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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Jan 28. 2024

이 겨울을 즐기기 좋은 곳!

직장이 강서구에 있는 서울식물원 근처에 있다. 지금이야 그곳이 서울식물원인지 알고 있지만, 작년 초까지만 해도 몰랐다. 출퇴근을 지하철로 하지만, 주말 근무가 있는 날은 차를 가지고 다녔다. 직장에 거의 다 와 갈 때쯤 왼쪽으로 독특하게 생긴 하얀 건물이 늘 눈길을 끌었다.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라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했었다. 나중에 직장 동료들로부터 그곳이 서울식물원 온실이고, 그 일대가 서울식물원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규모가 크고 구경할 게 많다고 하니까 호기심이 생겨 가보고 싶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마음은 있었지만, 가까이 있는데도 좀처럼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직장 동료들은 점심 먹고 산책 삼아 가보라고 하지만, 그건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게 보면 시간상으로 여유가 없어 즐기는 맛이 떨어진다. 또 여행 욕심이 많아 한번 보기 시작하면 이것저것 보고 다녀 산책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그렇게 기회만 보고 있다가 마침 별일 없는 주말을 맞아 집을 나섰다. 나선 김에 강서구의 이곳저곳을 볼 생각이었지만, 첫 번째 목적지는 당연히 서울식물원이었다. 올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주말의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고, 일기예보도 비 아니면 눈이 내릴 거라고 했다. 짙은 회색빛 하늘을 보면 눈이 됐건 비가 됐건 뭐가 내리긴 내릴 태세였다. 혼자 생각은 눈이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올겨울 눈이 많이 내린 데다, 비보다 눈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예상은 빗나갔다. 올림픽대로에 들어서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빗줄기가 점점 더 굵어졌다. 하늘을 봐서는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아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식물원 전체를 둘러보려던 계획을 바꾸어 온실만 보기로 했다. 날씨가 이러니 서울식물원을 찾은 사람들의 생각이 다 같은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온실로 들어가는 출입구에는 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온실을 찾은 사람들이 많아 차가 나오는 만큼만 들여보냈다. 



상황이 이러니 언제 들어갈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없었다. 아무리 맛집이라도 오래 기다려야 하는 집은 가지 않는다. 길게 늘어선 차량의 행렬 속에서 어떻게 할까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다려서 구경하기를 정말 잘했다. 도착한 시간이 점심시간쯤이어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드나드는 많은 차량만큼 온실은 사람들로 붐볐다. 날씨는 우중충해도 서울식물원을 찾은 사람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다들 들떠있었다. 겨울이어서 그런지 온실은 생각했던 것처럼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실내는 봄가을 날씨 같은 쾌적한 상태여서 구경하기에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서울식물원은 서울 최초의 도시형 식물원으로 식물원과 정원을 결합한 형태다. 한국의 식물을 보여주는 주제 정원과 열대, 지중해 식물을 전시한 온실을 비롯해 열린 숲, 호수원, 습지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볼거리가 많은 만큼 규모가 크다. 서울식물원을 제대로 보려면 하루를 가지고는 어림없어 보인다. 



온실의 열대관에는 코코넛 야자를 비롯해 4개국의 식물이 있고, 지중해관에는 올리브 나무, 바오바브나무 등 8개국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1,000여 종의 수종이 있어 온실 규모 역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드넓은 온실에는 꽃과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인공의 온실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딱히 이름은 몰라도 눈에 익은 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듣도 보도 못한 나무와 꽃들이 가득했다. 


친구들과 나들이 나온 장년의 여성분들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한다. 보이는 곳마다 깔깔대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그분들의 사진 찍는 모습이 은근히 재밌다. 요즘 젊은 친구들과 달리 예전 분들은 나무나 꽃이 있는 데서 사진 찍을 때 특유의 포즈가 있다. 나무줄기를 살짝 잡아당긴다든가, 얼굴을 꽃에 가까이 대고 찍었다. 그런 모습을 오랜만에 보니까 슬그머니 미소가 떠올랐다. 아마 그분들도 젊은 날의 그 시절로 돌아가 한껏 들떠 있었을 것이다.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따라가면서 열심히 동영상을 찍는 젊은 부부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희귀한 열대식물을 보는 것만큼이나 흐뭇했다. 



열대식물 중에서 제일 눈길을 끄는 건 선인장이었다. 선인장은 예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시가 가득한 특이한 생김새라 보는 재미가 있다. 둥그스름한 항아리같이 생긴 것부터 고대 백제왕이 왜왕에게 하사했다는 칠지도를 닮은 것까지 다양했다. 선인장을 볼 때는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굳이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생긴 모습 그대로 보고 즐기면 그만이다.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어서 선인장에 눈길이 더 가는 것 같다. 


기르기가 편해서 예전에는 선인장 키우는 집이 많았다. 깜빡하고 제때 물을 주지 못해도 죽지 않고 잘 자랐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선인장이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다, 집은 물론이고 꽃집에 가도 예전처럼 선인장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오래전, TV에 풍수지리를 하는 사람이 나와서 잎이 뾰족한 식물은 집안에서 키우는 게 좋지 않다고 하는 걸 보았다. 좋은 게 좋다고 그 말을 듣고 집에서 키우던 선인장을 처리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사람들도 그 영향을 받은 게 아닌지 모르겠다.



온실에는 8m 높이의 스카이워크가 있다. 목을 한껏 뒤로 젖혀야 볼 수 있는 키 큰 열대 나무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온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서 또 다른 매력이었다. 서울식물원 온실은 부대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편리했다. 기념품점에는 뜻밖에 재밌는 상품들이 많아 관람객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 그동안 다양한 곳을 여행했지만, 온실은 참 오랜만이었다. 


어렸을 때, 서울의 대표 구경거리 중의 하나가 남산식물원이었다. 지금은 철거됐지만, 어렸을 때 보았던 남산식물원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기억이 온전한 것을 보면 그만큼 좋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없어진 남산식물원을 대신해 서울식물원의 온실이 오래 기억 속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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