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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Apr 15. 2024

광성보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본다

강화도는 꽤 여러 번 다녀온 곳이다. 그렇긴 해도 강화도를 속속들이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직 가봐야 할 곳이 많고, 그중의 하나가 광성보(廣城堡)다. 광성보는 강화도를 대표하는 여행지 중의 한 곳인데, 그동안 왜 인연이 닿지 않았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쉬는 날, 혼자만의 여유로운 여행을 위해 오랜만에 강화도를 찾았다. 이참에 그동안 끼워 넣지 못한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광성보에 갔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한바탕 주말 관광객들이 휘젓고 간 광성보는 무척 조용했다. 주차장의 주차 공간이 널널하게 남아 있어 광성보가 한적하다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서너 대의 차량이 주차된 걸 보면 차분하게 즐기려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주차장을 나오면 육중한 성(城)이 앞을 가로막는다. “안해루(按海樓)”라고 쓴 현판이 붙은 성은 위풍당당함을 한껏 드러냈다. 첫눈에 반한 사랑하는 연인처럼 광성보의 당당한 모습이 대번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누구든 마음대로 들어오라고 성문은 활짝 열려있다. 그 모습에서 느닷없이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 이 자리와 이 분위기에서 그게 어울리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그 말이 퍼뜩 떠올랐다. 


성문 안쪽 저편에 두 여자분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이곳 분위기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한편으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이곳에서 벌어졌던 지난날의 아픈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바다 쪽에서 밀려드는 환한 빛이 성문을 지나면서 그분들 모습이 실루엣으로 보였다. 은근하게 보이는 그분들 모습에서 잊고 있었던 광성보의 아픈 역사가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청나라가 쳐들어왔던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되었다. 그 뒤에 체계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12개의 진과 보 중의 하나가 광성보다. 조선 효종 때, 구축된 광성보는 해안가의 군사지휘소로 광성돈대, 화도돈대, 오두돈대를 관할했다. 광성돈대는 안해루 바로 옆에 붙어있다. 광성돈대는 어른 가슴까지 오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안쪽은 아늑해 보였다. 그런 아늑함이 있어 안전한 공간으로 다가왔다. 


광성돈대에는 포를 쏠 수 있는 포좌 4개소와 크기가 다른 3문의 포가 복원 설치되어 있다. 안해루 주변에 세워진 울긋불긋한 깃발들이 이곳을 지켰던 조선군의 결기를 보여주는 듯했다. 성벽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잔잔했다. 바다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잔잔해서 한편으로는 얄미운 생각이 들었다. 누가 뭐래도 저 바다는 이곳에서 벌어졌던 피비린내 나는 지난 역사의 사건들을 다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짐짓 모른 채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것 같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여기까지 와서 안해루와 광성돈대만 보고 가기에는 너무 아까워 손돌목 돈대까지 가보기로 했다. 성문 오른쪽에 있는 손돌목 돈대로 가는 길은 오가는 이가 없이 마음껏 여유를 즐기면서 걸을 수 있었다. 걷는 동안에는 잠시 바다를 잊고 울창한 숲길 정취에 빠질 수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왼편에 쌍충비가 나타났고, 길 건너 그 맞은편 아래에 신미순의총이 보였다.



신미양요 당시, 광성보는 최대의 격전지였다. 쌍충비는 그 당시 순국한 어 재현 장군과 어 재순 형제 그리고 조선군을 기리기 위한 2기의 순절비이다. 이쯤에서 학창 시절에 배웠던 신미양요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본다. 그때의 역사를 알아야 광성보를 제대로 이해하며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 고종 때.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통상을 요구하다 거부당하자, 조선 관리를 살해하고 민가를 약탈했다. 이에 분노한 평양 관민과 관찰사가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워 침몰시켰다. 이것이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제너럴셔먼호 사건이다. 그러자 미국이 제너럴셔먼호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군함 5척과 1,200명의 병력으로 강화도를 침공한 사건이 신미양요이다.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최초이자 마지막 전쟁이었다. 두 나라 사이에 어두운 역사의 한 단면이 있지만, 지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혈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걸 보면 역사는 언제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이 전쟁에서 조선군은 막강한 미군의 화력 앞에서 최후에 한사람까지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며 물러서지 않았다고 한다. 


신미순의총에는 그때 격전을 벌이다 전사한 무명용사 51명이 7기의 분묘에 합장되어 있다. 굵직한 역사의 강을 건넌 이 땅의 선조들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다. 다시 한적한 길을 따라 걸으면 오른쪽 구릉에 손돌목 돈대가 나타난다. 


광성돈대보다 높은 곳에 있어 강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돈대 앞에 있는 안내판에는 지난날 이곳에서 벌어졌던 전쟁의 사진들이 있다.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너무도 오래전이라 때론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게 지난 역사다. 그렇지만 그분들이 우리의 선조이기에 사진을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착잡해진다.


손돌목 돈대도 한가하고 고요했다. 먼저 온 부부가 성벽 앞에서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들도 그때 그 순간의 역사를 떠올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손돌목 돈대는 정적에 휩싸여 있어 이곳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치열한 역사의 순간이 있었다는 게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잔잔한 바닷속으로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빠져든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시간이 무심한 바다에 녹아들면서 또 다른 역사가 쌓여간다.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역사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다. 그 시간만큼 세월의 저편으로 밀려나 희미해져 가는 지난 역사를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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