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사를 처음 본 게 10년 전이다. 처가 식구들은 대부분 가톨릭을 믿는다. 가톨릭 신자인 작은 처남 부부와 강화 여행을 하면서 처음 정수사를 알게 되었다. 처음 정수사를 갔던 그해 여름, 여행 중에 처남댁이 정수사를 아느냐고 물었다. 강화도에서 많이 알려진 사찰은 전등사와 보문사다. 그곳은 몇 번씩 가봤던 곳이라 잘 알고 있었지만, 정수사는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정수사는 조용히 쉬어갈 수 있는 사찰이어서 처남 부부가 가끔 찾는다고 했다. 처남 부부는 가톨릭 신자여서 조금 뜻밖이었다.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열린 마음을 가진 처남 부부가 추천하는 정수사라 마다할 일이 없었다. 정수사는 큰길에서 제법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만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정수사를 드나드는 사람이 많지 않아 여느 산사보다 더 깊은 고즈넉함을 보여주었다.
이번에 보니까 정수사는 전등사, 보문사와 함께 어깨 나란히 하면서 강화도를 대표하는 3대 사찰로 자리매김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고, 드나드는 사람도 많아졌다. 지인들과 함께하는 강화도 여행에서 여행 계획을 짜는 친구가 정수사를 일정에 넣었다, 그 덕분에 오랜 시간을 건너뛰어 반가운 마음으로 다시 정수사를 만났다.
정수사(精修寺)는 신라 선덕여왕 때 회정 선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이후 조선 세종 때, 함허대사가 다시 지었다고 한다. 큰길에서 빠져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처음 정수사를 갔던 그때의 정겨움만 떠올랐다. 주차장에 도착해 108계단을 오르면서부터 머릿속의 내장된 기억과 눈에 보이는 모습 사이에 괴리가 생기면서 헷갈렸다. “예전에도 돌계단이 있었나?”
정수사 대웅보전 앞마당에 들어서 사방을 쭉 하니 훑어보았다. 한번 와봤던 곳이라 기억 속의 정수사와 눈앞에 정수사를 두고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이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이런 행동은 한번 가봤던 곳에 가면 으레 습관적으로 하게 된다. 전체적인 모습은 기억 속의 정수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간의 흐름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건물이 들어섰고, 진행 중인 것도 있었다.
처음 정수사에 왔을 때, 가장 좋았던 곳이 대웅보전과 대웅보전 앞에 있는 거대한 바위였다. 처남 부부는 정수사에 오면 그 바위 위에 앉아서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처남 부부 말처럼 정수사를 내려다볼 수 있는 그 바위는 정수사 최고의 명당이었다. 그 바위에는 큰 나무가 있어 여름에도 시원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심 지인들에게 그 자리를 자랑하고 싶었다. 한데 자리는 그대로 있지만, 이젠 그 자리에 예전에 보지 못했던 관음전이 들어서 있다. 관음전 앞으로 공터가 있어 정수사를 굽어보는 즐거움은 여전하지만, 그 당시 자연 그대로의 분위기와 느낌이 달라진 건 사실이었다. 어찌 보면 그 좋은 명당 자리를 관음전에 내어준 셈이 되었다. 하지만 10년이나 지나서 찾아와 옛것을 찾는다는 게 도둑놈 심보가 아닌가 싶어 피식 웃고 말았다.
또 하나 좋았던 곳이 대웅보전이다. 정수사 대웅보전은 소소한 볼거리와 나름의 독특함이 있다. 그때 대웅보전에 있었던 불상은 여느 사찰에서 보았던 불상과 달리 천진난만하게 해맑은 표정의 불상이 있었다. 정수사를 오면서 지인들에게 바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와 대웅보전의 그 불상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꼭 보라고 말해주었다. 바위에서 여유 있게 쉴 수 있는 즐거움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 특별한 불상으로 만회하고 싶었는데 이것마저 무산되고 말았다.
세월이 흘렀다고 해도 대웅보전의 불상이 바뀌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해맑은 표정의 불상은 보이지 않았고, 조금은 근엄하면서도 은근하게 미소를 띤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지인들에게 예전 불상을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나 자신도 그 불상을 다시 보지 못하는 게 정말 아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그 불상을 사진으로 찍어둘 걸 하는 후회가 뒤늦게 들었다.
대웅보전은 불상 외에도 문 앞에 툇마루가 있는 게 특이하다. 지금까지 다녀본 사찰 중에서 대웅전이나 대웅보전에 툇마루가 있는 건 정수사가 처음이지 싶다. 조금은 엄숙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웅보전에 있는 툇마루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어려서 이런 툇마루가 있는 집에서 살아본 사람들에게는 지난날의 정겨움이 느껴져 더욱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대웅보전에서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게, 꽃 창살이다. 이젠 단청이 조금 바래긴 했지만, 창살의 꽃무늬는 마치 활짝 피어있는 꽃처럼 화사하고 아름답다. 정수사는 규모가 큰 사찰과 달리 이런 소소한 볼거리가 있어 더욱 친근감이 든다. 세상의 모든 건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가는 만큼의 변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래도 정수사는 이쯤에서 세월을 비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