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두세 번은 고창을 드나든다. 아내의 고향이자 두 분 처형이 살고 있어 이런저런 일로 가게 된다. 고창을 오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고창은 구경거리와 먹거리가 참 많은 고장이다. 많기만 한 게 아니라, 무언가 안정적이고 대칭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아 여행의 재미와 즐거움이 그 어느 고장보다 크다.
예를 들어 풍천장어가 있으면 복분자가 있듯이, 고창읍성이 있으면 무장읍성이 있다. 또 고인돌 유적지가 있으면 운곡 람사르습지가 있다. 이것처럼 고창을 대표하는 여행지 중의 하나가 선운사인데, 그에 못지않은 경치를 품은 문수사가 또 있다. 가을이 화려하게 물든 날, 문수사를 만나면 장담하건대 그 감동과 여운은 꽤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문수사로 가는 길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단풍나무 수백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수령이 100년에서 400년이 된 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단풍이 붉게 물든 가을 경치는 말보다 탄성이 먼저 나오는 장관이다. 그때가 되면 문수사에 온 건지 단풍을 보러온 건지 구분되지 않는다. 사실 구분할 필요도 없지만 말이다.
4월에 들어서면서 산과 들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봄꽃들의 화려한 잔치가 시작되면서 연둣빛 어린 잎사귀들도 수줍게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생명의 기운이 넘치도록 가득한 이 계절에 고창 문수사를 찾았다. 얼마 만인가 싶어 햇수를 더듬어 보니 무려 12년 만이다. 뻔질나게 고창을 드나들면서도 그동안 외면했던 미안함을 덜어내고 싶었는지 문수사가 보고 싶었다.
도시의 콘크리트 숲에 갇혀 살다 보니까, 이 계절의 산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감각이 무디어졌다. 참으로 오랜만이어서 그랬는지 문수사에 가면서도 그 유명한 단풍나무숲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여행자의 둔한 계절 감각과는 상관없이 온 산은 이미 봄으로 가득했다. 한적하기 그지없는 문수사 가는 길에서 단풍나무를 보고 나서야 문수사의 자랑거리인 단풍나무 숲이 생각났다.
계절을 잊지 않은 문수사 단풍나무에도 이제 막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연둣빛 어린 잎사귀들이 가득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어린잎들의 멋지고 아름다운 향연에 기쁨과 설렘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문수사 가는 길이 예전과 달리 잘 정비되었다. 그 때문에 걷기 편하고 운치 가득한 길에서 보는 단풍나무의 어린 잎사귀들이 한결 더 예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렇게 멋진 길을 호젓하게 걸을 수 있으니, 이보다 큰 호강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여리디여린 어린 잎사귀들이 단풍나무 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다. 부드러운 햇살을 받은 어린잎은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이때 보이는 어린잎의 밝고 투명한 연둣빛은 이 세상 그 어느 화가도 그 색깔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살며시 부는 봄바람에 그 작은 몸을 파르르 떠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사정없이 녹여버린다. 이래서 며칠 동안 화려하게 피었다가 사그라지는 꽃보다 이때의 어린잎을 훨씬 더 좋아한다.
문수사 입구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봄의 노래가 들려온다. 푸른 이끼가 잔뜩 끼어있는 바위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이 찬란한 봄날을 노래한다. 아직 무겁고 칙칙한 겨울 티를 온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바위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은 유난히 맑고 하얗다. 사람들은 봄꽃을 보면서 봄이 왔다고 말하지만, 여행자의 봄은 오늘에야 왔다. 부드러운 햇살을 받은 단풍나무의 어린잎과 문수사 계곡의 정적을 깨뜨리며 흐르는 맑디맑은 계곡물이 이 봄의 전령사였다.
주변 경치를 보면서 천천히 걷다 보면 눈에 익은 높고 커다란 축대가 눈에 들어온다. 축대 위에 쌓은 담장과 전각의 지붕들이 오랜만에 문수사를 찾은 여행자를 언제나처럼 반겨주었다. 문수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거대한 은행나무가 서 있다.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는 오면서 보았던 단풍나무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단풍나무는 그 절정을 보여주면서 이제부터는 부처님 도량이니까 마음을 다잡으라고 한다.
