 억지스럽게 짜 맞추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8경이 있어 실소를 머금게 하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보아줄 수 있다.
충북 영동군에는 양산팔경이 있다. 양산이라고 하면 통도사가 있는 경남 양산이 먼저 떠올라 처음에는 고개가 갸우뚱했었다. 영동군의 양산팔경은 영동군 양산면 금강 상류에 있는 여덟 군데의 경치 좋은 곳을 말한다. 이 양산팔경의 절반이 정자이다. 강선대, 여의정, 봉황대, 함벽정이 그 주인공들이다.
정자는 경치 좋은 곳에 지어 주변 경관을 감상하면서 쉬거나 즐기는 공간이다. 물론 정신수양의 장소이면서 토론과 교육의 장소이기도 했다. 용도가 어찌 되었든 정자는 대부분 경치 좋은 곳에 있다. 이름난 정자가 있는 곳에 빼어난 경치가 있다는 등식이 성립된다. 그래서 시간이 될 때마다 정자 여행을 즐긴다.
정자를 좋아하지만, 오랜만에 가는 영동 여행에서 정자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그렇다 보니 8경의 네 군데 정자 중에서 어디를 갈까 고민스럽다. 안 그래도 여행 욕심이 많은데 그중에서 하나를 고르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사진들을 보면서 고민 끝에 가장 멋진 경치를 품은 것으로 보이는 강선대(降仙臺)를 간다.
아득한 옛날, 선녀 모녀가 강물에 비친 낙락장송과 석대가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다워 이곳에 내려와 목욕했다고 해서 강선대라고 한다. 전설이야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옛 문인들이 가을철 달밤의 황홀한 풍경을 두고 선대추월(仙臺秋月)이라 하여 양산팔경의 제2경으로 꼽았다고 한다.
옛날에 있던 정각은 없어졌고, 함양 여 씨 종중에서 1954년에 지금의 육각 정자를 지었다. 옛 모습 그대로의 정자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지금 정자의 지나온 세월의 무게가 내 삶의 무게와 엇비슷해서 이것도 인연인가 싶다.
차창을 스쳐 가는 회색빛 풍경을 눈에 담으며 기분 좋게 국도를 달린다. 그때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목적지에 다 왔다고 내비게이션이 목소리를 높인다. 황급히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살핀다. 평범한 국도 길가에 강선대 주차장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주차장 간판이 없었다면 이런 곳에 정자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을지 모른다. 국도에 바짝 붙어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이제부터 얼마를 가야 강선대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사방을 둘러본다. 그때 길 건너편에 있는 커다란 안내판 뒤로 정자가 보인다. ‘설마 저게 강선대?’ 그게 맞는다면 얼마를 걷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이다. 산도 계곡도 아닌 국도에서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 강선대가 있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이렇게 무섭다. 정자 하면 으레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있어 산과 계곡 어딘가를 먼저 떠올린다.
정자가 어떤 모습이고 얼마나 멋진 경치를 품었을까? 잔뜩 기대하면서 정자를 찾아가는 즐거움은 고사하고 뭔가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불길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으니 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산한 국도를 건너면 아치 다리와 소나무에 둘러싸여 있는 강선대가 또렷하게 보인다.
멀찍이 떨어져 있어도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강선대와 가까워질수록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의문과 불안감이 슬그머니 풀어진다. 그 불안감은 ‘어! 이것 봐라!’하는 놀라움과 기대감으로 뒤바뀐다. 아치 다리와 소나무에 둘러싸여 있는 강선대는 동양화에서 본 듯한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준다.
강선대를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들이 유독 눈길을 끈다. 원래부터 이곳에서 자생한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심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선대와 어우러져 빼어난 경치를 보여준다. 선녀 모녀의 전설을 보면 애초부터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은데, 너무도 절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을 보면 아름다운 경치를 위해 일부러 조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아치 다리, 소나무와 함께 어우러진 강선대는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구중궁궐 깊숙한 정원에 있는 정자처럼 보인다. 다리를 건너 강선대로 다가가면 제멋대로 휘어진 소나무에 눈길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다. 오가는 세찬 세월의 무게가 버거웠던 건지 아니면 제멋에 겨웠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리저리 휘어진 줄기와 가지가 보는 이의 마음을 대번에 사로잡는다.
