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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Apr 06. 2024

강화전쟁박물관

강화도는 행정구역상 인천시 강화군에 속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는지 몰라도, 강화도는 어디에 속해 있는 땅이라 여겨지지 않는다. 강화도가 끌어안고 있는 지난 역사의 무게가 이루 말할 수 없게 무겁기 때문이다. 수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이 땅에 크고 작은 역사가 깃들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냐마는 강화도에서는 유달리 깊고 진한 역사의 향기가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강화도는 예로부터 군사요충지였다.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과 가깝고, 조선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과도 가까워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예성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길목에 있어 수도를 방어하는 데도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전략 요충지였다. 


그렇다 보니까 애초부터 역사의 부침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는지 모른다. 역사 속의 강화도는 항쟁과 유배지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몽골 침입 때, 고려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항쟁을 이어갔고, 조선 시대에는 프랑스가 침공한 병인양요와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미국이 침공한 신미양요가 벌어진 전쟁터였다.



고려 때, 휘종을 비롯해 조선 시대에는 연산군 외에 수많은 이들이 강화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이렇게 굵직굵직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현장이라 강화도는 강렬하면서도 특별한 곳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강화도에는 지난날 항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강화전쟁박물관이 있다. 


강화전쟁박물관은 강화도에서 일어난 전쟁을 중심으로 전쟁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2층 건물에는 네 곳의 상설전시관이 있어 선사시대부터 고려,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전쟁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던 건 “검차”다. 얼마 전, 사람들이 좋아했던 “고려 거란전쟁” 드라마가 끝났다. 평소엔 드라마를 보지 않지만, 이렇게 역사적인 사건을 다룬 사극 드라마는 빠뜨리지 않고 보는 편이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은 우리 역사에서 자랑스러운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이었다. 고려군이 거란군을 물리치는 장대한 장면이 흐지부지 마무리되는 바람에 드라마가 끝나고도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학창 시절,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은 교과서에 밑줄을 쳐가며 외웠던 내용이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전쟁 장면에 검차가 등장한다. 학창 시절부터 국사를 좋아했는데,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 보아도 검차는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선생님이 검차를 설명하는 시간에 한눈을 팔은 건지 그때는 정말 책에 나오지 않았던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어찌 됐든 이번 드라마를 통해서 처음 검차를 알게 된 건 사실이고, 그건 뜻밖에 수확이었다. 처음에는 드라마의 재미와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제작진이 만들어 낸 가공의 무기인 줄 알았다. 


그 검차가 박물관 2층 외부공간에 전시되어 있었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이 생긴 검차를 직접 눈으로 보니까 무척 신기하고 반가웠다. 검차는 거란과 싸울 때, 거란의 기병을 막기 위해 개발한 무기이다. 수레 위에 거대한 방패를 얹었고, 방패 앞에는 여러 개의 긴 창을 꽂아놓았다. 


방패 전면에는 귀신이나 도깨비의 얼굴을 무섭게 그려 놓았다. 적의 말을 놀라게 하려고 그렇게 했다는 걸 보면 검차는 기병을 무력화시키려는 무기였을 것으로 보였다. 방패 앞에 꽂혀 있는 긴 창들이 기병의 말을 공략하기에 매우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거란과의 전쟁에서 검차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강화전쟁박물관에는 아주 귀한 유물이 있다. 강화도 수비대장이었던 조선의 어재연 장군이 사용했던 수자기가 보관되어 있다. 가로세로 길이가 4m가 넘는 수자기는 현존하는 유일한 장군기이다. 신미양요 때, 미 해군이 전리품으로 가져갔는데 2007년에 돌아왔다. 수자기와 함께 강화도에서 벌어진 미군과의 전투 결과를 찍은 사진을 보고 있으면 오래전 역사의 한순간이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착잡해진다.


우리 역사를 보면 어느 왕조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았다. 외침을 물리친 자랑스러운 역사와 함께 강토가 유린당한 굴욕적인 역사가 뒤엉켜 있다. 지구상에 영원히 존재한 제국이나 왕국은 없다. 이런 불변의 역사를 알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진 외침의 역사를 생각하면 부아가 치민다.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와 백성이 치욕을 겪어야 했던 이유는 역사가 분명하게 그 답을 알려주고 있다. 나라가 외침에 대항해서 자신을 스스로 방어하고 또 외세를 물리칠 만한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져 총부리를 겨눈 채 피 흘린 역사가 있다. 그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정전 상태에 있다. 다들 그런 사실을 망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땅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지금의 이 평화를 지키고 치욕스러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의 힘과 역량을 키워야 한다. 말로만 외치는 평화는 정작 무력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우리 스스로 지킬 힘이 있는 상태에서 평화를 위한 대화와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도 지구상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벌써 2년째 전쟁을 하고 있고,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전쟁 중이다. 이 전쟁의 최후 승자는 결국 힘 있는 강한 나라가 차지할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찾은 강화전쟁박물관에서 새삼스럽게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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