문수사로 들어가는 문은 불이문이다. 여느 사찰과 달리 아담하고 소박한 불이문이 가지런히 놓인 돌계단 끄트머리에 서 있다. 이 불이문은 볼 때마다 은근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불이문은 크지 않지만, 가운데가 항아리처럼 불룩하다. 불룩한 불이문을 보면 유난히 배가 나온 배불뚝이의 배를 보는 듯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그 때문에 불이문은 보는 재미와 함께 친근함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문수사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건축물이다.
문수사는 일명 청량산이라 불리는 문수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백제 의자왕 때, 자장율사가 지은 사찰이다. 자장율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당나라에서 기도했던 청량산과 닮아서 이곳에 문수사를 지었다고 한다. 문수사 경내에 전각들이 그동안 못 본 사이에 많이 는 것 같다.
예전에는 절에서 사람 구경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문수사의 규모와 살림살이가 늘었는지 사찰 일하는 보살님이 보였다. 문수사의 중심인 대웅전은 켜켜이 쌓인 세월의 고색창연함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규모가 큰 전각이 있어 대웅전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기는 해도 세월의 무게와 흔적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의연한 모습의 대웅전이 있어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문수사가 빛을 발할 수 있다.
지나가는 바람 소리도 들릴 것 같은 고요함이 문수사에 가득 내려앉았다. 예전보다 전각이 늘었다고 해도 이리저리 바삐 발걸음을 옮기면서 둘러볼 정도는 아니다. 대웅전 앞마당에 서서 몸을 한 바퀴 돌리면 문수사의 모든 걸 다 눈에 담을 수 있다. 규모는 아담하지만, 빈약하지 않아 편안한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다.
문수사에 왔어도 문수전 안에 들어가 본 적은 없다. 오늘따라 궁금해 문수전에 올라가 안내문을 읽었다. 마침 그때 문수전을 정리하고 나오는 보살님과 마주쳤다. 보살님은 문수전 안에 들어갈 거냐고 물었다. 딱히 들어갈 생각이 없었는데, 안내문을 읽은 데다 그 말을 들으니까 왠지 문수전 안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들어갈 거면 나올 때 문고리를 걸어달라고 부탁하면서 보살님이 내려갔다. 문수사의 조용한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석조승상에 대한 안내문을 읽어서 그런지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가슴이 콩닥거렸다. 살짝 긴장한 마음으로 문고리를 벗겨내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석조승상은 노승의 모습을 한 문수보살로 알려져 있다.
문수전에 들어서 석조승상을 보는 순간,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에 내심 깜짝 놀랐다. 문수보살을 떠나 노승의 모습이 너무나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워 감탄스러웠다. 석조승상의 전체 높이가 167㎝인데, 머리 높이가 53㎝이니까 균형 잡힌 모습이 아닌데도 아주 자연스러웠다.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 얼굴이 어깨에 파묻힌 듯한 구부정한 모습이 영락없는 노승의 모습이었다.
석조승상은 종교적인 느낌이나 분위기를 떠나 평범한 시골 할아버지를 보는 것처럼 푸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보는 내내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나저나 오늘 문수전에서 석조승상을 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대목에서 어울리는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마음이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했다. 석조승상을 보고 나니까 이젠 문수사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게 석조승상으로 바뀌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은 작지 않은 시간이다. 문수사도 그 세월의 변화를 피해 가지 못했지만, 예전 문수사의 느낌과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 다행이면서 좋았다. 문수사를 떠나는 여행자에게 연둣빛 어린 잎사귀들이 앙증맞게 손을 흔들었다. 어린잎들의 배웅을 받으며 나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이렇게 멋진 봄을 만났으니, 앞으로의 모든 날이 멋지고 아름답게 펼쳐질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