그 멋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엉뚱한 생각을 한다. 온몸을 비틀고 서 있는 소나무들이 마치 아이들처럼 얼음 땡 놀이를 하는 것 같다. 장난꾸러기 동네 꼬마 녀석들이 신나게 까불다가 얼음! 이라는 소리에 그대로 멈춘 것 같아 웃음이 삐져나온다. 굵은 줄기는 하늘을 향하고 있지만, 어떤 것은 목이 말랐던지 흐르는 강물 쪽으로 깊게 허리를 숙였다.
가지는 일부러 그렇게 휘어 놓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휘어졌다. 이곳 소나무들은 강선대의 멋스러움을 위해 정해진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것 같다. 이렇듯 대책 없이 휘어져 있어 목재로 쓸 수 없다. 그 덕분에 무지막지한 사람들의 손길을 피해 강선대와 어우러져 유유히 세월을 함께 보내고 있다. 이 소나무들이 없었다면 강선대의 멋과 운치는 반감되었을 게 분명하다.
육각 정자로 지은 강선대는 아담하다. 네댓 사람이 둘러앉으면 꽉 찰 공간이다. 가운데 술상이라도 놓으면 그저 두 사람이 즐기기에 딱 알맞은 크기이다. 작은 고추가 맵듯이 규모가 작다고 품은 경치가 떨어지라는 법은 없다. 크기와 달리 강선대가 품은 경치는 기대 이상으로 넓고 아름답다. 강선대가 뒤늦게 풀어놓는 경치는 바위 절벽 아래로 흐르는 금강이다. 길게 이어진 강줄기는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높고 낮은 산의 품속으로 사라진다.
굵은 소나무 줄기와 고개 숙인 가지 사이로 보이는 강물이 유난히 맑다. 눈부신 오후 햇살이 쏟아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그 위에 여유로움이 내려앉는다. 이곳에 강선대를 지은 옛사람의 의도를 알 것 같다. 강선대는 정자가 보여줄 수 있는 두 가지의 멋과 아름다움을 다 갖추었다. 정자 자체의 아름다움이 그 하나요, 멋진 금강의 경치가 또 다른 하나다.
흘러가는 강물이 보이지 않는 절벽 어딘가에 세차게 부딪힌다. 부딪쳐 부서지는 강하고 맑은소리가 강선대의 정적을 깨뜨린다. 홀로 길 떠난 여행자를 위해 강선대가 불러주는 노랫소리다.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흘러가는 강물처럼 머릿속이 맑아지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거칠 것 없이 사방을 휘젓고 다니던 바람도 이때만큼은 발뒤꿈치를 들고 조심조심한다.
길게 드리운 오후 햇살을 등에 업은 강물은 멈추어 있는 것처럼 평온하게 흐른다. 밝은 햇살이 사라지고, 불타는 석양의 붉은 빛이 강물 위에 쏟아지면 그 장관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 같다. 안 그래도 화려한 가을날의 저녁노을이 강물에 내려앉으면 그 아름다움은 비현실적으로 보일 것 같다. 그 경치를 보고 있으면 쇳덩어리처럼 단단하게 굳은 감성도 어느새 녹아버릴 것이다. 거기에 친구가 있고 술이 있고 시가 있다면 세상에 이만한 풍류가 또 어디 있겠는가.
자연을 오롯이 품은 그 옛날 정자의 경치는 어땠을까? 지금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더 빼어나고 아름다웠을 것이다. 눈앞의 보이는 경치에 상상 속의 경치를 더해보는 것이 또 다른 즐거움이다. 그 덕분에 내 안에서 잠자고 있는 감성과 상상력을 일깨울 수 있다. 돌아가는 다리 끝에서 다시 한번 강선대를 돌아본다. 강선대가 알쏭달쏭한 미소를 보낸다. 강물 위로 내려앉은 저녁노을을 보고 싶지 않니? 유혹의 눈길이 여간 진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